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려실록 (문단 편집) == 개요 == [youtube(Qloj5gregR4)] {{{+1 高麗實錄}}} [[고려]]왕조 대에 작성된 [[실록]]으로 현존하지 않는다. 정식 명칭이 조선'왕조'실록인 [[조선왕조실록]]과 달리, 고려실록의 정식 명칭은 그냥 '''고려실록'''이다. 고려 왕조에서 남긴 이 실록은 고려 멸망 후 [[조선시대]]에도 계속 춘추관에 보관되어 있었지만 아쉽게도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이 화재가 선조가 피난간 직후 한양의 난민들이 장례원에 소장된 공사 노비의 문적을 소각했는데 이 불이 바람을 타고 궁궐, 춘추관으로 번져갔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선조실록]]에는 해당 부분에 대한 기록이 없이 '''일본군이 불을 지른 것처럼 묘사'''하고 있고 [[선조수정실록]]은 '''간민과 난민'''이 궁궐에 불을 질렀다고 기록하고 있다. [[http://ch.yes24.com/Article/View/13864|관련 내용]] 다만 어차피 전란중이고 제대로 된 기록이 남기 힘들었을테니 방화의 정확한 주체는 파악하기 요원하다. 어쩌면 두 주체에 의한 화재가 모두 일어났을 수도 있다. 실제로 임진왜란때 오히려 일본군을 환영해서 도운 [[순왜]] 조선인들도 일부 있었다. 아니면 방화가 아닌 실화(失火)의 가능성도 무시할 수는 없다. 어쨌거나 확실한 것은 임진왜란 당시 고려실록이 소실되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고려의 역사에 대한 국가적 기록은 이 고려실록을 바탕으로 [[김종서(조선)|김종서]]를 중심으로 편집한 [[고려사]]와 여기에 주석을 달아 요점만 뽑은 [[고려사절요]]밖에 없다. 고려도 실록을 남겼고 그것은 [[조선왕조실록]]의 전범(典範)이 되었지만 현재는 전해지지 않아서 아쉬움을 주고 있다. 그러나 어찌되었건 고려사에 그 내용이 일부 전하기라도 하니 완전히 소실된 고대사서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아쉬움이 적은 편이다.[* 물론 고대사의 기록은 고려실록처럼 현존하는 사서가 없을 뿐이지 완전히 소실된 건 아니다. [[삼국사기]]가 그랬듯이 불완전할지라도 계속 옮겨적히면서 내용이 전해져 내려왔다. 고조선, 부여, 가야, 탐라사의 경우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날라가긴 했지만(혹은 아예 당사자들조차도 기록하지 않았던 걸로 보인다) 메이저 삼국이었던 고구려, 백제, 신라의 기록은 아예 스스로 직접 적었던 내용들이 상당히 전해져서 삼국사기에 그대로 옮겨질 수 있었다. 발해의 경우는 비교적 후대라 스스로도 열심히 기록을 하긴 했지만 전쟁통에 모두 날라가버렸는데 그래도 당시 교류하던 나라들이 기록을 꽤 남겨줘서 후에 [[발해고]]가 저술될 수 있었다. 가야의 경우는 교류가 많고 가까웠던 일본의 사서에 관련 기록이 상당히 남았다.] 다만 고려사도 앞에 나열한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사료 한 글자 한 글자가 절실한 사정임을 고려하면 실전은 안타까운 일임에는 틀림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