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겨울전쟁 (문단 편집) == 이후 == 억울하게 영토와 재산을 빼앗기고 큰 피해를 입은 핀란드는 이후 [[추축국]]에 가담하여 1941년부터 '[[계속전쟁]]'을 벌여 잃었던 영토를 일시적으로 회복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1944년에 전세가 뒤집히자 독일을 버리고 소련에 붙어서 다시 뱉어냈다.[* 핀란드는 독일측에 이대로면 소련군이 직접 무력으로 독일군을 몰아내러 오게 되니 온건하게 후퇴해달라고 했지만 하필 현지 지휘관인 [[로타르 렌둘릭]]이 꼬장을 부린 통에 [[라플란드 전쟁]]이라는 교전이 발생하면서 피해를 입었고 이후 소련에게도 각종 삥을 뜯겨야 했다. 다만 렌둘릭의 경우 소련의 겨우 3일만에 핀란드 영토 내에서 모든 독일군을 없애라는 핀란드에 대한 무리한 요구 때문에 빠른 후퇴가 불가능했던 측면도 있다. 렌둘릭 휘하 독일군이 노르웨이까지 빠져나가려면 1000km 가량을 이동해야 했다. 계속전쟁 종전 후 핀란드 병사 개인들 중에는 인간병기 [[라우리 퇴르니]]처럼 소련에 대한 반감으로 [[무장친위대]] 같은 독일군에 적을 옮겨서 2차 대전 종전까지 싸운 경우도 존재한다.] 소련군에게 겨울전쟁의 심각한 피해는 값이 매우 비싼 수업료였지만, 이렇게 비싼 값을 치르고 배운 전훈은 훗날 [[독소전쟁]]에서 크게 도움이 되었다. 소련군은 장비, 의복과 전술에 있어서도 많은 부분에서 변화가 있었다. 대표적으로 수많은 병사들이 동사한 것에 교훈을 얻어 방한장비가 대폭 개선되었으며, "기관단총은 총알을 낭비한다"는 과거의 교리 탓에 기관단총 채용을 거부했다가 핀란드제 기관단총 [[KP/-31]]에게 호되게 당한 붉은 군대는 이후 현대전에서 기관단총의 효용을 깨닫고 [[PPSh-41]]을 전군에 보급하게 된다. 독소전에서 초반 대참패 끝에 모스크바를 내줄 위기에 몰렸던 [[모스크바 공방전]]에서는 이때 체득한 동계작전의 교훈을 십분 활용해 [[독일 국방군]]에 톡톡히 돌려주었다. 모스크바 전투 때는 소련군이 질 뿐만 아니라 이후 전투에서 독일군에 우위였던 '''양까지도''' 뒤져 있었던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울전쟁 때 체득한 동계 작전의 교훈을 활용하여 독일군을 100km 정도 후퇴시켰고, 이는 소련군에게 기사회생의 전기가 되었다. 또한 소련은 개전 후 [[국제연맹]]에 의해 침략자로 낙인찍혀 1939년 12월 14일 축출되었다.[* 침략전쟁을 이유로 한 이런 축출은 소련이 유일했다. 사실 나치 독일과 일본과 이탈리아는 침략을 시작하던 1933년 일찌감치 스스로 탈퇴했기 때문에 이런 처분은 당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차피 국제연맹은 이미 1931년의 [[만주사변]] 이후로 이미 유명무실한 존재였다.] 동시에 [[영국]]과 [[프랑스]]의 주저가 [[적군|소련군]]의 낮은 질적 수준을 히틀러에게 알려준 계기가 되어 이후 히틀러는 자신감을 갖고 [[독소전쟁|소련]]을 침공한다는 계획을 명백히 하였다. 냉전 시기의 핀란드는 중립을 유지하면서 [[NATO]]나 [[바르샤바 조약기구]]에 따로 가입하지는 않았으나, 소련과 군사조약을 맺고 있었고 초강대국 소련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소련제 무기로 무장하고 소련을 반대하는 방송·도서를 자체 검열하는 등 "알아서 기어야" 했다. 소련 정부 입장에서도 핀란드는 공산당이 지배하는 국가가 아니고 서방식 민주국가였지만, 소련의 외교 방침을 크게 거스르지 않았고, 공산화할 경우 미국과 서방 국가들의 반목을 살 것이 뻔했기 때문에 소련이 망할 때까지 핀란드에 노골적인 간섭을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알아서 기는 관계가 1970년대 핀란드 경제에 도움이 된 면도 많았는데 [[오일쇼크]] 당시 핀란드는 소련의 우방국 대접을 받아 저렴한 소련제 원유를 도입할 수 있었고 1970년대 내내 서방국가들이 경기침체에 빠졌지만 핀란드는 이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약소국이 강대국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스스로 자국의 정치·사회를 통제하는 유화주의, 자기검열식 행태를 정치학에서는 "[[핀란드화]](핀란드어: suomettuminen, 스웨덴어: finlandisering, 독일어[* '핀란드화'라는 용어는 당시 반공 진영의 일원이었던 서독의 정치·역사학자들이 처음 쓰기 시작했다.]: Finnlandisierung, 영어: Finlandisation)"라고 표현한다. 핀란드인들은 "주변 강대국의 도움 없이 홀로 소련과 맞서야 했던 핀란드의 처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면서 이 단어를 매우 모욕적으로 여긴다. 다만 [[총균쇠]]를 서술했던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냉전시기의 핀란드의 이런 유연성을 높이 평가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