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건 (문단 편집) === 대권주자 ===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헌재]]의 탄핵 기각 결정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직무에 복귀한 뒤 얼마 지나지 않은 2004년 5월 24일 국무총리직에서 물러난다. 이후 여러 정치 세력에서 일한 점과 특히 대통령 권한대행직 수행을 성공적으로 이행한 점을 인정받아 유력한 여권의 대권 후보로 떠오른다. 2006년 중반까지만 해도 차기대권주자 여론조사상 1등이 [[이명박]], [[박근혜]]가 아닌 고건이었을 정도였는데,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2006년 고건 총리의 지지세력을 '''자칭'''하는 사람들이 일명 '[[국가재건친박연합|한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당]]'(약칭 한미준)이란 당을 창당하기도 했으나 고건 스스로 '한미준은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당'이라고 부인하는 소동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대중적 인기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에게 지지율을 어필할만한 매개체가 없어서인지[* 다른 사례로 2017년 [[19대 대선]] 정국 당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도 여론조사에서 대권주자 지지율 1, 2위를 달리고 있었으나, 유엔 사무총장 퇴임 뒤 한국으로 귀국하여 대권 행보를 이어가던 중 미숙한 모습을 여러 차례 보이며 지지율 하락을 피할 수 없었고, 결국 2017년 2월 관료 출신 정치인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다. 이처럼 정치적 기반이 미약하고 안정적인 사회 생활을 해왔던 관료 출신이 여러 험난한 정치적 길을 뚫고 대통령이 되기에는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권주자로서 스퍼트를 하지 못하며 [[이명박]] 당시 후보에게 지지율이 역전되었다.[* 박근혜와의 양자 대결에선 오차범위 내 접전이었다.] 이명박 후보가 '경제대통령'이라는 구호로 경제 성장에 대한 화려한 비젼을 내세워 여권 지지층 일부를 흡수했기 때문이었다. '대권 주자' 고건의 중도 포기는 정권과 여당의 반대가 결정적이었다. 2006년 말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그 유명한 [[민주평통 연설]]에서 고건 전 총리를 "사실상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0200235&plink=OLDURL|실패한 인사]]"라 평했는데[* 좌우대립 속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길 기대해서 좌우 여러 진영을 거친 그를 총리로 지명한 것인데, 그 부분에서 실패하고 고립된 것 같아 아쉽다고 평했다. 문구 그대로만으로는 강경한 발언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대통령 연설로서는 저격 발언이나 다름 없었다. 여담으로 그 유명한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발언과 같은 자리에서 나온 발언이다.], 이에 맞서 '대통령의 자기 부정'이라며 고건 전 총리가 발끈했고 여권 내에서도 큰 논란이 일어났다.[* 이에 대해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통합신당파 견제를 위해 선전포고를 했다는 설이 나오기도 했다. 또 비노인 고건보단 그래도 친노계인 이해찬, 유시민, 한명숙 같은 인물들을 차기 대권주자로 염두에 뒀기 때문에 일부러 이런 말을 한 것 아닌가 하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이후 이런 여권 내 갈등 때문인지 지지율이 10%대까지 떨어진다. 고건은 동력을 잃었다고 느꼈는지 얼마 지나지 않은 2007년 1월 16일 스스로 '''대통령 선거 불출마''' 선언을 발표한다. 그리고 3년 뒤 정계도 은퇴하며 야인으로 돌아갔다.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그의 불출마를 아쉬워하던 한 지지자가 '''(고건처럼) 고향이 호남인데도 당선'''된 [[김대중]] [[전직 대통령|전 대통령]]의 사례를 들어 불출마 철회를 요구하자 "[[제15대 대통령 선거]] 때는 [[이인제]]가 표를 분산시켰기에 당선될 수 있었다"고 답했다 한다.[* 사실 [[17대 대선]] 과정을 보면 보수가 분열해 [[이회창]], [[이인제]] 후보가 죄다 출마했긴 했다. 그러나 이미 집권 열린우리당의 심각한 분열과 낮은 정권 지지율탓에 당시 [[한나라당]] 경선은 '경선만 이기면 누가 나가도 당선'이라고 할 정도로 대세는 기울었으니 저 판세 분석이 틀렸다고 보기도 어렵다. 더구나 고건의 중도보수적 관료 성향은 무소속 출마지만 15% 득표를 한 [[이회창]]과도 차별화를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황급하게 진보적인 성향을 드러내봤자 당시 '범여권'과 [[민주노동당]]과 정권 내내 사이가 안 좋았으니 진보 표가 갈라질 가능성도 컸다.] 실제로 해당 대선에서 호남 출신의 [[정동영]] 후보는 큰 표차로 이명박 후보에게 패배했으니, 고건의 정계 은퇴 결정은 지독히 '합리적'이었던 셈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