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경희궁 (문단 편집) === 계속되는 훼손 === '''광복 이후'''에 특히 '''서울특별시'''에 의한 훼손이 현재진행형이다. 정부에서 유적이 발굴된 때에 한해서라도 해당 사유지를 매입해 보존했어야 하나, 어떠한 보존조치도 이뤄지지도 않았고 조선 전기 유적까지 사라져버렸다. 더욱 어처구니 없는 것은 유적 위에다가 원래 전각을 복구하면서 유구 파괴가 생긴 것도 아니고, 다른 용도로 건물을 신축하며 기존의 유구를 모두 폐기한 것이다. 현재 경희궁 터에는 [[서울특별시교육청]], [[기상청]](일부),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시립미술관 경희궁분관, 서울복지재단 등의 공공기관과 대한축구협회, 성곡미술관, 일조각 출판사, 내수동교회, 구세군회관 등의 민간 건물이 들어서 있다. 특히 서울시는 경희궁 터가 사적으로 지적된 1980년 이후에도 경희궁 터에 '''[[서울특별시교육청]]'''(1981년), '''[[서울시립미술관]]'''(1988년), '''[[서울역사박물관]]'''(2002년[* 개관 기준. 준공은 1997년에 했다.]), 서울복지재단 등을 짓는 만행을 자행했고 이 과정에서 기존 경희궁 유적과 유구에 대한 발굴과 보존 조치를 거의 취하지 않아 유적지가 파괴되는 믿기 어려운 짓을 저질렀다. 1980년 드디어 [[서울고등학교]]가 [[서울특별시/강남|강남]]으로 이전했으나, 서울시는 곧바로 경희궁 터 서쪽부지를 '''[[서울특별시교육청]]'''에게 떼내주었다. 서울특별시교육청은 경희궁 터 서쪽에 청사 및 부속 건물들을 신축한 후 1981년 이전해 왔고 현재까지 사용 중에 있다. 서울특별시는 경희궁 터 한복판에 지어진 [[서울고등학교]]의 본관을 [[경기고등학교]]처럼 동문들의 압력 때문인지 철거하지 않고 있다가 1988년 개축하여 '''서울시립미술관'''을 개관했다. 2002년 서울시립미술관 본관이 서소문 본관으로 이전하면서, 경희궁 내 미술관은 서울시립미술관 분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2016년 말에야 미술관 분관이 철거되었고 현재는 서울역사박물관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경희궁 유적 발굴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 서울시는 경희궁 터 내에 '''서울역사박물관''' 건축을 추진했다. 아직 유적이 발굴되지 않은 부지에 건물을 올려 2002년 완공되었다. 1998년 9월 ~ 11월 [[새문안로|신문로2가]] 1-107, 108번지에 "서울 교원복지회관 신축공사"가 진행되었다. 공사에 앞서 [[명지대학교]] 부설 한국건축문화연구소가 진행한 조사에서 남서쪽 지역에서 적심석 총 14기, 북쪽 끝부분 중앙에서부터 서쪽으로 지정석으로 보이는 잡석군과 적심석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석재 1기, 그리고 장대석 6기가 확인되었다. 그러나 어떠한 유적의 보존도 이뤄지지 않았고 공사를 허용해 경희궁 유적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그리고 예정대로 서울교총빌딩이 건축되었다. 2003년 10월 [[새문안로|신문로2가]] 1-335에 "서울 신문로2가 근린생활시설 신축공사"가 진행되었고, [[한양대학교]] 박물관이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 조선시대 와편 및 전 등이 출토된 건물지를 확인했다. 그러나 역시 유적은 파괴되었고 출판사 일조각 사옥이 건축되었다. 2005년에는 [[사직동(종로구)|사직동]] 9-1 일대에 사직1구역 도심재개발사업이 추진되었다. 경희궁 관련 궁장, 우물 등이 확인되었으나 산지형까지 깎아 원지형을 훼손하면서까지 아파트 건축이 진행되었고 현재 광화문풍림스페이스본 단지가 위치하고 있다. 복토보존 후 사업시행을 했다고는 하나 지형 자체가 파괴되었고, 고층 아파트가 건립되어 원형은 완전히 파괴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근에 위치한 다른 공동주택 시설인 파크팰리스, 경희궁의 아침 아파트 단지는 경희궁의 궁역이 아니지만 풍림스페이스본의 경우 경희궁의 직접적인 궁역이며 유적까지 확인됐으나 재개발이라는 명목으로 그대로 공사가 진행됐다. 현재 풍림스페이스본 106동 일부, 104동 일부가 경희궁 궁역이다. 2008년 8월 ~ 12월 재단법인 한울문화재연구원에서 [[새문안로|신문로2가]] 1-176번지 일원 발굴조사 진행했다. 조사결과, 고려 말기에서 조선 초기로 이어지는 문화층과 조선 전기 문화층이 중첩되어 확인되었다. 조선 전기의 유구는 건물지 1동이 고려 말기에서 조선 초기로 이어지는 문화층의 유구는 건물지 1개소와 주거지 또는 여막 등으로 추정되는 수혈 6기, 그 밖의 수혈 40여 기가 확인되었다. 역시 철저하게 파괴되었고 아산정책연구원이 건축되었다. 2009년 10월 ~ 12월 재단법인 고려문화재연구원에서 [[새문안로|신문로2가]] 1-158번지 내 유적 발굴조사를 진행했다. 조사결과, 유구는 건물지 1동, 구상유구 1기, 방형전 유구 1기, 축대 및 배수로 등이 조사되었다. 또한 와전류와 자기류 등의 유물이 수습되었다. 그러나 안내판 하나만 만들고 유적은 완전히 파괴되었고 [[통일교]] 재단 사옥이 건축되었다. 2013년 [[새문안로|신문로2가]] 1-124번지 어린이집 건축 부지에서 조선전기 건물지가 출토되었으나, 완전히 파괴한 채 건물이 신축되었고 현재 현대해상어린이집이 운영중이다. 특히 [[현대해상]]은 외부에 유적이 출토되었다는 안내판을 설치하겠다고 했으나 말만 그랬을 뿐 전혀 시행되지 않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