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거문도 (문단 편집) == 상세 == 섬이 3개여서 예전에는 삼도(三島), 삼산도(三山島)라 불리기도 했다. 지금의 거문도라는 이름은 청나라의 [[정여창(군인)|정여창]]이 이 섬을 찾았다가 섬 사람들과 대화가 통하지 않다보니 필담을 주고 받았는데 작은 섬에 학문이 뛰어난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돼 거문(巨文)이라는 이름을 붙이자고 조선 조정에 건의해 이런 이름을 갖게 됐다고 한다. 숲이 빽빽해 멀리서 보면 섬이 검게 보여 '검은'을 거문으로 차자(借字)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여수시에서도 그렇고 전자를 많이 알리고 있다. 구한말 1885년에 영국군의 [[거문도 점령 사건]]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영국군이 떠난 이후에는 조선에서도 거문도가 갖는 지리적 중요성을 깨닫고 1888년에 거문진(巨文鎭)을 설치했다가 [[갑오개혁]] 후 폐쇄했다. 본래 거문도에는 동도와 서도에만 사람이 살았고 고도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는데 영국군이 사람이 없는 고도에 주둔하며 진지를 구축하자 이들을 상대하기 위해 소수의 일본인들이 유입됐다고 한다. 1887년에 영국군이 떠나고 1895년에 거문진까지 폐쇄되자 어업을 하기 위해 일본인들이 본격적으로 유입되었는데 이들로 인해 일감이 크게 늘어나자 동도와 서도의 조선인들까지 고도로 넘어와 큰 마을을 이루었고 이 마을이 현재의 거문리이다. 1930년대에 거문도는 하루 수백척이 출항하는 주요 항구가 됐고 이들을 위해 주점과 유곽 등 각종 위락시설들도 들어섰다. 이때 당시 일본인들의 생활 흔적이 지금도 거문도 곳곳에 남아있다. 거문도 특산물로 해풍쑥과 삼치, 그리고 은갈치가 있으며, 연례행사로 특산물로 축제를 연다. 불꽃놀이도 하지만 섬 특성상 안개가 자주 껴서 잘 보이지는 않는다. 인구가 적은 섬이지만 서도리에 거문초등학교[* 원래는 영국군 병영자리인 고도의 거문초등학교 외에도 동도분교장, 덕촌분교장, 서도분교장 이렇게 4곳이 있었지만, 모두 통폐합하여 서도분교장 자리에 크게 통합교사를 지어 2021년 2월에 개교하였다. 학생수가 적기 때문에 이왕 짓는김에 기존의 중학교와 합쳐 크게 짓거나, 아니면 그나마 인구와 상점이 많은 고도의 거문초등학교 본교를 확장해 지으면 좋았겠지만 해당 자리가 영국군 병영 자리라는 [[어른의 사정]]이 있어서 이렇게 되었다고 한다.--[[핌피]]--], 덕촌리에 거문중학교가 있으며 고등학교는 여수 시내나 고흥 군내로 나가야 한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한반도]]의 부속도서로서 [[제주도]], [[울릉도]]와 함께 언급됐던 예전에는 꽤 중요한 섬이었다.[* 이 조약에서 [[독도]]가 빠지는 바람에 두고두고 문제가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