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려실록 (문단 편집) === 객관성 === [[조선왕조실록]]도 사관의 평이나 세도정치와 구한말 시대에는 내용의 객관성을 유지하지 못했다고 비판받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왕조 내내 왕조차도 실록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정도로 편찬의 자율성이 보장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고려실록 또한 고려 건국 초기에는 자율성이 보장되었으나 [[예종(고려)|예종]]과 [[인종(고려)|인종]] 대 이후의 고려실록은 중국의 실록들과 비슷하게 왕이나 세력가들의 제재와 간섭을 많이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예종실록은 원래 한안인 일파가 제작하고 있었으나 권신 [[이자겸]](李資謙) 세력에 의해 제거되었고 이후 이자겸 일파가 예종 대의 실록을 좌지우지했다. 다음대 왕인 [[의종(고려)|의종]] 부터는 아예 [[무신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무신정권]]에 의해 실록 편수관이 잠식되고 말았는데, 이때 처음으로 무신 최세보(崔世輔)가 동수국사에 임명되어 실록 편찬을 감시했고 이후 무신정권이 끝날 때까지 무신 세력이 실록을 일일이 감찰했다. 또한 고종 대에 제작을 시작한 명종실록부터는 [[사관]](史官)만이 실록을 편찬해야 한다는 규칙이 깨져버리고 [[이규보]](李奎報), 권경중(權敬中) 같이 사관이 아닌 사람들이 실록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때문에 막장이었던 [[무신정권]] 시기와 원 간섭기 시기의 실록들, 더 이전으로는 예종, 인종 대 이후의 고려실록에 대해서는 조선시대에도 비판을 많이 받았고, 객관적인 실록 편찬에 있어서의 [[반면교사]]로 삼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