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경신대기근 (문단 편집) ==== [[구제역]]의 발생과 이어지는 냉우, 폭풍우 ==== 구제역도 이쯤부터 창궐하기 시작했다. 황해도에서 7월 한 달에만 폐사한 소가 897마리나 되었다. 8월에는 그 수가 1만 6천 마리로 증가했다. 이후 11월에도 2350마리가 폐사하는 등, 총 2만 2165마리가 폐사했다. 한편 수도권 지역에서는 137마리가 집단 폐사했다. 사람들 또한 역병으로 인해 505명이 감염되었고 26명이 죽었다. 8월이 되면서 냉우, 즉 차가운 비까지 더해졌다. 함경도 쪽은 더욱 상황이 나빠졌는데, 냉우와 우박이 번갈아 내리며 물에 빠져 죽거나 우박에 맞아 죽는 사람이 속출했다. [[논]]과 [[밭]]이 물에 잠기고 [[산삼]] 싹이 냉해로 말라 죽었으며 [[도토리]]까지 열리지 않으니, 사람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 [[만주]] 땅으로 들어가 [[산삼]], [[도토리]] 채취는 물론 [[담비]]까지 사냥했다. 물론 이것은 [[청나라]]와 국경분쟁을 야기했고 새로운 [[외교]] 문제로 등장했다. 8월 중순에 또다시 [[폭풍]]을 동반한 폭우가 쏟아져 경상도에서 익사자만 67명에 달했다.[* 현종실록 현종 11년 8월 11일 3번째 기사, 19일 2번째 기사.] 8월 하순, 폭풍우가 또다시 [[한반도]] 남부를 강타했다. [[어린이]]가 강풍에 날아가다가 추락해 죽고[* 현종실록 현종 11년 8월 27일 1번째 기사. 일기에 따르면 아이는 9살 내외라고 한다. 9살짜리 아이가 날아가다가 추락해서 죽을 정도면 거의 [[토네이도]]와 맞먹는 위력의, 초속 수십 m/s의 거대한 강풍이 몰아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 정도 바람이면 길가의 네온 사인 간판은 가볍게 떨어진다.], 수확기인 [[목화]]가 죄다 말라 죽는 등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 [[전라도]]에선 8월 14일부터 18일까지 내리 닷새 동안 서리가 내렸고, 8월 1일과 22일엔 냉우가 쏟아져 작물이 침수됐다. 거기에 녹색풍(錄塞風) 내지는 살곡풍(殺穀風)이라 불리는 동풍이 불어와 [[벼]]들이 말라 죽었다. 9월 초, [[강원도]]가 폭풍우에 휩쓸려 물 난리가 났다. 황해도에선 우역의 피해가 지속되었고 9월 한 달 동안 8418마리가 추가적으로 죽었다. 경기도에서도 우역으로 3500마리가 죽었다. 10월 말에 폭풍우가 또 한 차례 전국을 휩쓸었는데, 경상도에선 이듬해 수확해야 할 밀과 보리 씨가 말라버렸다. 경기도에선 우역으로 1800마리가 추가적으로 죽었다. 11월, 전염병의 기세는 수그러들기는커녕 더욱 거세졌다. [[여름]]에도 눈과 서리가 내릴 정도였던 이 해의 [[겨울]]은 유난히 혹독했고, 거리로 나선 유민들이 얼어 죽은 사태가 빈번하게 발생하였다. 유민들은 얼어 죽지 않기 위해 남의 옷을 빼앗거나, 시신의 옷을 벗겨 입었다. 이때 혹한의 위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직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기사가 있다. 제주도마저 이랬으니 제주도보다 추운 본토 한반도에 불어닥친 혹한의 위력은 그야말로 전대미문이었을 것이다. >'''[[제주도|제주]]'''에서 지난 [[11월 2일]][* 양력 [[12월 13일]]. 제주시 기준으로 1923년 관측 이래 99년 동안 기록된 12월 평균기온이 7.8℃이고, 12월 13일 하루 평균으로는 8.0℃이다. 어딜 봐도 눈이 올것 같지 않은 평균기온을 자랑하는 제주도가, 12월 중순에 큰 눈이 내렸다는 것은...]에 큰 바람과 큰 눈이 한꺼번에 사납게 일어 쌓인 눈이 한 길[* 대략 '''2.4m~3m''']이나 되었다. 산에 올라가 열매를 줍던 자가 미처 집에 돌아오지 못하고 길이 막혀 얼어 죽은 자가 91인이었으며... (생략) >---- >현종실록 19권, 현종 12년 2월 3일 4번째 기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