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경희궁 (문단 편집) === 서울고등학교 터 === 경희궁 부지에 [[일본 제국|일제]]가 지은 경성중학교는 광복 후에 [[서울고등학교]]가 되었고, 현재는 서울역사박물관이 건립되어 현재 경희궁 복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되고 있다. 1980년 강남개발계획에 따라 도심부의 명문고교들이 [[서울/강남|강남]]으로 이전하면서 [[서울고등학교]]도 [[서초구]]로 이전했다. 서울고등학교가 강남으로 이사가자마자 [[서울특별시]]에서는 그 부지의 서쪽 구석에 [[서울특별시교육청]] 신청사를 신축했으나, 나머지 부지는 [[서울역사박물관]]이 들어서기까지 약 20년 간 그냥 공터로 방치되었다. 서울특별시는 서울 한복판에 있는 알짜배기 땅인 서울고등학교 부지의 매각을 시도했으나 선뜻 그 땅을 사겠다고 나서는 민간기업이 없었다. 땅값이 100억 원이 넘어 당시 기준으로 엄청난 거액이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중앙 정부와 서울특별시에서는 [[현대건설]]에 이 땅을 사라고 권유했다. [[현대건설]]은 "별 생각 없지만 정부가 권유하니 인수하겠다"는 태도로 이 땅을 구매한다. [[서울고등학교]]가 [[서초구]]에 새 교사를 짓고 이전해간 것은 1980년 신학기부터였고, 현대 측에서는 구 교사자리에 '인력개발원'이라는 간판을 달고 [[현대그룹]]의 사원연수원으로 활용했다. 이 때 이미 현대그룹은 이곳에 28층짜리 대형건물을 지어 그룹 본사의 사옥 겸 외국 바이어 전용호텔로 사용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곳에 대규모 현대사옥이 들어선다는 것을 일반시민이 알게 되자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매스컴에서도 반대의견이 중론이었고, 서너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는 으레 화제가 되었고 한결같이 '시민을 위한 공원화'를 주장했다. 이렇게 반대여론이 압도적이었던 것에 대해 [[손정목]] 전 서울특별시청 내무국장은 [[대한민국 제5공화국|전두환 정권]]에 대한 반감이 기저에 깔려있었다고 분석한다. 엄혹한 시절이라 정치 이야기는 할 수 없었지만, "현대로부터 땅을 빼앗아 공원으로 만들어라"는 소리는 아무리 크게 외쳐도 잡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국민들의 답답하고 울적한 심정을 해소하는 수단이 되었다는 것이다. 여론이 들끓자 [[현대그룹]]은 사옥 건설 계획을 보류하고 관망세로 전환한다. [[서울특별시]]는 궁지에 몰렸다. 이 때 [[과천시]]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을 이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의견, [[예술의전당]]을 이곳에 지어야 한다는 의견, [[대한민국 경찰청]] 신청사를 이곳에 지어야 한다는 의견 등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성난 여론의 눈치를 보느라 어느 기관도 강력하게 추진을 하지는 못했다. 결국 이런 여론의 성화 때문에 1980년대에 해당 부지는 사실상 공터로 방치되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서울시 한복판 광화문 사거리 바로 옆에 광활한 공터가 펼쳐져(방치되어) 있는 것을 매우 의아해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