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거란 (문단 편집) === 요-서요 멸망 이후 === [[몽골]]의 발흥과 함께 몽골족에 동화되어 사라졌다. 멸망해 사라졌다기보다는 페르시아와 파르티아와의 관계와 비슷하게 둘 다 [[동호]]에서 갈라져나온 종족들인지라 문화적인 차이도 적고, [[금나라]]와 싸울 때부터 뜻을 함께한 몽골에 이들이 딱히 거부감을 느낄 이유가 없었기에 자연스레 동화되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또한 요나라 시절 몽골에 대한 정책도, 몽골에게 가혹한 강경책으로 일관한 금나라와는 달리 요나라는 대부분 간접적인 통치를 행해서 몽골을 직접 탄압한 일도 상대적으로 적었고, 이 때문에 몽골의 거란-요에 대한 적대심 역시 적었다. 특히 금나라가 [[요나라]]의 원수이기 때문에 금나라를 멸망시킨 몽골에 많은 거란인들이 협력하였다. 대표적인 인물이 '''[[야율초재]]'''. 그 외에도 [[칭기즈 칸]]의 참모로 활약한 야율아해(耶律阿海)와 장군으로 활약한 야율독화(耶律禿花) 형제가 있다.[* 이 두 형제는 칭기즈칸이 초원 통일 전쟁부터 칭기즈칸을 보좌하며 서방정벌까지 나섰다. 그 유명한 발주나의 맹약에도 참가한 인물들이다.] 야율유가(耶律留哥)라는 거란인도 [[동요(국가)|동요]](東遼)라는 국가를 세웠으나 나중에 몽골에 들어가서 몽골의 신하로 활약하기도 했다. 요나라가 멸망한 후 일부 거란인들은 만주에 [[대요수국]]을 세우고 할거했다가 칭기즈 칸에게 복속되었다. 몽골과 중국은 이 종족의 역사적 귀속 여부를 놓고 다투는 중이다. 물론, 거란/요나라에 대해 우호적인 여론은 하나도 없다. [[한족]]들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인들에게도 거란은 그저 [[오랑캐]]였다 보니 역사 문제와 달리 이 문제에는 아무도 관심을 안 가진다. 중국 [[내몽골 자치구]]에 사는 [[소수민족]]인 [[다우르족]](達斡爾族, Daur)이 거란족의 후예로 유력하게 추정된다. [[2005년]] 기준으로 중국의 소수 민족[* 공식적으로 56개로 집계됨.] 중 34번째로 많다. 약 12만명. [[샤머니즘]]과 [[티베트 불교]]를 믿는다. 분포 범위도 거란족의 강역과 대강 일치하고 스스로 거란을 계승하는 의식이 있으므로, 이들이 거란족의 후예라고 봐도 무방하다. [[만주국]] [[황제]]이자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푸이 [[선통제]]의 부인인 고불로 완룽(郭布羅 婉容)이 바로 이 다우르족 출신이다. [[베이징]] 등 화북 한족들 역시 거란족과 몽골족의 피가 진하게 섞여 있다. 또한 [[윈난성]] 바오산(保山) 시에는 거란족 황실 후예들이 산다고 한다. [[서요]]의 거란 황족 출신 중 야율아소루(耶律阿蘇魯)라는 사람이 몽골 제국의 부하가 되어 윈난성까지 파병되었고, 아소루를 포함한 거란인들이 여기에 정착했다고 한다. 그러나 [[대리국]] 사람들이 거란인을 학살하자 야율씨 일족은 성씨를 장씨, 뤼씨, 화씨, 양씨 등으로 바꾸어서 살아남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그곳 마을에는 아소루의 무덤을 포함하여, 거란 왕족들을 기리는 사당과 족보도 있다고 한다. 사당에는 야율(耶律)이라고 쓰인 간판들이 있다고 한다. 또한 1473년까지 서역의 [[하미]]를 지배하였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