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고려시대 (문단 편집) === 초기 === 무신정권 초기엔 무신 정변을 일으킨 [[정중부]]와 [[이의방]], [[이고]] 3인방이 권력을 나눠 장악했으나, 다음해 이고가 역성을 일으키려 하자 이의방이 이고를 척살하고 이의방이 우세한 상황에서 정중부와 함께 권력을 장악한다. 그는 자신의 딸을 태자비로 보내는 등 본격적으로 권력에 대한 탐욕을 드러냈으나 이의방 역시 3년 뒤에 정중부의 아들 [[정균]]에 의해 살해당하면서 정중부가 권력을 홀로 쥐어잡게 된다. 그러나 5년 뒤 청년 장군 [[경대승]]이 정변을 일으켜 정중부와 정균 등을 제거하며 권력을 틀어쥔다. 경대승은 특이하게도 무인 실권자들이 죄다 고려사 반역 열전에 실린 데 비해 유일하게 거기에 실리지 않은 유일한 인물이었다. 이는 그가 근왕적이었고, 또한 청렴하여 측근들의 부패를 단속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무신 협의체인 [[중방]]을 닫고 자신의 [[사병]]인 [[도방]]을 활성화시키면서 무신 정권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경대승은 집권한지 4년 만에 젊은 나이로 병사했고, 이에 정중부의 잔당으로 살아남아 경주로 낙향했던 [[이의민]]이 실권을 잡게 된다. 이의민은 [[동경(고려)|동경]] (지금의 [[경주시]])의 천출 출신으로 무신 정변에 직접 가담했으며, 당시 폐위되어 거제도에 유배가 있던 의종을 직접 [[시해]]까지 한 인물. 이의민은 무려 13년동안 집권했는데 [[십팔자위왕]]설을 믿고 왕위에 대한 야심을 품었으며 경상도 지역에서 일어난 김사미·효심의 난을 비밀리에 지원하는 등 권력에 대한 야욕을 드러낸다. 그의 아들들 역시 권세를 믿고 오만해져 남의 재물을 함부로 빼앗고 인사권을 통한 전횡을 부리는 등 만행을 저지른다. 그러던 중 거병한 [[최충헌]] 형제로 인해 미타산에서 이의민은 살해 당하고, 그의 아들들을 포함한 일가는 멸족 당하고 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