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구 (문단 편집) == [[북송]] 대의 간신 == 高俅 (1076? ~ 1126) [[카이펑]]에서 고돈복(高敦復)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형제]]가 2명 있었다. 글을 잘써서 [[소동파]]의 서기로 일했고, 소동파도 그에게 잘해준터라 권력을 차지하자 당시 신법당에게 멸시당하던 소동파 형제의 가족들을 돌봐주기도 했다. 후에 왕선(王詵)을 수행했고, 휘종 때가 되어 유중무(劉仲武)의 밑에서 공을 세웠다. 1117년 1월에 삼아관군(三衙管軍)에 발탁되어 전전도지휘사에서 오늘날로 치면 (명예직 성격이 강하긴 하지만) 국방부 장관급인 [[태위]]로 승진했다. 선화 연간[* 1119년에서 1125년이다.]에는 유기를 천거했다. 다른 간신들은 [[송흠종]]이 즉위할 때 유배, 처형 크리를 타지만 본인은 [[동관(북송)|동관]]과 함께 군사를 통해 송휘종을 남쪽으로 호송했다가 [[정강의 변]]에서 [[송흠종]]과 동경으로 돌아왔으며, 1126년 5월에는 개부의동삼사에 임명되었다가 병에 걸려 침대에서 죽었다. 그 덕분에 다른 간신들에 비해 시호까지 받은 운 좋은 사나이였지만 사후에는 그의 죄로 인해 그의 벼슬을 없앴다. 휘종이 개인에 대한 호불호만을 가지고 능력과 상관 없이 인물을 등용한 좋은 예로 꼽힌다. 당시에도 좋은 평을 받진 못했으나, 실제 고구는 후술된 '''[[수호전]]에 묘사된 것처럼 그렇게까지 막장은 아니었다'''. 오히려 [[소동파]] 형제의 가족들을 돌봐준 일화를 보면 은혜는 아는, 어느 정도 개념은 있는 인간이었다. 수호전이 소설의 재미를 위해 고구를 실제 역사 이상의 악역으로 그려넣으면서 오늘날 안좋은 명성을 얻게 된 것. 역사에서의 고구는 수호전에서처럼 누군가를 해코지하거나 하진 않았지만, 태위까지 지낸 양반이 수도방위군이라고 할 수 있는 송군을 개인 목적으로 동원시키는 등의 비리를 저질렀고 이는 원래부터 약체였던 금군의 전투력을 깎아먹어서 훗날 [[북송]]이 [[금나라]]의 침공에 무력하게 무너지게 되는 한 원인을 제공하게 된다. 수호전에서도 묘사되듯 고구의 [[축국]] 실력은 뛰어났던 모양이다. 결국 오늘날로 치면 축국과 유사한 면이 있는 축구선수로 ~~중국축구계의 큰 스타로 떠오르고~~ 큰 돈을 벌었을지도 모를텐데 시절이 시절인지라 적성에 안 맞는 벼슬아치를 하다가 악명을 쌓게 된 측면도 있어보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