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경술국적 (문단 편집) == 경술국적 명단에 들지 않은 이들[*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는 [[친일반민족행위자#s-3|이재면]][[이재면|(고종의 친형 흥친왕)]]이 포함되어 있다.] == 참고로 이 당시 조약 테이블에 같이 앉아 있던 학부 대신 [[이용직]]은 비록 조약 후에 중추원 간부를 지냈고 일본에게 자작 지위를 받았으나 조약에 결사 반대하였고[* 그러나 혼자 반대해 봤자 대세를 뒤집을 힘 따윈 없었다.], 이후 [[3.1 운동]] 당시에 독립 청원서를 제출하여 결국 지위를 박탈당했기 때문에 친일파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용직과 같은 길을 걸은 사람이 바로 온건 [[개화파]]로 한국 근·현대사에서 [[김홍집]]만큼 이름을 뿌리는 [[김윤식(조선)|김윤식]]이다. 둘 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소리를 들었던 적도 있지만, 애시당초 일본의 힘을 빌어 국가를 근대화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던 이들이기 때문에 매국노와는 근본이 다르다. 실제로 대한 제국이 멸망을 피할 수 없게 된 시점에 매국노의 반열에 접어든 자들이 아닌 개화파들은 모두 돌아섰다. 그들의 목적은 조국의 근대화지, 매국이 아니었으니까.[* 김윤식은 자작 박탈 이후에 본의아니게 민족 운동의 분열에 기여하기도 하였다. 정확하게는 김윤식이 사망한 뒤 사회장을 치러야 할지에 대해 온건파(김윤식은 그래도 국가의 대신이었고, 3.1 운동 당시에 독립 청원서를 제출했으니 마땅한 대우를 해야 한다는 입장)와 급진파(한일 합병 당시에 어쨌든 작위를 받았으니 소극적이든 훗날 갱생했든 친일파니 대우하면 안된다는 입장)의 대립 때문에 결국 독립 운동에 영향을 줄 정도로 내부 분열이 생긴 것이다.(...)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