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거란 (문단 편집) == 생활사 == 훗날 이들이 반유목에 가까워지면서 농경을 아예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반농반목]] 및 [[수렵채집인|수렵채집]], [[어로]] 정주민이었던 [[여진족|여진]]-[[만주족]]과는 달리 이들은 더 유목민의 성격이 짙었다.[* 여진족 역시 과거에는 유목과 수렵을 병행하다가 점차 정착하여 농사를 짓는 정주민으로 변화했는데 특히 원명교체기에 등장하기 시작한 건주야진 같은 경우에는 이웃한 명나라나 조선의 농민들과 거의 차이가 없을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이 주로 거주하던 요동반도 일대는 요하강 삼각주의 존재로 인해 농사가 상당히 잘 되는 지역이기 때문.] [[겨울]]에는 얼은 [[호수]]에서 [[낚시#s-3.1.3|얼음 낚시]]를 하거나 [[사냥]]을 하여 잡은 물고기와 짐승들을 여러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두어연'''(頭魚宴)이라는 축제를 열었다고 한다. 한국인에게는 [[926년]] [[발해]]를 멸망시키고, [[고려]]와 오랜 대전쟁을 치렀기에 공격적인 야만족이나 침략자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독자적인 [[거란 문자]]를 만들고, 상당한 [[불교]] 문명을 이룩했으며 거란의 장신구가 북송에서 유행하는 등 고도의 문명을 향유하는 이면도 지니고 있었다. 요나라 시대의 불교 유물 및 유적은 중국의 불교 문화재 가운데에서도 평가가 매우 높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a2.att.hudong.com/01200000007987121188453713963.jpg|width=100%]]}}}|| 정수리를 몽땅 밀어버리고 주변 머리만 남겨놓는 파격적인 헤어스타일을 가진 민족이었다. 이 역시 만주 지역의 유목민들이 향유하던 [[변발]] 전통의 일종이다. 그나마 뒷머리만 조금 남겨서 앞모습만 본다면 스킨헤드로 보이는 만주족의 변발과는 달리 거란족은 정수리-뒷머리를 민 다음 옆머리와 앞머리만 남겨놓은지라 더욱 기이하다. 장례 풍습의 경우 [[귀족]]과 황족 등 높은 신분층들 한정으로 시신을 건조하게 하여 [[미라]]를 만들고, 시신 얼굴에 금으로 만들었거나 금으로 도금한 은제 가면들을 덮었는데, 일종의 데드마스크였다. 성에 개방적이었는지 [[춘화]]도 남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