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경례구호 (문단 편집) == 역사 == 한국군의 경례구호 탄생 배경에 대해서는 몇가지 이야기들이 있는데, 박정희의 눈에 띌 건수만 찾던 어느 부대장이 부하들에게 '이제부턴 대통령 각하께 경례시에 충성이란 구호를 외쳐라'라고 지시했더니 박정희가 흡족해하여 정식으로 군 제식이 되었더라 라는 [[https://m.ajunews.com/view/20180418180305898|썰이 있다]]. 사실 유신정권이 수립되고 박정희 1인독재 시점에 충성 구호가 군과 학교 교련수업에서 사용도었다. 특히 1975년 베트남 통일이후 거의 전사회적으로 퍼졌다 또 [[간도특설대]]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다.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1943년 1월 11일자[* 기사제목: 반도징병제에 선구하는 간도특설대의 활약]에 간도 특설대 영내생활에 대해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아침 기상 나팔소리와 함께 일어나는 병대들은 아직 밝지도 않은 영정에 정렬하여 우선 건국신묘와 황거제궁[* [[궁성요배]]는 [[도쿄]]의 [[황거]]를 향해서, 제궁요배는 [[신징]]의 [[만주국]] 황궁을 향해 하는 [[90도]] 경례다. 궁성요배 하나만 했던 식민지 조선, [[대만]]과 달리 만주에서는 궁성요배와 제궁요배를 같이 했다.]요배한 다음 고향을 향하여 오늘의 각오를 고한다고 한다. 그리고 [[개울]]의 꽝꽝 얼어붙은 [[얼음]]을 깨뜨리고 세수를 한 다음 하루의 일과를 시작한다. 군규가 엄격한 것은 자랑거리이다. 병대들은 경례를 할 때 마다 “충성” 구호를 외치고 활발한 동작을 한다. 몸과 마음의 깨끗한 점과 건군과 유신의 길은 여러 곳에 구현되어 있다. 이 간도특설대만의 [[관습]][* [[일본군]]은 경례구호를 사용하지 않았다.]이 [[만주군]] 출신인 박정희 前 대통령에 의해 부활된 게 바로 국군 경례구호의 유래라는 주장이다. 창군 당시에는 경례 구호가 없었다. 당시 국군이 보고 배웠던 미군부터가 경례 구호가 없었으며[* 레인저 등의 일부 부대 제외] 실제로 [[빨간마후라]], [[5인의해병]] 등을 비롯한 1950년대 배경 군대 영화에서는 경례구호가 나오지 않는다. 1956년 나온 영화 ‘격퇴’에 묘사되어 있는 경례장면. [[https://youtu.be/Pewfjh5G4Ys?t=01m39s|#]] 확실한 것은 여러 이야기들이 박정희와 연관되어 있고 박정희 정부에서부터 경례구호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https://www.ehistory.go.kr/page/view/audio.jsp?srcgbn=KV&mediaid=1000060&mediadtl=1000067&gbn=SD|한국정책방송원 -1973년 파월 개선 장병 환영식 기록음성]] [[국기에 대한 맹세]]가 박정희 정부에서 시작된 것과 같은 맥락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