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려대학교/교우회 (문단 편집) == 활성화와 그 원인 == 고려대 교우회가 크게 활성화된 원인으로, 교우회 내 대선배 라인 상당수가 1960~1980년대에 반독재투쟁을 하면서 함께 데모하고 고생한 기억과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 그 하나가 되고 있다.[* 여담으로, 아이러니하게도 [[4.19 혁명]]과 [[6.3 항쟁]]과 [[10월 유신]] 때 그렇게 열심히 데모하던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기성세대가 된 이후 완전히 보수화되었고, 1980년대 운동권이었던 사람들은 [[문재인 정부]] 이후 대부분 민주당을 지지하는 [[n86세대|중년층]]이 되었다.] 이렇게 집단을 중시하는 문화와 전통을 오래 유지했던 사람들이다보니, 조직을 구성하고 조직 내 인간적 갈등을 무마하며 사람들 모였을 때 분위기를 훈훈하게 만들고 농담과 유머로 어색함을 푼다거나 기본 예절을 정하고 소소한 오락거리를 만드는 등 모임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게 하는 데 필요한 노하우를 많이 갖추게 되었다. 이렇게 따뜻하고 정이 많으면서 예의도 잃지 않은 집단문화를 만들어 오랜 기간 무탈하게 운영하다보니 그게 현재까지도 자연스럽게 이어져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중년층으로 접어들면 인적 네트워크에 목말라 하고,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외로움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다. 교우회는 이러한 점을 비교적 부담없는 비용으로 자연스럽게 해소해준다는 측면 역시 무시할 수 없다. 게다가 고대인 특유의 활동력과 친화성, 그리고 유능함 덕분에 어딜 가나 고대 출신들의 활약을 볼 수 있어 물질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큰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다는 점도 기여한다. 서로 기질도 잘 맞고, 공유되는 기억도 많고, 직장 안팎으로 끈끈한 인맥도 쌓을 수 있으니, 더더욱 교우회의 활성화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교우회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 각지에도 설립되어 졸업생들이 주기적으로 모이는 경우가 꽤 많다. [[유럽]]이나[* 2009년 4월 18일 이후 고대교우회 유럽총연합회로 조직되어 있다. 창립총회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개최하였다. [[http://www.kuaa.eu/|홈페이지]]도 있다.] [[미국]] 뿐 아니라[* 미주교우회의 경우 회원 숫자가 1,500명에 달한다. 고려대학교 미주교우회 [[http://www.kuamerica.org/|홈페이지]]도 당연히 있다.] [[칠레]], [[아르헨티나]]등의 남미에까지 있다. 그러다 보니 고려대학교 교우회가 [[한국 3대 연고주의 사조직]]의 하나로 꼽히고 마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호남]]에서 태어나 [[해병대]]에 나와 [[고려대]]를 졸업하면 어딜 가도 굶어죽지 않을 것."이라는 과장된 농담까지 나올 정도다. 그냥 나온 말이 아니라 실제로 이런 장점을 의식하고 고려대에 진학해 해병대에 지원하는 호남 출신들이 존재한다.[* [[https://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F&nNewsNumb=201102100023|해병대 장교를 거쳐 (주)월간조선사 이사를 역임한 김석규(金石圭·신방 71)씨]]]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