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경대승 (문단 편집) ==== 도방의 폐해 ==== >'''당시 개경에 강도떼들이 마구 설치며 자신들을 경대승의 도방이라 일컬었다. 해당 관청에서 체포해 옥에 가두면 경대승이 그때마다 석방하니 이로 말미암아 강도들이 약탈을 거리낌없이 공공연하게 자행'''했다. 경대승의 문객(門客)이 양가의 자제를 대로상에서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관가에서 체포하여 죄를 다스리려고 했지만, 경대승이 극력 힘써준 바람에 방면되었다. >---- >'''《[[고려사]]》''' <경대승 열전>. ---- >도방은 처음에는 경대승의 신변 보호를 주목적으로 하였다. 그러나 점차 경대승의 호위에 그치지 않고 반대 세력의 움직임을 탐지하여 형벌을 내리거나 숙청하는 역할 등을 담당하였다. 또한 당시 개경(開京)에는 스스로 도방의 구성원이라고 칭하는 도적떼가 일어났는데, 관부에서 이들을 체포하면 경대승이 석방해 주었으므로 공공연히 약탈을 자행하는 폐단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 >'''국사편찬위원회''', <도방> 항목 경대승 자신의 청렴함은 앞서의 예들을 보더라도 알 수 있듯 딱히 의심할 바가 없지만, 경대승이 이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탓에 그의 호위 부대였던 도방은 파가 갈려 분란이 일어나고 약탈을 자행했다는 것 또한 명백한 사실이다. 게다가 경대승은 이들이 막 나갈 수 있게 뒤를 봐주기도 했다. 경대승의 본관인 청주 경씨는 경대승의 아비인 경진이 시조인 신흥가문으로서 [[무신정변]]으로 인해 급격하게 재산을 불린 여타의 다른 무신 가문들처럼 의외로 가문 자체의 재산은 얼마 없었을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경대승은 아비 경진이 불법적으로 불린 재산을 대부분 반환하고 나머지 일부를 도방 운영에 사용했는데 이러니 자금난에 시달릴 수 밖에 없었다. 후대의 [[최충헌]]이 재창설한 도방 및 [[최우]]의 [[삼별초]] 군대가 최소한 민간에 대한 약탈 문제는 없었다는 점에서[* 최충헌의 경우, 외가가 당시 매우 부유했던 지역인 [[진주]]의 유지인 진주 유씨였던 관계로 자금에 관해서는 다른 무신집정들에 비해 사정이 매우 나은 편이었다. 최씨 정권의 집정들인 최충헌, 최우, 최항이 차례로 진주에 부를 개설한 이유도 여기에 있는데, 최충헌의 본가는 우봉 최씨로서 우봉은 지금의 [[황해도]]에 있는 지역이다. 외가의 자금력이 아니라면 진주에 부를 개설할 이유가 없다.] 경대승의 경우, 그나마 있던 집과 전답을 모조리 처분했음에도 고작 100여명의 사병을 먹여살리지 못해 이들이 민간 약탈이라는 파행의 길을 걸었다는 것은 자금난 문제가 매우 심각했다는 증거다. 그러나 자금난에 허덕이면서도 경대승은 도방 운영을 포기하지 않았는데[* 사실 여기서도 경대승의 융통성 부족이 드러나는게, 운영은 포기하지 않지만 일탈이 지속된다면 사실상 최고 권력자인 자신의 입지를 활용해 얼마든지 도방 운영비를 정부 혹은 후원자들의 재정으로 충당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허나 경대승 성격상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정중부]]를 죽이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당시의 정치 현실을 무시하고 중방마저 무력화 시켜 버리면서 [[무신정권]]에 호의적이었던 고위급 장교들에게 제대로 어그로를 끌어버렸기 때문이다. 기록에도 경대승에 대한 암살 시도가 줄을 이었다고 나와있는데, 결국 경대승은 집권기 중 도방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화장실]]에 갈 때조차 도방 병력들이 그를 호위했을 정도로 본인 신변에 대한 노이로제가 걸려버렸다고 판단된다.[* 경대승이 죽은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기록에는 [[정중부]]의 귀신을 보고 놀라 죽었다고 나와있으나, 이는 암살 시도에 대한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고 이에 따른 정신적 충격으로 죽었을 가능성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니면 실제로 암살이 성공하여 죽었던가.. 물론 도방이 떡 하니 지키고 있는데 역사 기록에도 거론되지 않을 정도로 은밀하게 암살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낮긴 하다.] 게다가 사실 도방은 국가에 소속된 것이 아닌 경대승 개인 [[사병]] 집단의 성격을 가지고 있어 정당성 또한 부족했는데, 이런 도방의 형태는 후일 [[최충헌]]이 그대로 따라하여 [[삼별초]] 같은 사병 집단을 보유할 수 있게 하는 근거가 되었다. 굳이 순기능을 찾자면 최충헌 집단 못지않게 제대로 된 국정 운영을 방해하던 중방을 무력화한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는 게 되겠다. 도방의 문제점은 심각했지만 무자격한 지방관 파견 및 부정부패를 저지르던 중방은 역시 척결해야 할 집단인 건 맞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