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경기동부연합 (문단 편집) == [[민주노동당]] 장악 참여 == 전국연합은 2001년 처음으로 충북의 군자산에 모여서 6.15 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집회를 열고, 연방제 통일을 제1과업으로 설정하고 과업달성을 위해 총력투쟁을 전개할 것을 선언하면서, 향후 10년간의 자신들의 목표와 실천방안을 담은 [[군자산의 약속|9월테제]](일명 '''군자산의 약속''')을 발표한다. 그리고 9월테제에 담긴 대로 NL운동가들은 [[민주노동당]]에 대거 입당하기 시작했고, 2004년 전당대회에서 NL계가 당권을 장악한다. 2001년에 쓰어딘 군자산의 약속에서는 3년 내에 통일전선조직을 건설하고, 2012년에 공동연립정부 구성을 목표로 한다고 쓰여있다. 하지만 2012년 총선 공천과정에서의 통합진보당 부정경선 사건의 여파로 인해 일이 꼬여버렸다. 사실 경기동부연합과 [[울산연합]]은 군자산의 약속 이전부터 개별적으로 민주노동당에 입당해서 활동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아무래도 군자산의 약속은 당시 NL 최대 계파였던 [[인천연합(정파)|인천연합]]의 집단 입당으로 의미가 있다. 초기에 민주노동당에서 용산 지구당 사태를 비롯해서 문제를 많이 일으킨 NL 정파도 인천연합이었다. 경기동부연합은 당시 한총련 혁신파[* 믿기진 않겠지만 경기동부는 '''과거 NL 주류의 패권적 행태를 비판'''하며 떠올랐다. 당시엔 한총련의 강경파(전남의 남총련 등)나 범민련을 비롯한 NL의 주류는 현실 문제보다는 반미, 통일 문제에만 집착했는데, 경기동부연합은 [[광주 대단지 사건]] 이후 성남지역의 도시빈민운동, 노동운동을 기반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민중운동을 기반으로 하는 민족해방운동을 주장하였다.]였던 사람사랑 계열, 반미구국 노학연대선봉대(약칭 '노선대')[* 민혁당의 지도를 받았던 애국청년선봉대의 후신. 서울대, 고려대 등이 중심이 되었고 이후 자본주의 연구회 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통합진보당 의원을 지낸 [[김재연]]이 외대 총학생회장 시절 이 계열을 대표해 [[한총련]] 의장에 출마하나 강경파에 밀려 낙선한다.] 등의 조직을 통해 서울, 경기지역 여러곳의 총학생회를 수권하며 학생운동의 주류로 올라선다. 이들은 [[21세기 진보학생연합]]이나 [[노동자연대|다함께]] 등 범좌파가 주로 활동하고 있던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를 장악하고, [[한총련]]을 이어 출범한 [[한대련]]도 장악하면서 학생운동부터 이어지는 활동가 유입구조를 확보하면서 NL계열의 주도권을 잡았다. 다른 운동권 정파들은 젊은 활동가가 씨가 마르는데, 여기는 마르지 않는 샘물급이다. 당시 말하던 NL 주류는 [[인천연합(정파)|인천연합]]을 지칭했다. 오히려 1990년대, 2000년대 초반까지는 경기동부가 인천연합보다 사실상 "세련된" 운동을 주장하고 NL 활동가들의 지지를 이끌어 낸 것이다. 또한 인천연합계의 분화와 일정 수준의 과거 패권주의에 대한 반성으로 연성화되면서 경기동부연합이 2000년대 중후반부터 NL 계열의 주도권을 잡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