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견환 (문단 편집) === 황제의 새 신부 === 일편단심인 남자와 평생 함께하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며 등장하고 온실초에게 수녀간택에 가지 말고 같이 살자며, 부부의 연을 뜻하는 온실초의 가보 옥주전자를 받으며 청혼을 받지만 견환은 그를 친오빠처럼 생각한다며 거절한다. 그 뒤 수녀간택에 나가는데, 자신이 참여하지 않으면 동생 [[견옥요]]가 나중에 대신 참여해야 해서 어쩔 수 없이 나간 것으로 간택에 떨어지기 위해 일부러 수수하게 차려입었다.[* [[심미장]]이 견환 옷을 보고 수수하다고 했고, 그나마 걸고 있던 [[귀걸이]]는 하동춘([[하동춘|하상재]])에게 모욕을 당하는 것을 구해주다 친해진 [[안릉용]]에게 줘버렸다.]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었을 때 직전에 심미장이 간택된 것을 기뻐하느라 대답이 늦었는데, 자신의 이름자를 능숙하게 시구로 설명하면서 옹정제의 눈에 띄게 된다. 옹정제는 자신의 적복진이었던 [[순원황후]]를 아주 닮은 얼굴에 놀라며 강력히 견환을 후궁으로 밀고, 이를 염려한 [[오아 성벽|태후]]의 고양이 시험, 성씨가 선대 황제의 휘호와 비슷하지 않냐는 공격성 질문에도 침착하게 행동한 점이 플러스로 작용~~예쁘면 된다~~[* 실제론 좋은 가문과 덕을 갖춘 여자~~덕이 있는지 그 짧은 만남에서 어떻게 보는진 모르지만~~를 뽑는 것이다. 너무 예쁘다 싶으면 오히려 [[경국지색]]이라 꺼린다. 그렇다고 못생긴 사람을 뽑기도 그러니 적당한 선에서 미인을 고르는 것.]해 간택된다. 황제는 바로 귀인으로 들이려했지만, 황후가 이미 같은 한군기인 심미장을 귀인으로 정했고. 한군기에만 귀인이 둘이면 차별대우로 여겨질것이라 조언을 했기 때문에 상재에 머무른다. 대신 간택후궁들 중 유일하게 봉호 완[* 견환이 인용한 시구에 감명을 받은 황제가 마찬가지로 시구에서 따서 지어줬다. 사실 굳이 '완'이란 봉호를 준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순원황후의 애칭이기 때문. ]을 받는다. 황후에게 문안인사를 드린 첫날부터 궁의 실세인 [[연세란|화비]]가 [[하동춘|하상재]]에게 일장홍(허리 밑을 살이 떨어져 나가고 피가 튀기도록 치는 형벌)을 명한 것을 보게되고, 그것으로 모자라 우물에서 복자의 시신을 발견하게 된다. 원치않는 입궁을 했는데 황궁의 잔혹함을 목격하기까지 했으니 큰 충격을 받아 병이 걸리고, 궁중의 숨막히는 암투에 휘말리는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결국 어릴 때부터 친했던 어의 [[온실초]]의 도움을 받아 보름이면 나을 병을 아주 천천히 치료하면서 조용히 칩거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신년에 소원을 빌다가 [[옹정제(후궁견환전)|황제]]와 마주치고, 견환이 읊은 시구를 들은 황제는 이름모를 여인의 높은 학식에 호기심을 품고 다가가려 하지만 숨어있던 견환은 의매원의 궁녀라 거짓말하고 도망가버렸다. 그러나 운명은 어쩔 수 없는 건지 결국 황제와 대면하고, 황제가 [[애신각라 윤례|과군왕]]을 사칭하는 바람에 속아넘어간다. 사실 견환은 '과군왕은 20대 중반인데, 그렇게 안 보인다'며 의심했는데 황제가 노안 드립을 쳤다(...) 그리고 그 뒤로 만남이 있을 때 마다 과군왕을 불러 입궁시켰기 때문에 내내 반신반의하던 견환은 결국 속았다. 둘은 시와 음률울 논하며 서로를 사랑하게 되고, 만남을 지속하던 중, 어화원을 찾아온 [[여앵아|여씨]]에게 당하던 것을 황제가 구해주면서 견환은 자신이 만나던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된다. 시침도 들지 않은 몸으로 바로 귀인으로 품계가 올라간 것[* [[여앵아|여답응]]이 총애만 믿고 자신보다 품계가 높은 견환에게 "[[하극상|겨우 한 단계 높은 것 가지고 난리냐?"며 욕을 하다]] [[인과응보|황제가 보고 여답응은 강등시키고 견환은 귀인으로 품계를 올려준다.]]]을 시작으로 아낌없는 총애가 시작된다. 첫날밤은 탕천궁에 데려가 마치 신혼여행처럼 보냈으며[* 다른 후궁들은 최소한의 장신구도 하지 않는 알몸으로 김밥말이처럼 이불에 돌돌 말려져 양심전에 배달되어 첫 시침을 들었다. 행여나 시침을 드는 그 후궁이 그릇된 마음을 품고 무기를 숨겨서 황제를 해할 수 있기 때문. 왕의 처소에 가구가 별로 없고, 방 배치를 단순하게 해놓는 것과 일맥상통하다.] 돌아온 뒤엔 순원황후와 화비에게만 해 준 신방을 쇄옥헌에 차려주기까지 했다. 황제는 하루가 멀다하고 쇄옥헌에 찾아오면서 귀한 촉금 비단으로 신발을 만든 것을 하사하고,[* 작중 금실로 수를 놓은 촉금은 스무 명이 석달 간 수를 놓아야 겨우 한 필이 나온다는 언급이 있으며, 1년에 딱 1번인 2월에 황제와 태후에게만 진상된다고 한다.] 동심결[* 영원이라는 뜻을 지닌 매듭으로, 혼인 시 주고받는 사주단자의 매듭이나 남녀 간의 진실된 사랑의 정표로 주고받는 물건이다. 작중 황후가 황제가 견환에게 동심결을 줬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라는 장면이 나오는 만큼 대단한 사랑의 표시인 것이다.]이나 장상사[* [[애신각라 윤례|윤례]]의 어머니인 서태비가 선황 [[강희제]]에게 사랑의 뜻으로 받았던 선물.] 등 사랑의 정표를 무수하게 안겨줬다. 훗날 [[연세란|화비]]가 몰락하고 죽음을 앞뒀을 때, 견환이 받은 총애에 대해 '''"너만 총애하시는 게, 싫었다. 그토록 총애하는 여인은 네가 처음이었어. 네가 온 뒤로, 날 찾지 않으셨다."'''고 인증했을 정도. 화비가 황제에게 받았던 수많은 특권과 총애는 후반부의 견환 못지 않을 정도로 엄청났다. 심지어 화비는 오빠 [[연갱요]] 때문에 전략적으로라도 황제가 찾았었고. 그런 화비마저 이렇게 말할 정도라면 초반부의 황제가 견환을 얼마나 총애했는지 드러난다. 그러나 이 총애 때문에 자동으로 화비의 표적이 되어 화비파 후궁들([[조금묵|조귀인]], [[비운연|여빈]], [[여앵아|여답응]])의 공격을 받는 상황에 놓인다. 하지만 거기 굴하지 않고 총명한 머리로 재치있게 받아치며 [[심미장|미장]], [[안릉용|릉용]]과 함께 박해를 견딘다. 그런 강단있는 모습에 화비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던 [[풍약소|경빈]]과 [[제월빈|단비]]도 그녀의 편을 들게 된다. 또한 황제의 아이를 회임하고 빈으로 품계가 상승하면서 점차 화비의 대항마로 떠오른다. 그러던 중 [[옹정제(후궁견환전)|황제]]와 [[오라나랍 의수|황후]]가 기우제를 드리기 위해, [[연세란|화비]]에게 내명부를 맡기고 궁을 잠시 떠나게 된다. 이날을 벼르고있던 화비가 비빈들을 모두 불러모으자 몸이 좋지 않아 주저하다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트집을 잡히고만다. 결국 대낮에 화비의 익곤궁 앞마당에 꿇어 앉아 책을 읽는 벌을 받다가 '''반 시진만에 쓰러지고 아이를 유산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일단 [[옹정제(후궁견환전)|황제]]나 [[오아 성벽|태후]]는 [[연세란|화비]]에게 내준 환의향과 견환이 몸이 약해진 일이 겹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 생각하나, 유산의 주범은 [[오라나랍 의수|황후]]와 [[안릉용]]이었으며 견환도 훗날 이 사실을 알게된다.] 천만다행으로 [[애신각라 윤례|윤례]]가 익곤궁까지 뛰어들어 구해주지 않았다면 견환도 위험했을 상황이었다. 그러나 [[옹정제(후궁견환전)|황제]]가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연세란|화비]]를 크게 처벌하지 못하고,[* [[연세란|화비]]의 오라버니인 [[연갱요]]가 서북 전쟁에서 승리를 거듭해 군의 사기가 바짝 올라 있는 상태였고, 군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화비를 죽이거나 폐하거나 냉궁에 가두면 연갱요가 폭주할지 모를 상황.] 황제를 원망하게 된다. 유산으로 몸이 약해지고 원망이 쌓이는 동안 황제가 자기 대신 [[안릉용]]을 총애하는 것을 보고 실망하여 오랫동안 거리를 둔다. 이 상황을 보다못한 미장이 견환을 냉궁으로 데려가서 총애를 잃은 후궁이 얼마나 비참해지는지 보여주고, 그 뒤 [[이정언|제비]]와 [[부찰 의흔|부찰귀인]]에게서 심한 모욕과 갈굼을 당하면서[* 견환이 자신과 부딪혔다는 이유로 '''시종을 시켜, 입안에 피가 터질 때까지 싸대기를 때린다. 그래놓고 몇 시간을 꿇어 앉게 한다.'''] 후궁에서 살아남고, 자신의 아이를 앗아간 [[연세란|화비]]에게 복수하기 위해 계략을 써 총애를 되찾는다. 또한 황제가 연갱요와 돈친왕의 대두에 고심하는 것을 보면서 그의 괴로운 처지를 이해하고 자신의 지혜를 빌려준다. 그리고 화비의 심복인 [[조금묵|조귀인]]에게 준가르에서 왕비를 요구했을 때 온의가 너무 어려 대신 보내진 조괴공주의 이야기를 거론하며, 딸이 훗날 커서 화친의 제물이 되거나 찬밥대우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조귀인의 두려움과 불안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온의의 양모가 되어 온의를 좋은 곳으로 시집보내 주겠다며 포섭한다. 이후, 조귀인의 도움과 심미장과의 협공으로 화비의 모든 죄를 낱낱이 까발려 몰락시키고 죽음으로 몰아넣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후, 예상치 못했던 인물인 [[오라나랍 의수|황후]]가 그를 함정에 빠뜨린다. 견환이 비로 책봉되는 날 견환의 대례복을 찢고 [[순원황후]]의 대례복[* 그런데 자세히 보면 순원의 예복은 사실 화비가 온의 돌잔치 때 이미 입은 옷이고, 나중에 견환의 환궁하는 날 당시에 [[안릉용]]도 입는 옷이다. 제작비 문제 때문인지, 예복은 옷깃과 털장식만 바꿔서 많이들 돌려입은 듯하다. ~~다들 잘만 입었는데 왜 견환한테만 그래~~]을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만들었다. 순원황후의 존재는 황제에게 있어서 일종의 역린인데,[* [[순원황후]]를 그렇게나 사랑했던 황제는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아련한 첫사랑인 순원을 영원히 그 모습 그대로 간직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누구라도 순원을 모욕하거나, 함부로 언급하거나, 유품에 손을 댄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는다.] 아무것도 몰랐던 견환은 황제의 분노를 정통으로 맞으며 비 승급은 없는 일[* [[오라나랍 의수|황후]]가 "완비는..." 하면서 거짓 쉴드를 치려하자, 황제는 "아직 황후에게 인사를 드리지 않았으니, 비로 인정할 수 없다!"면서 화를 냈고 비 책봉을 없던 일로 만들어 버렸다.]이 되었다. 그것으로 모자라 녹봉도 답응에 맞춰지고, 거처에 연금되어 건강이 악화되었는데도 태의조차 쉽게 부를 수 없는 상황으로 몰린다. 결국 친정시녀인 [[유주(후궁견환전)|유주]]가 의원을 부르기 위해 처소의 시위와 실랑이를 벌이다 스스로의 목숨을 희생하고, 이 일로 또 회임했음이 드러난다. 하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설상가상으로 부친인 견원도가 [[과이가 문원|기귀인]]의 과이가 가문에게 고발을 당해 몰락하고 [[흑사병]]에 걸리는 등 시련이 이어진다. 특히 견환을 가장 절망시킨 것은 '''[[옹정제(후궁견환전)|황제]]가 그토록 사랑하는 순원황후와 자신이 무척 닮았으며, 황제는 견환을 순원황후를 대신하는 여인으로 취급했다는 사실'''이었다. 여태껏 황제와 나누었던 모든 사랑이 허상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은 견환은 갓 태어난 딸인 [[롱월공주]]마저 포기한 채 [[절(불교)|절]]로 출가할 것을 결심하게 된다. [[류렴자|작가]]의 말에 의하면 집안은 누명을 썼고, 본인은 후궁에서 힘이 미약하며, 낳은 아이는 공주였기에 가망이 없다는 판단도 있었다고. 다만 자신 때문에 딸까지 미움을 받게 할 수는 없기에 '''[[롱월공주]]의 아명을 순원황후의 아명과 발음이 같은 완완이라고 짓는다.'''[* 물론 한자는 전혀 다르다. 견환도 어찌 감히 선황후의 아명을 따르겠냐는 말을 했고. 순원의 아명은 宛宛(완연할 완), 롱월의 아명은 綰綰(얽을 관). 한국식 한자 독음은 전혀 다르고 뜻도 다르지만 중국어 발음이 두 글자 모두 완이다.] 황제가 아기를 부를때마다 [[순원황후|순원]]이 생각나도록... 황제는 그래도 둘 사이에 자식을 봤다는 게 기뻤는지 "아직도 모르겠느냐? 넌 내 아이를 낳았잖느냐.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느냐?"라며, 원한다면 용서--지가 잘못해놓고는--해주고 비로 승급하켜 새 처소를 지어주겠다는 등의 감언이설을 하며 출가를 말리지만 이미 정이 차갑게 식어버린 견환에겐 통하지 않았다. 결국 황제는 정색하며 "네가 정 원하면 빨리 떠나거라." 하면서, 그 자리를 떠버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