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려/왕조 (문단 편집) == 여담 == * <[[훈요 10조]]>에서부터 형제 상속의 가능성을 명시했기 때문인지, 현 군주에게 어린 아들이 있음에도 대신 동생이 왕위를 물려받은 사례가 상당히 많다. * [[혜종(고려)|혜종]] - [[정종(고려 3대)|정종]] - [[광종(고려)|광종]] 태조의 아들. 혼인정책에 따른 호족들의 갈등으로 형제 상속이 불가피했을 것이다. 혜종에게는 흥화궁군과 왕제라는 두 아들이, 정종에게는 경춘원군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 [[덕종(고려)|덕종]] - [[정종(고려 10대)|정종]] - [[문종(고려)|문종]] 현종의 아들. 정종은 애상군, [[왕경(낙랑후)|낙랑후]], [[왕개(개성후)|개성후]]라는 아들이 있었다. * [[순종(고려)|순종]] - [[선종(고려)|선종]] - ([[헌종(고려)|헌종]]) - [[숙종(고려)|숙종]] 문종과 [[인예태후]]의 아들. 선종의 아들 헌종이 1년 남짓 왕위에 올랐지만 외척과 종친 양파의 대결 끝에 숙종에게 양위하게 된다. * [[의종(고려)|의종]] - [[명종(고려)|명종]] - [[신종(고려)|신종]] 인종과 [[공예태후]]의 아들. 명종과 신종은 [[무신정권]]에 의해 형이 폐위되고 옹립된 것이라 형제 상속에 따른 것이라고 보기는 약간 애매하긴 하다. 명종의 아들 [[강종(고려)|강종]]은 왕위 계승에서 밀렸다가 후일 군주로 추대된다. * [[충목왕]] - [[충정왕]] [[충혜왕]]의 아들. 다만 충목왕이 아들 없이 요절하여 형제 상속된 사례이다. * 고려의 역대 군주 34명의 평균 재위 기간은 14년이 채 안된다. 그나마도 중간에 폐위되었다가 복위되었던 경우까지 따진다면 만 12년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 조선의 만 19년 2개월에 비하면 정말이지 짧다.[* 고려는 조선보다 존속기간이 44년 더 짧은데 군주는 7명 더 많다.] [[고구려]], [[백제]], [[신라]], [[발해]] 등 한국사 메이저급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도 제일 짧다.[* 단 발해의 경우 [[대위해]]와 [[대인선]] 사이에 군주가 더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군주들의 재위 기간이 긴 편에 속하는 고구려와 비교할 경우 두드러지는데, 고구려보다 230년 짧게 존속했으면서 군주는 6명 더 많다.[* 단 삼국시대 군주의 계보의 경우 왜곡이 있었을 가능성을 고려할 필요는 있다. 고구려의 경우 [[태조대왕]], [[차대왕]], [[신대왕]]대의 비정상적인 수명과 재위 기간 등을 근거로 보았을 때 추가적으로 누락된 군주가 더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는 백제 또한 마찬가지로 백제 초기 계보 역시 비정상적으로 긴 재위 기간으로 의심을 받는 편이고 신라 역시 초기 계보의 신뢰도가 높은 편은 아니다.] 살해당한 왕도 8명[* 목종, 의종, 충혜왕, 충정왕, 공민왕, 우왕, 창왕, 공양왕]이나 된다. 이런 이유로 고려 왕들의 평균 수명은 41세 남짓에 불과했다.[* 반면 조선의 왕들은 평균 45세 남짓으로 조금 앞선다, 그런데 고려의 왕들은 앞서 보았듯 제 명에 못 죽는 경우도 많았기에 피살당하거나 한 왕들이 제 명에 죽었다면 조금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 재위 직후 단명한 군주는 특수 사례인 강종을 제외하고 [[혜종(고려)|혜종]], [[정종(고려 3대)|정종]](3대), [[경종(고려)|경종]], [[덕종(고려)|덕종]], [[순종(고려)|순종]], [[헌종(고려)|헌종]], [[충목왕]]으로 7명, 시해당한 군주는 [[목종(고려)|목종]], [[의종(고려)|의종]], [[충정왕]], [[공민왕]], [[우왕]], [[창왕]], [[공양왕]] 7명, 폐위당한 군주는 [[명종(고려)|명종]], [[희종(고려)|희종]], [[충선왕]](1기), [[충혜왕]](1기/2기) 4명이다. 결국 곱게 살지 못한 군주가 자그만치 18명이다. 여기에 [[신종(고려)|신종]]이나 강종, [[고종(고려)|고종]]은 무신정권 치하라 곱게 왕위를 보내지도 못했다.[* 더군다나 단명한 군주들 중 혜종이나 정종은 시해설이 뒤따르는 군주들이다. 이외에도 충혜왕 역시 정황상 원나라에 의해 사사된 것으로 보인다.] * 반면 8대 [[고려 현종|현종]] 말기부터 15대 [[숙종(고려)|숙종]], 16대 [[예종(고려)|예종]]까지 덕종, 순종, 헌종의 단명과 정치적 혼란을 제외하고 총 94년, 100여년간 7명의 [[명군]]들이 줄지어 왕위에 올랐다. 이 일곱 군주들의 평균 재위 기간은 16년(덕종 제외시 18년), 수명은 만 40.6세, 덕종 제외시 만 45세에 달한다. 기록이 부족한 것도 있지만 《[[고려사]]》나 《[[고려사절요]]》, 《[[동국통감]]》과 같은 국내 사서와 《[[송사]]》, 《[[요사]]》등의 기록만으로도 [[11세기]]는 모든면에서 고려가 가장 강성한 시기였다. [[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bullpen&mbsIdx=1829013|#]], [[http://www.pgr21.com/pb/pb.php?id=humor&no=178237|##]] 참고. 동시에 [[문벌귀족]] 가문의 세력이 강화되면서 훗날 [[인종(고려)|인종]], [[의종(고려)|의종]] 때의 혼란과 [[무신정권]]이 탄생하는 계기가 된다. * [[재위기간이 짧은 군주들|최단 재위]]는 12대 [[순종(고려)|순종]](1083년, 약 3개월), 2위는 14대 헌종(1094년 음력 5월 ~ 1095년 음력 10월, 1년 5개월)과 33대 창왕(1388년 음력 6월 ~ 1389년 음력 11월, 1년 5개월), 4위는 2대 혜종(943년 ~ 945년, 2년 4개월(111일)), 5위는 22대 [[강종(고려)|강종]](1211년 ~ 1213년, 2년 7개월), 6위는 30대 충정왕(1348년 ~ 1351년, 2년 10개월) 순이다. 강종은 아이러니하게도 대단히 늦은 나이에 왕위에 올라 만 61세까지 살았다. * 최장 재위는 [[고종(고려)|고종]](1213년 ~ 1259년, 45년 10개월), [[문종(고려)|문종]](1046년 ~ 1083년, 37년 79일), [[명종(고려)|명종]](1170년 ~ 1197년, 27년 23일), [[충렬왕]](1274년 ~ 1308년, 23년 5개월 + 9년 11개월 = 34년 4개월), [[태조(고려)|태조]](918년 ~ 943년, 24년 350일) 순이다. * [[실제로 장수한 군주들|수명이 제일 길었던 군주]]는 25대 충렬왕(만 72세 119일), 19대 명종(만 71세 25일, 단, 만 66세에 폐위), 23대 고종(만 67세 185일), [[태조(고려)|태조]] 왕건(만 66세 155일), 문종(만 63세 263일) 순이고, 수명이 제일 짧았던 군주는 33대 창왕(만 9세 127일), 29대 충목왕(만 11세 234년, 재위 4년 10개월), 14대 헌종(만 13세), 30대 충정왕(만 14세) 순. 다만 창왕은 자연사가 아니었던 것을 감안하면 실질적으로 가장 단명한 군주는 충목왕. 덕종을 포함해 5명의 군주가 20세를 넘기지 못하고 요절했다. * 고령으로 즉위한 군주는 22대 강종(60세), 20대 신종(51세), 34대 공양왕(45세) 순이고, 최연소 즉위는 29대 충목왕(8세), 32대 우왕, 33대 창왕(9세), 14대 헌종(10세) 순이다. * 가장 많은 부인을 둔 군주는 태조 왕건(총 29명)이다. 또한 왕건은 가장 많은 아들을 둔 군주이기도 하다.(25명) 이는 다양한 호족들을 포섭하기 위한 정략이었으며, 상당수 호족들이 먼저 자진해서 자신의 딸을 왕건에게 바쳐 혈연 관계를 맺고자 했다. 이 혼인 정략이 고려 초기 왕실 혼란의 원인으로 작용해 버렸다는 단점도 있었다. * 원 간섭기에는 거의 원 황실의 방계 가문쯤으로 전락해 버렸다. 원 간섭기에는 고려가 원의 [[부마]]국이라 하여 고려의 군주는 원나라 공주나 종친의 딸[* [[제국대장공주]]를 제외하고는 종친의 딸을 고려로 시집보냈다.]을 정비로 삼아야 했는데, 이 사이에서 태어난 왕자는 [[한몽혼혈|고려-몽골 혼혈]]이고, 이 왕자가 군주가 되어 다시 원나라 공주나 종친의 딸과 결혼하면 이 사이에서 태어난 왕자는 고려 왕실의 피는 1/4밖에 남지 않는다. 이 과정이 몇 번 반복되면 사실상 몽골인이나 다름 없어진다. * 실제 고려인의 피가 가장 희미한 군주는 1/4인 [[충숙왕]]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충숙왕의 아들인 [[충혜왕]]과 [[공민왕]]은 순수 고려인인 [[명덕태후]] 소생이라[* [[충숙왕]]이 [[몽골인]] 왕후 [[복국장공주]], [[조국장공주]], [[경화공주]]와의 사이에서 자녀를 얻지 못했기 때문. 조국장공주가 [[용산원자]]를 낳았지만, 용산원자는 어린 나이에 죽었다.], 고려인의 피가 1/4뿐인 충숙왕보다 혈통상 훨씬 더 고려인에 가깝다.[* 충혜왕과 공민왕이 5/8의 고려혈통을 가지고 있고, 충혜왕과 몽골인 [[덕녕공주]] 사이의 아들인 [[충목왕]]도 5/16의 고려 혈통을 가지고 있어서, 충숙왕보다 고려 왕실의 피가 진하다.] * 태조, 혜종은 각각 신라, 태봉 출신으로 처음부터 고려 출신이 아니다. 정종, 광종은 후삼국시대의 고려에서 태어났다. 통일 고려에서 태어난 최초의 군주는 경종이다. * 옛 고려의 수도 [[개경]]이 현재의 [[북한]]땅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고려 왕들은 북한 땅에 묻혀 있다. 단 4기의 왕릉만이 대한민국에 있는데 희종, 강종[* 개경에서 사망했으나 [[강화도]]에 묻혔다. 다만 현재로선 능이 실전되었다.], 고종이 강화도에, 그리고 공양왕이 고양시(혹은 삼척시)에 묻혀 있다. 우왕과 창왕은 우창비왕설을 명분으로 한 [[이성계]] 일파에 의해 시해된 후 아예 능이 조성되지 않았고, 그 시신은 대충 처리되었을 가능성이 높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