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건축 (문단 편집) == 건축은 예술인가? == ||<:>[[파일:Pritzker_Announcements_March7.jpg|width=100%]]|| ||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 수상자들의 작품 || 건축과 [[건축학]]을 [[예술]]로 보는 경우도 있다. [[프랑스]]의 예술학계에선 건축을 제1의 예술로 분류하고, [[한국십진분류법|국내 도서관 분류법의 5판]]까지는 건축 서적이 예술 서적으로 분류되었다.[* 다만 6판으로 개정되면서 건축은 제외되었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자 선정 기준도 ''''건축 예술'''을 통한 재능과 비전, 책임의 뛰어난 결합'이 주요 선정 기준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건축의 타 순수 예술과의 차이점이 있다면 음악이나 미술 작품 등은 안 듣거나, 안 보는 것을 개인이 선택할 수 있지만, [[건축물]]은 철거하지 않는 이상 그 근처를 지나며 반드시 보게 된다. 따라서 건축물의 존재 자체가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게 된다. 따라서 건축은 "사회적 책임을 지는 공공성을 띈 기능적 제한 내에서 우수한 디자인 혹은 예술이자 공학 공공재"라고 볼 수 있다. 건축설계를 위해서는 건축물이 지어질 땅에 대한 지역성, 역사성 등을 고려하여 사회학적, 인문학적 관점에서 문제를 인식하고 분석한 다음, 예술과 디자인의 영역으로 넘어와서 문제를 풀어낸 후, 공학과 기술의 영역으로 넘어와서 실제 건축물로 구현해낼 방법을 모색하는 일련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처럼 건축설계에는 인간이 사용하기 위한 공간을 심미적, 실용적으로 설계, 공학적 지식과 기술을 바탕으로 실제 사용할 수 있게 현실화 하는 일련의 과정이 포함되며, [[예술]]/[[디자인]]/[[공학]]/[[과학]]/[[기술]]/[[인문학|인문]]/[[사회]]/[[역사]]/[[철학]]/[[심리]]/[[경영]][* 건축을 예술과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사회적 기능은 경제성이다. 그림은 물감과 종이가 있으면 그릴 수 있고, 영화는 스마트폰만 있으면 간단한 유튜브 영상이라도 찍을 수 있다. 하지만 돈이 없다면 땅을 살 수도 없고 타일 한 장을 깔 수도 없다. 자신이 작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음악이나 회화 등과 다르게 남의 부탁을 받아 남의 돈으로 작품을 하기 때문에 엄청난 제약을 받고 대부분은 평생 작품다운 작품 활동을 해볼 수 없는 직종이다. 물론 예술도 분야에 따라서는 건축보다도 훨씬 많은 돈을 투자하는 경우도 많기에 일반화할 수는 없다. 이러한 건축의 중요함을 잘 나타내는 말로 '''"사람은 건물을 만들지만 그후엔 [[러시아식 유머|건물이 사람을 만든다]]."'''는 [[윈스턴 처칠]]옹의 말씀이 있다.] 등의 모든 분야의 배경 지식을 기초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유명한 건축가의 작품들 역시 순수 예술 분야와는 다른 기준으로 평가받으며, 아무리 미학적으로 우수해도 이용자에게 불편하다면 좋은 평가를 받기 힘들다.[* 대표적으로 미스 반 데어 로에의 판스워스 하우스이다. 강철과 백색 외장, 유리만으로 이루어진 이 건물은 누가봐도 투명하고 현대적이며 세련되었지만 문제는 '''주택'''이었다는 것. 온통 유리로 되어 있는 이 곳은 겨울이 되면 유리에서 얼음이 어는 것은 일상에, 유리 특성상 내부가 전부 다 비쳐 보여서 '''사생활을 아예 보호받지 못한다!''' 거기다가 완전한 수평을 지향한 천정은 이윽고 물이 흘러 빠지지 못해 고여 새어내려오기 시작해 집안이 온통 물바다가 되기 일쑤였던 것. 결국 판스워스는 미스와 소송전을 벌였지만, --한국에선 상상할 수도 없는--건축가의 철학에 손을 들어줘 판스워스는 결국 패소하고 21년간 보초를 서듯 거주하다 타국으로 이사를 가버렸다. 그리고 이 건물은 수집가의 손을 거쳐 박물관으로써 개장된다...][* 비단 이 사례뿐만 아니라 수많은 스타 건축가들은 유명해진 뒤 자신의 철학과 사상에 심취한 나머지 판스워스처럼 휘둘리기 쉬운 건축주를 만날 경우 통제불능의 망가진 어떤 무언가를 짓는 경우가 일쑤이다. 물론 건축가의 잘못도 있겠지만, 이처럼 미학적·철학적 완전성을 추구하다 [[주객전도|정작 가장 중요한 건축 본연의 가치를 잃게 될 경우]] 아무리 스타 건축가라 해도 짓고 난 뒤 비판을 피할 수 없는 것이 바로 건축이--며 이런 건물들의 말미도 결국 박물관행이 된다는 점도 같--다.] 대표적인 예로 [[르 코르뷔지에]]가 말년에 설계한 '[[르 코르뷔지에 파리 계획안]]'을 볼 수 있는데, 도시를 구성하는 공학적 연구와 도시와 도시 내의 건물의 건축적 사상을 뛰어 넘어, 도시의 형태와 기능으로 말미암아 거주하는 사람에게 어떤 영향이 미칠 것인지, 거주하는 사람이 어떻게 이 도시와 건축물을 받아들일 것인지, 그리고 여기서 태어나고 자라나는 사람에게 이 도시와 건축물은 과연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까지 고려되어 있다.[* 물론 현실의 건물과 도시들은 계획도시인 경우가 거의 없다. 하지만 계획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 가치가 퇴색되는 것은 아니다. 긴 역사를 가지고 자연히 구성되어온 시간들이 계획을 대체한다. 여러 환경과 상황,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선택되고 탈락하여 남은 정수이기 때문이다. 사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살고 지나가는 곳이 바로 도시인데 그 곳이 어떻게 구성되고 순환되는지에 대한 “도시적 맥락”을 정확히 간파하고 이를 변화시킨다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다. 특히나 한명 또는 소수의 건축가라면 더더욱.] 즉, 그야말로 진정한 건축이란 이렇게 어떤 특정한 [[학문]]으로 나누어 볼 수 없는, 그런 세계에 있다는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