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개천절 (문단 편집) === 전근대의 역사 === 전통적으로 음력 10월은 특별한 달로 여겨졌다. [[태음력|음력]] 10월은 동짓달(음력 11월) 바로 전 달로, 12간지로 따지면 마지막 해(亥)에 해당한다.[* 즉 동짓달이 자월(子月)이다.] 한 해의 마지막이면서, 이 즈음이면 농사도 끝나 한 해를 마무리하는 느낌도 강하다. 이 때는 민간에서도 상달이라 하여 집집마다 고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는데, 현대에도 이 풍속이 아직 살아있다. 대종교 이전에 전국적으로 10월 3일을 [[단군]]이나 개천(또는 민족의 개창)과 연결지어 생각한 사례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다만 [[조선]] 후기 일부 지방에 '음력 10월 3일에 [[단군]]에게 제사 지내는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012380&cid=50221&categoryId=50233|향산제]]라는 풍속이 있다'는 기록이 있고, 19세기 문헌인 무당내력이 "상원갑자 10월 3일에 신인이 박달수 아래로 내려오니 단군이라 한다. 신교(神敎)를 세우고 백성들을 가르쳤다."라는 구절이 있으며, 김염백(金廉伯)이 [[평안도]]에서 1890년대에 일으킨 단군신앙 집단에서도 음력 10월 3일을 단군의 탄생일로 여겼다. 이러한 점을 볼 때 조선 후기에 [[평안도]]나 [[함경도]] 등 [[한반도]] 북부에서 [[단군]]과 음력 10월 3일을 연결짓는 [[민간신앙]]이나 의식이 어느 정도 있었던 듯하다.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 태조 1년([[1392년]])의 8월 11일 2번째 기사[[http://sillok.history.go.kr/id/kaa_10108011_002|#]]에는 "조선의 단군(檀君)은 동방(東方)에서 처음으로 천명(天命)을 받은 임금", "[[평양부]](平壤府)로 하여금 때에 따라 제사를 드리게 할 것입니다."라는 언급이 있다. 조선 왕조의 제사예법에서는 상순, 즉 1일부터 10일까지는 존귀한 제사를 드리는 날, 중순은 사대부, 하순은 그 이하가 제사를 지내는 날로 삼았다. 왕실 제사 예법에도 상순에 드리도록 정한 제사가 많다. 또한, [[고구려]]의 [[동맹]], [[동예]]의 [[무천]] 등 옛 제천 행사도 10월에 열렸다. 아마도 [[나철]]은 [[단군]]과 10월 3일을 연결짓던 조선 북방 지역의 민간신앙이나 기존의 고사 등 전통을 참조했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