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경술국치 (문단 편집) === 행정 === [[일본]]은 1909년 7월의 각의에서 [[대한제국]] 병합을 방침으로 잡은 이후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우선 건강상으로 골골거리던 통감 [[소네 아라스케]]를 대체해서 [[데라우치 마사타케]]를 임명했으며 부통감직을 신설하여 야마가타 이사부로를 임명했다. 이들이 제일 먼저 준비한 것은 조선을 통치할 엘리트 관료들의 모집이었다. 한일합방조약으로 대한제국의 주권을 완전히 손아귀에 얻은 일본은 즉각 [[대한제국]]의 관청과 [[한국통감부]] 조직들을 개편하여 10월 1일 [[조선총독부]]를 설치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조직들을 흡수, 통합, 폐지시켰고 1,434명의 직원들을 해고했다. 한국인 고등관들을 모조리 해고했으며 각 도 관찰사들도 6명만 남기고 모두 해고했다. 당연히 빈 자리는 [[일본인]]들이 차지했다. 이 중엔 전 대만 총독인 [[고다마 겐타로]] 밑에서 대만 통치에 관여했던 인물들이 많이 포함되었다. 이들의 실무 경력도 경력이었지만 고다마가 데라우치와 동향 사람이라 같은 파벌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들 중 상당수는 후일 [[사이온지 긴모치]]에 의해 무능하다는 이유로 내쫓긴[* 사이온지는 다이아 수저급의 귀족이자 프랑스 유학파 출신의 엘리트 정치인으로서 [[문민통제]]를 강조하고 군부의 득세와 전쟁을 극도로 경계하던 인물이었다. 그가 사망하고 마지막 브레이크까지 사라지자 군부는 이듬해에 기어코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다.] 인물들로 인맥, 지연, 학연으로 등용시킨 무능한 인물들이 많았다. 이들 중 상당수가 [[고등문관시험]]을 치르지 않았다. 이후 야마모토 내각은 조선의 개발을 위해 감찰관으로 내무성 지방국장 고바시 이치타를 파견했는데 그는 "일본인 도장관들이 지극히 무능하고 상당수가 [[일본 재무성|대장성]] 출신이라 이들 밑에선 조선이 개발되지 않을 것"이라고 혹평했다. 겨우 남은 한국인 장관들도 실질적으론 허수아비라서 밑의 내무부장, 재무부장이 모든 일을 담당했고 이에 괜히 한국인 장관들의 기분만 상할 판이니 한국인 도장관을 전폐하자는 주장도 나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