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거창군 (문단 편집) == 역사 == [[신라]] 때는 거열군(居烈郡)이라 불렀고, 거타, 거열 등의 이름이 음운상 유사성이 있어 [[자타국]]이라는 나라가 여기 있었다고 추정되기도 한다. 현재 사용하는 이름인 거창군은 [[통일신라]] [[경덕왕]]이 전국 지명 한화정책을 시행할 때 지은 이름이다. 이후 조선시대 때까지 명칭이 조금씩 여러 번 바뀌었다가 거창도호부가 되었다. 조선 초에는 거창현이었다가 연산군 조에 거창군으로 승격하였다. 이유는 연산군의 아내인 [[폐비 신씨|신씨]]의 고향이 거창이었기 때문. 이는 연산군이 특이해서 그런게 아니고, 본래 조선시대엔 왕비의 본관인 지역을 승격하는게 관례였다. 이후 중종 대에 다시 거창현으로 강등했다. 그리고 영조 대에 중종비 단경왕후을 복권하고 [[단경왕후]][* 단경왕후 신씨는 연산군 부인 신씨의 친조카이기도 하므로 본관이 같다.(단경왕후의 아버지인 [[신수근]]이 연산군부인의 오빠)]의 고향이라는 명목으로 거창부로 승격했다. 1895년 5월 26일 진주부 거창군이었다. 그러다가 이듬해인 1896년 경상남도 거창군이 되었다. 1914년 3월 1일 안의군의 마리면, 위천면, 북상면과 삼가군(현 [[합천군]] 남부) 신원면을 편입하였다. 1937년 거창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57년 월천면이 거창읍에 흡수되었다. [[6.25 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인 [[거창 양민 학살사건]]이 일어났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거창군에는 거창사건추모공원이 존재한다. [[http://www.geochang.go.kr/case/Index.do|추모공원 홈페이지]]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