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등법원(프랑스) (문단 편집) == 역사 == 정무를 담당하는 국왕 중심의 국왕 위원회가 세분화되면서 파생되었다. 최초에는 파리 시테 섬의 파리 연설원이 유일하였으나 [[백년전쟁]]이 끝난 이후로 각 지역마다 생기게 되었다. 그러나 파리 연설원의 관할권이 가장 넓었고, 입김도 가장 쎘다. [[절대왕정]]을 추구하는 [[루이 14세]]는 파리 연설원의 권한들을 하나씩 박탈하였고 결국 폐지되는 듯 싶었으나 [[루이 15세]]가 즉위하고 나자 [[섭정]]인 [[오를레앙]] 공작은 이 권한들을 돌려주었고, 또한 루이 15세가 [[신권]]을 견제한다는 명목으로 이들을 치켜세우자 더욱 더 활개치게 된다. [[말년]]에는 더 적극적으로 정사를 돌보면서 연설원들을 모조리 폐지했으나 [[루이 16세]] 치세에 부활했다. [[여론]]에 민감했던 [[루이 16세]]는 [[시간]]이 지나면서 [[인기]]가 떨어지자 이를 회복하려고 이들을 부활시켰으나 특권들을 지키기 위하여 비난을 퍼부어 오히려 인기를 최악으로 이끌었고, 정부를 운영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었다. 특히 [[징세청부업자]]들의 강력한 옹호자로서 일반 서민들을 과세지옥에 빠뜨리기까지 했다. 말 그대로 [[유전무죄 무전유죄]]. 결국 이런 연설원의 막장짓에 분노한 국왕은 국새상서인 크레티앵 기욤 드 말제르브(Chrétien Guillaume de Malesherbes)를 내세워 연설원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고 루이 15세 때 만들어진 전권법원으로 권한을 이전시켰으며, 연설원 판사들 중 강경파이자, 국왕 내각의 개혁을 좌초시킨 장 자크 뒤발 데프르메닐(Jean-Jacques Duval d'Eprémesnil) 판사와 안 루이 고이슬라르 드 몽사베르(Anne-Louis Goislard de Montsabert) 판사를 체포하려고 했으나, 이들이 '''연설원 없이는 왕정도 없다'''(...)고 주장하고 민중을 선동하고 폭동을 일으켜 전권법원을 무너뜨리고 사법개혁을 망쳤다. 그렇게 나라가 파국으로 치달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게 되고, 파리를 포함한 각 지방의 연설원은 [[앙시앵 레짐]]의 잔재로 취급받아 폐지되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들 연설원 인사들의 대부분은 공포정치 기간 동안 데프르메닐 판사와 같은 최후, 그러니까 [[단두대]]로 끌려가 처형당했다. 하지만 이들을 동정하는 이들은 산악파는 물론, 평원파와 같은 온건 부르주아지 세력을 포함해서도 전혀 없었다고. [* 그나마 감옥에 수감되어 살아남은 고이슬라르 드 몽사베르 판사와 같은 이들도 완전히 권력을 잃고 몰락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