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경부고속도로 (문단 편집) === 통행량 논란 === 개통 당시는 [[자동차]]가 부유층 전유물이었던 시절이고[* 1980년대 중후반이 되어서야 중산층에 자동차가 보급되기 시작하여 마이카 시대가 개막했다.], 물자도 별로 없었으니[* 대형 유통망이 개설될 정도로 물자가 유통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말은 되어야 했다.] 경제에 즉시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주장이 있다. 수송량이 유의미한 수준으로 올라선 것은 1970년대 후반이고, 1980년대 초중반이 돼서야 [[경부선]]을 실질적으로 대체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간접자본]] 투자 사업은 그때 그때 필요한 순간 뚝딱 해결하거나 손쉽게 고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므로 장기적인 안목으로 기획된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또한 1960년대 당시 대한민국의 사업 수행 능력치를 크게 넘어서는 감이 있더라도, 초고속 성장을 염두에 두고 미래를 위한 개발로 정확한 방향을 잡은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당시 낙후된 도로 사정 때문에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데 15시간 정도가 걸렸다. 김포에서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보다도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차가 오래 걸렸던 셈이다. 그러나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5시간 이내로 엄청나게 단축된다. 고속도로는 국도처럼 정지했다가 출발하는 형태가 아니므로 당연히 기름값도 줄일 수 있다. 수송량은 절대적인 수치로는 당연히 적었고 별다른 변화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국민 평균 소득 수준 대비 자동차 보유세와 유류세를 엄청나게 높게 매겨서 일반인의 자가용 보유 자체가 불가능한 시절이었다. 그래서 1970년대 경부고속도로 영상이나 사진들을 보면 거의 트럭 아니면 고속버스 위주로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건설 목적 또한 소수의 자가용 운전자들 통행 편의가 아닌[* 당시 자가용을 보유하는 수준이면 상당한 부자나 마찬가지인데, 이런 사람들이 서울에서 부산을 여행이나 유희 목적으로 이동하는 경우 차라리 1~2시간이면 갈 수 있는 항공편을 이용하는 게 훨씬 간편하지 굳이 저렇게 여론의 뭇매를 맞으면서까지 고속도로 건설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버스와 트럭이 빠른 시간 내에 목적지에 도달하여 국가의 인적/물적 교류의 첨병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개통 당시에는 산업도로가 아닌 관광도로라는 비아냥을 들었지만 이후 울산, 구미 등지의 인근 공단에서 본격적으로 물동량이 쏟아져 나와 개통 4년 만에 화물 트럭이 전체 운행량 과반수를 점하게 되었다. 수도권 근교 작물 농업이 본격화된 것도 경부고속도로를 통해 서울 등 대도시와의 차량 접근성이 좋아진 영향을 크게 받았다.[[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5070700329202010&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5-07-07&officeId=00032&pageNo=2&printNo=9163&publishType=00020|#]]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 역시 고속도로 개통으로 탄력을 받아 1965년까지만 해도 연간 100대 수준이던 한국 자동차 생산량은 1970년에 이미 3만 대에 육박해 북한을 추월했고 [[현대자동차]]가 [[포니]]를 런칭한 1975년에는 4만 대에 육박하는 등 탄탄대로를 달렸다.[[https://kosis.kr/statHtml/statHtml.do?orgId=101&tblId=DT_1ZGA64&conn_path=I2|#]]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