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건빵 (문단 편집) ==== 육군 ====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PensacolaWentworthAug2008Hardtack.jpg|width=100%]] || || '''1862'''년부터 [[애틀랜타]] 지역에서 보존되어온 건빵 [[https://en.wikipedia.org/wiki/Hardtack| 이미지 출처]] || 유럽/중동판 건빵인 '''하드택(Hardtack)'''의 역사는 [[고대 이집트]] 시대로 올라간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듀우라(Dhourra)라는 이름의 딱딱하고 잘 부서지는 과자류를 항해용 보존식으로 사용했는데, 이 과자빵의 가장 오래된 기록이 [[람세스 2세]]인 걸로 봐서 적어도 이 때부터는 널리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이 제빵기술은 [[로마]]로 넘어가서 개량되었는데, 로마인들은 이 과자빵을 두 번 구워서 수분을 최소화함으로써 보존기한을 극단으로 늘렸다. 로마인들은 이렇게 2번 구운 빵을 싸구려 작은 빵이라는 뜻의 부클럼(Buccellum), 혹은 두 번 구운 빵이라는 뜻의 빠니스 비스-콕투스(Panis Bis Coctus)라고 불렀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 이름이 Biscoctus → Bescuit → Biscuict → Biscuit으로 변화한다. 지금은 [[과자]]라는 뜻으로 쓰이지만 적어도 14세기 중세 영어까지는 비스킷이 유럽/중동식 건빵을 뜻했다는 것이다. 맛보다는 장기보존을 가장 중요시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빵을 부드럽게 해주는 [[이스트]] 등 기타 재료 없이 [[밀가루]]와 [[소금]], [[물]]만 이용했다. 유럽/중동의 주식인 빵만 해도 저장 방법에 따라선 보존기간이 길어 보존식으로 쓰이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이 유럽/중동식 건빵이 빵을 밀어내고 항해용/군용 보존식으로 널리 쓰이게 된 것은 극단적으로 쉬운 제조방법 때문이었다. [[빵]]은 [[효모]]를 넣고 며칠간 [[발효]]를 시키는 등 복잡한 공정이 필요하지만 건빵은 [[밀가루]]를 적당히 반죽해서 [[포크]] 등으로 구멍을 낸 후 두 번 굽기만 하면 되니까, 생산단가와 생산량에서 압도적 차이가 있었다. 더구나 [[부패]]를 막기 위해 수분을 최대한 줄임과 동시에 보존성을 높이기 위해 서너번 이상 구워내는 것이 기본인데, 보관설비마저 좋지 않아 그 상태로 방치되다 보니 [[벽돌]]처럼 단단해져서 '''[[도끼]]''' 같은 연장을 쓰지 않으면 절대 쪼갤 수 없었다고 한다. 그 덕분에 '''판금 비스킷'''(Iron Plate Biscuits)이라거나 '''이빨 파괴자'''(Teeth Duller), '''철판 크래커'''(Sheet Iron Cracker),[* [[남북전쟁]] 당시의 미군 병사들이 붙인 별명.] '''[[시멘트]] 판'''(Cement Plate)[* 독일군 병사들이 붙인 별명.] 같이 음식에 붙어서는 절대 안 될 수식어와 함께 기괴하기 짝이 없는 별명들이 붙었다. 바싹 마른 건빵은 정말 경악스러울 정도로 튼튼하다. 아래의 움짤을 한번 보자. [[파일:17c7fb5953c2209d1.gif]] 건빵을 벽돌에 내려쳤는데, '''건빵은 멀쩡하고 벽돌이 부서진다.'''[* 후술하겠지만 실제로 식사시간에 빵을 던지지 말라는 규율이 있었다. 진짜로 빵 맞고 사람이 죽을수도 있었다는 뜻.] 당연히 그냥 먹으려다가는 턱과 이가 나갈 판이라,[* 겨우 건빵이나 보급되는 최전방에 신선한 [[야채]]가 들어오기도 힘들었기에 군인들은 [[괴혈병]]까지는 아니라도 [[비타민 C]] 부족으로 잇몸과 이빨 상태가 부실했다. 이런 상황에서 돌도 깨는 건빵을 맨이빨로 씹어먹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보통은 음용 목적으로 저질 군납 [[커피]]를 우려낸 청수에 푹 담가서 불려 먹거나, [[염장고기|염장 돼지고기]]와 함께 물에 넣고 끓여서 [[죽]]처럼 만들어 간이로 랍스카우스(lobscouse)를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물론 엄청 맛있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냥 먹는 것보다야 훨씬 먹을 만했고, 소금 퍼먹는 맛이 나는 염장고기와 밀가루맛만 나는 건빵이 합쳐져서 간도 그럭저럭 맞았다고 한다. 혹은 어떻게든 빻은 가루를 물에 개서 유지와 소금 등을 첨가한 다음, [[팬케이크]]처럼 구워서 먹었다고도 한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엔 그나마 불을 피울 수 있는 환경에서 건빵을 마대 자루 등에 담고 물을 뿌려 땅에 묻고 위에다 불을 피워 불린 후 다시 파내서 먹는 조리법도 있었다.[* 이렇게 하면 2번 굽기 전의 빵의 식감을 어느정도 살릴수 있다. 대신 흙냄새라는 디버프가 들어가지만.] 하여튼 사람이 평범한 방법으로 먹을 수 있는 물건은 아니었다. 그래서 병사들은 이 딱딱한 물건을 짱돌로 찍어 부수어 가면서 어떻게든 먹으려고 애써야 했다. 어느 정도냐면 깨물었더니 튕겨져나가서 반합에 부딪쳤는데 그야말로 '''쇠와 쇠끼리 부딪칠 때 나는 소리'''가 났다고 하고, 어떻게든 먹으려고 돌에 내리쳤는데 '''[[계란으로 바위치기|돌이 부서졌다]]'''는 괴악한 이야기도 나돌 지경. 실제로 이런 건빵으로 인해 장난치다 사고가 일어났는지 영국군의 경우 식사시간 중 전우에게 장난이라도 건빵을 던지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진 적이 있다. [[남북전쟁]] 때도 남북 양군의 군용식량이었는데,[* 약 10개씩 지급되었다고.] 아무리 전쟁 중이라지만 이딴 게 식량이랍시고 내려오니 이 맛대가리라곤 전혀 없는 것을 허구한 날 먹던 장병들은 갈수록 슬슬 피하기 시작했다. 허구헌 날 맛없는 것을 먹었다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미국인들 기준. 당시 북군 짬밥은 나름 고급이었다. 전쟁 중에 전쟁터에서 조리하다 보니 아무리 재료가 좋다 한들 맛이 팍팍 죽어나가는 건 어쩔 수 없다만... 그래도 '''아침은 건빵, [[커피]], [[베이컨]]이었고, 점심은 커피, 베이컨, 건빵이었으며 저녁은 베이컨, 건빵, 커피라는''' [[조삼모사|규칙적 병영식이 제공]]되었다.[* 남북전쟁 당시 한 [[군의관]]의 일기에서 나왔던 기록이다. 냉소적 유머로 먹을 건 괜찮게 나온다면서 저렇게 쓴 것. 물론 아래의 남군 상황에 비하면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하지만 그거라도 먹었던 북군[* 사실 아무리 그래도 흰 밀가루로 만든 건빵과, '베이컨을 싸 오다'라는 숙어가 있을 만큼 그 당시 부의 상징이던 베이컨을 짬밥으로 먹은 건 보통내기는 아니다. [[유럽]]에서 건너온 이민자들 중에선 순전히 저 보급에 혹해서 북군에 입대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동시대 유럽 서민들의 생활상을 그린 [[반 고흐]]의 그림에 묘사된 유럽 서민들의 식단은 '''커피 + 찐 [[감자]]'''가 전부. [[호밀]]이나 [[귀리]], [[옥수수]] 로 만든 [[죽]]에 고기라고는 짜고 질긴 염장육이나 먹던 유럽 이민자들의 눈에는 미군 식단이 진수성찬일 수밖에 없었다.]과는 반대로 남군은 상당한 보급난에 시달렸다. 빈약한 철도 운송망에, 그마저도 북군에게 자꾸 파괴당하고 복구하기를 반복하다 보니[* 운송이 안 되어서 문제였을 뿐, 후방의 도시 지역은 북군의 포위-봉쇄로 인한 '''식량난'''을 <[[쇠고기]]나 [[양고기]], 밀가루의 가격이 폭등하여 부자가 아니면 입에 대지도 못한다.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옥수수가루나 [[야채]], [[닭고기]] 뿐이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풍족했고, 노예들조차도 닭고기, 돼지 내장, [[수박]] 정도는 실컷 먹을 만한 생산력이 있었다. 북군 역시 딱히 타국에서 식량이나 물자를 지원 받은 것도 아니었다.] 건빵이고 뭐고 그나마 남군에게 배급된 식량이라고는 겨우 [[땅콩]]이나 옥수수 가루밖에 없었다. 그걸 어떻게든 먹으려고 물을 넣고 반죽해서 총신에 감아 모닥불에 구워 먹었다느니, 그나마 소금도 없어서 간도 못 한 맨빵을 그냥 먹었다느니 할 정도였다. 이 때문에 전후 미국에서는 옥수수 가루로 만든 빵을 '조니 케이크'라고 부르기도 했다. 왜 '조니' 가 들어가냐면 북군에서는 남군을 '조니렙스'라고 불렀기 때문. 즉 남군의 빵 = 조니가 먹는 케이크라는 뜻.[* 반대로 남군은 북군을 [[양키]]라고 불렀다.] 이에 남군 병사들과 북군 병사들이 몰래 만나 남군의 [[버지니아]]산 담배[* 남부연합군 구성 주들 중 담배 생산량이 많은 버지니아 주도 포함되어 있었다]를 북군의 식량과 바꿔 먹은 일화도 있다. 150년 묵은 남북전쟁 시절 건빵 영상 섬네일만 봐도 알 수 있는데, 근대 구미권 군대의 건빵은 무지 컸다. 이 건빵은 엄연한 '식량'이었기 때문이다. 당장 프랑스의 '식사용 빵'인 [[바게트]]만 봐도 원래 식사용 빵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그 차돌만한 놈을 붙잡고서 도끼로 찍어가면서 죽자사자 먹었다는 이야기. 가끔 이런 물건이 전쟁 영화에도 나온다. [[핀란드]]군을 소재로 한 핀란드 영화에서 보면 마치 '''[[ᄎᆞᆷ크래커]]를 어른 얼굴 크기로 구운 것 같은 정사각형의 크래커'''를 사람 키만한 포장에 넣어와서 증식용으로 배급하는 장면도 있다. 이러한 차이의 원인은 한국과 일본, 북중국 등 동아시아권은 이미 밥 문화가 오랫동안 뿌리박혀 있어서 빵이 도입될 땐 유럽/중동/남아시아/중앙아시아처럼 '식사'의 개념이 아닌 '[[간식]]', 즉 [[과자]]의 개념으로 도입된 탓이다. 때문에 맛이 자극적으로 바뀌었고, 크기도 간식다운 크기로 줄어들었기에 자연스레 건빵도 작아진 것. 이러한 '간식'용 빵은 빵의 원조인 유럽/중동/남아시아/중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빵'이라고 보지 않고 '과자'라고 본다. 종종 한국에서 '과자점'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빵을 파는 집들은 이런 것을 어느 정도 반영한 편[* 한국에서 빵집을 흔히 [[제과점]]이라 부르는 것 역시 이런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제'과'점([[製]]'[[菓]]'[[店]])의 '菓'는 과자, 과실의 '과'이기 때문. 즉 제과점=과자점이다. 반대로 제빵점(製빵店)이나 제병점(製[[餠]]店)이라는 표현을 쓰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이마저도 원조 유럽/중동/남아시아/중앙아시아식에 비하자면 변형된 영업 방식이고, 진짜 유럽/중동/남아시아/중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빵만 파는 빵집과 과자만 파는 과자점이 따로 있다. 예를 들어 영어/프랑스어에서 빵집인 bakery/boulangerie와 과자점인 patisserie는 명확히 구별되는 개념이고, 스페인어에서도 panaderia와 pasteleria를 구별하는 것. 이 때문에 빵 문화권 출신인 사람들의 경우 한국의 빵집 문화에 대해 (맛에 대한 평가는 둘째치고) "한국의 빵집들은 대부분 과자점에서 약간의 식사용 빵을 함께 파는 형태이지, 본격적인 빵집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평가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또한 제조법 측면에서도 [[프랑스]]의 예를 보면 아예 식사용 빵인 바게트 조리법을 법으로 정해놓고, 이 외의 방식으로 가공하거나 추가 재료를 넣으면 바게트라는 명칭을 쓰지 못하도록 법으로 못 박아놓았다. 즉 한국 빵집에서 파는 갈릭 바게트나 호밀 바게트 같은 건 프랑스의 식품법 기준으로 치면 결코 바게트란 이름을 넣을 수 없는 물건들이다. 이 부분 역시 역사적 맥락이 있는 현상인데, 간단히 말해 서유럽의 경제를 [[길드]]가 주도하던 시대에 제빵사 조합과 제과사 조합은 별개의 조직이었던 것. 따라서 제빵점과 제과점 역시 별개의 점포로 운영될 수 밖에 없었고, 각각의 길드가 사업 영역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기였기에 제빵사가 갈릭 바게트, 꿀 바게트 등 양념을 더해 맛을 낸 빵을 만들면 "그건 과자의 영역인데, 왜 남의 사업영역에 침범하냐?"는 항의를 받게 되었던 것. 이 때 정해진 각 길드의 사업 영역에 대한 법에 이후 '상품의 품질 관리'라는 성격이 덧붙여져 오늘날의 식품법에 이른 것이다. 여하튼 이런 배경 탓에 식사용 빵은 맛이 밍밍한 대신 크기가 무지하게 크고 자연스레 식사용 빵인 건빵도 거대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야외에서 잘때면 이 거대한 건빵을 배게삼아 자다가 일어나서 아침식사용으로 조리해먹었다는 기록도 있다.[* 빵을 생활용품 대용으로 쓰다가 먹었다는건 의외로 역사가 오래된 개념이다. 가령 [[파이]]는 원래는 내용물만 긁어먹고 빵 부분은 접시 대용에 지나지 않아서 키우는 개에게 개밥으로 주거나 빈민에게 나눠주는게 기원인데, 생활상이 개선되면서 집집마다 식기가 넉넉히 확보되자 반죽에 버터를 넣는 식으로 부드럽게 만들어서 빵부분도 먹을 수 있게 바꾼 것이다. [[아이네이스]] 신화에서도 아이네이스와 일행들이 신대륙을 찾아 항해하던 도중 [[하피]]들의 섬에 들러 식량확보를 위해 사냥을 하자 분노한 하피들이 '너희들이 신대륙에 도착할때즈음엔 배가 고파서 식탁도 뜯어먹을 것'이라는 저주를 내렸는데, 후일 아이네이스와 일행들은 항해 도중 어느 이름모를 대륙에 내린 뒤 파이 빵을 그릇삼아 요리를 만들어서 식사를 한 뒤 그러고도 배고파서 파이 빵 부분까지 뜯어먹었는데, 이 때 일행중 한명이 그때 그 하피들이 말한대로 식탁까지 뜯어먹은 격이라며 너스레를 떨자 아이네이스는 그제서야 자신들이 신대륙에 왔음을 깨닫는 장면이 있다. 즉 파이 빵도 식사용이라기보다는 여차하면 섭취도 가능한 생활용품이였던 것.]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