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려대학교/학생운동 (문단 편집) == [[일제강점기]]의 학생운동 == [[3.1 운동]]은 [[보성전문학교]]의 교주, 교수, 학생들이 주도하여 일으킨 것이었다. 일단 기미독립선언서를 인쇄한 곳부터가 보성전문의 수송동 교사 바로 옆에 있는 보성사였고,[* 보성사는 [[보성전문학교]] 설립자인 충숙공 [[이용익]]이 설립한 인쇄사다.] 여기서 인쇄한 독립선언서를 배부하고 대규모 독립시위운동을 주도한 사람은 보성전문 학생대표 [[강기덕]]이었다. 민족대표 33인의 리더였던 [[손병희]]는 보전 교주였고, 보성고보 교장 [[최린]]도 33인의 대표에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 보성전문 교장이었던 윤익선도 3.1 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투옥되었으며, 보전 교수 [[신익희]], 보전 졸업생 주익, 윤기섭, 성준용, 재학생 한창환, 오일철, 손재기, 이병헌, 이태운, [[방정환]], 박용준, 김상진, 이양식, 남위 등도 구속되었다. 이들 가운데 재학생 이태운, 방정환, 김상진 등은 결국 퇴학당하였다. 그 후에도 보성전문은 전통적으로 데모기질 충만한 민족독립운동의 투사들을 무수히 길러낸 학교로 명성이 높았다. 보성전문 학생인 서정관(법과 1929년 졸업) 등은 '조선학생과학연구회'를 조직하여 학생운동의 맥을 이어나갔고, 서정관을 중심으로 한 여러 보전 학생들과 당시 보전 교수를 지낸 박인호 등은 1926년 [[6.10 만세 운동]]에 대거 참여하기도 하였다.[* 6.10 만세운동의 주모자인 이천진은 1926년 경성제대 예과에서 제적된 후 보성전문 상과에 입학하여 1931년 졸업했다. 또 다른 주모자인 이현상은 만세운동 당시 중앙고보생이었는데, 그 다음해인 1927년 보성전문 법과에 입학하여 전설적인 사회주의자가 되었다.] 특히 1930년대 이후에는 보전에서 사회주의적 성향의 운동가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한국의 체게바라로 불리던 [[이현상]] 남부군 총사령관과 [[이호제]] 강동학원 원장 등이 대표적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보성전문학교]] 문서 참조. 여담으로 고려대학교의 전통이자 악습으로 유명한 [[고려대학교/사발식|사발식]]이 여기서 탄생하였다고 전해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