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강정구 (문단 편집) == 생애 == 1945년 3월 18일 [[경상남도]] [[창녕군]] [[고암면]] 억만리 고연정마을의 농가에서 아버지 강정출(姜貞出)[* 창씨명은 토모야마 테이슈츠(友山貞出).]의 아들로 [[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200512100010|태어났다]]. [[부산고등학교]](18회)[* 공교롭게도 [[조갑제]]와 동기동창이다.[[https://www.donga.com/news/Politics/article/all/20051024/8240650/1|#]]]와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1981년 [[미국]]으로 건너가 1983년 [[템플 대학교|템플 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1985년 [[위스콘신 대학교|위스콘신 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987년에는 동 대학원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귀국 후 1988년 동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부임해 한국사회론, 정치사회학 등을 강의했다. 그 뒤 2005년 "내전에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전쟁은 한달 이내에 끝나고 통일이 달성됐을 것"이라는 내용의 '[[6.25 전쟁]]은 통일전쟁이었다'는 논쟁으로 [[국가보안법]] 위반(찬양, 고무) 혐의를 받아 불구속 기소되었고[* 본래는 구속기소될 상황이었으나 [[천정배]] 당시 법무부장관이 '''헌정사상 최초'''로 검찰총장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발동, 불구속수사를 명령해 구속은 피했다.], 2006년 2월 동국대학교 당국에 의해 교수직위가 해제되었다. 당시 파장을 일으킨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공산화됐을 것이라고 하지만, 46년 미 군정 여론조사 결과 공산·사회주의 지지세력이 77%였고 자본주의 지지는 겨우 14%였다. 공산주의든 무정부주의든 당시 조선사람 대부분이 원하는 것이면 응당 그 체제를 택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https://konas.net/article/article.asp?idx=7354&rep_idx=12844]]] 교수 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최소 2014년 이후로 꾸준히 통일뉴스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는데, 중국의 협조 없이는 통일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바탕에서 비롯된 것인지 대다수는 중국의 발전상을 소개하는 것을 넘어 [[중뽕|과도하게 찬양하는 수준에 이른다]]. 2020년 말에도 [[항미원조]] 정신을 바탕으로 분발과 진취를 이루어야 한다는, 중국 언론사 봉황망의 부사장을 지낸 류칭동이 환구시보에 기재한 글을 그대로 번역하여 올리는 등 과거의 행보와 변함없는 모습을 이어가고 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25&aid=0003072427|#]] 2014년 [[통진당]] 해산 당시에는 이를 비판하는 등 진보 진영의 지식인을 자처하고 있지만, 워낙 급진적 주장을 펼치는 인물이라서 진보 진영 제도권에서도 거리를 두는 편이라서 언급 자체가 안되는 경향이 있다. 결국 본인도 인정했던 반미주의자 행보가 친중까지 넘어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2020년대 들어서도 [[한겨레신문]] 등의 매체에 기고문으로 미국의 우크라이나 전쟁 개입을 비난하고, 중국의 세계 패권을 예언하는 등 반미친중 행보를 적극적으로 이어가는 중이다. [[파일:19156_11042_5504.jpg]]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