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건군기 (문단 편집) == 과정 == [[1945년]] [[8월 15일]] [[일본 제국]]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무조건 항복함에 따라 조선에 주둔하던 [[일본군]]은 무장해제된 이후 모두 철수했다. 3개월 정도 지난 [[1945년]] 11월 11일에는 독립운동가였던 손원일을 필두로 한국인 상선사관들이 모여 [[대한민국 해군]]의 전신인 해방병단을 창설했다. 이 시기엔 국군이 될 준비를 하던 무장단체가 많았는데, 미 군정은 해방병단을 제외하고 전부 해산시켰다. [[1946년]] 1월 15일에 [[남조선국방경비대]]가 설치되며 이들은 [[대한민국 육군]]의 원형이 된다. 국방부 역할을 하던 통위부 하에 귀속된다. 2월 7일엔 남조선국방경비대 총사령부가 서울 남사동에 들어선다. 5월 1일에는 남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가 생긴다. 같은 해 6월 15일에 [[조선경비대]]로 개칭한다. 같은 날 해방병단은 [[조선해안경비대]]로 개칭한다.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대한민국 국방부|국방부]]가 설치되고 다음 달인 9월 5일에 조선경비대는 [[대한민국 육군]]으로, 조선해안경비대는 [[대한민국 해군]]으로 개칭된다. [[1948년]] 11월 30일에는 국군조직법이 공포되어 [[편제]] 등이 기틀을 잡고 [[1949년]] 4월 15일엔 [[대한민국 해병대]]가 창설되고 같은 년도 10월 1일엔 [[대한민국 공군]]이 창설된다.[* [[국군의 날]]과는 관련 없다. 국군의 날은 한국군이 38선을 돌파해 북진했던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현대전]]의 선두주자였던 [[미군]]에서도 1947년에서야 [[군종]](軍種)으로서 공군이 나타났던 터라 당시 군사적 기반이 미약하던 [[한국군]]에서 [[공군]]을 굳이 분리할 필요가 있냔 말이 많았지만 공군의 창군인사들이 강하게 밀어붙인 터라 성사됐다. [[1949년]] 12월 6일에는 징병검사가 최초로 실시됐다. [[파일:external/kookbang.dema.mil.kr/13718.jpg]] 1949년 7월 [[교련]] 교사로 배속될 [[여군]] [[장교]] 선발도 이뤄졌다. 실전 경험이나 편제, [[훈련]], 군사 교리 등의 축적이 상당히 빈약한 군대였지만 이듬해인 [[1950년]]에 대규모 열전인 [[한국전쟁]]이 [[북한]]의 침공으로 발발하는 바람에 금세 군은 기틀을 다지고 변화한다. [[http://koreanwar60.tistory.com/730|국방부 블로그]]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