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강약약강 (문단 편집) == 부정적 견해 == >언제까지 독재자들의 분노는 정의로, 민중의 정의는 야만이나 반란으로 불려야 한다는 말입니까?" >'''나는 민중을 학살하면서 전제군주를 용서하는 인류애를 알지 못합니다.''' >----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 [[테르미도르의 반동|그 말대로 자신도 용서받지 못했다.]] >'''天は人の上に人を造らず、人の下に人を造らず。''' >'''하늘은 사람 위에 사람 만들지 않았고, 사람 밑에 사람 만들지 않았다.'''[* 줄여서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로 쓰기도 한다. 드라마 [[추노(드라마)|추노]] OST인 글루미 써티스의 [[바꿔]]에 나온다.] >---- >[[후쿠자와 유키치]],[*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람은 우민멸시사상을 주창했다.] 학문의 권장(学問のすゝめ) 건전한 국가에선 '''절대로''' 이를 정당화할 수 없으니,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 '''첫째''', 인권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개념이라 받아줘서 국제 명분을 내세울 수 없다. * '''둘째''', 문명에 적응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교류가 단절되고 격차가 벌어져 세상이 각박해지고어 종 치안에 상당량의 비용을 들여야 하기 하기 때문이다. * '''셋째''', 강약약강을 옹호하는 분위기는 온갖 부정부패를 합법인양 인정하기에 행정이 잘 돌아갈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 '''넷째''', 선진국부터는 문명 발전 양상이 인구수와 넘치는 자원을 교류하여 성장하는 방식보단, 지식을 쌓고 기술을 개발하여 국가의 경쟁력을 증대시키는 방식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에서 강약약강은 명백히 잘못된 게 맞다. 인간의 존엄성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 중 하나인 자유, 민주, 평등, 박애 정신에 철저하게 반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계 각국의 정부가 [[상호확증파괴]]를 막기 위해 내세운 점이 바로 [[인권]]이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당당하게 활동하려면 필히 존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명분이 없기 때문에 [[미국|주류 국가]]와 우방국임을 증명하는 용도로 더 많은 비용을 할애해야 한다. 그럼 국제사회와의 소통을 단절하면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전혀 좋은 생각이 아니다. 국가가 무역을 포기하겠다는 소리는 평생 후진국으로 살겠다는 뜻이니 말이다. 그전에 다 같이 굶어죽겠지만. 물론 [[외교]]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내부적으로는 강약약강이 적용되긴 한다. 하지만, 이조차도 군사적 제재보단 명분과 경제를 통한 제재가 더욱 주류다. 군사적 제재보단 경제적 제재가 뒤처리가 깔끔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관계에서도 강약약강은 명백히 잘못된 게 맞다. 대한민국 헌법 제2장 제11조에 의거하면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한데, 강약약강은 약자 및 소수자에 대한 차별 그 자체가 되니 헌법 정신에 정면도전하는 꼴이다. 현대 사회의 건전함은 약자 보호와 다양성 존중에서 나오는데 이를 없앤다면 사회가 각박해지는 건 시간문제다. 강약약강이 권력에 접촉되면 [[부패#s-2|부정부패]]가 반드시 발생할 수밖에 없고 이에 대한 폐해는 해당 문서로. 기존에는 사람과의 교역은 면전으로 제한되었고 자원이 많이 부족했기에 문명을 발전시킬 때 적절히 안정된 인구수와 넘치는 자원을 바탕으로 성장하는 방식 이외엔 존재하지 않았다. 허나 [[과학혁명]], [[산업 혁명]] 등을 통해 인구수와 자원이 차고 넘치게 되었고 인터넷 등의 통신 매체를 통해 전근대 사회에 비해 매우 빠른 속도로으로 교역할 수 있게 되었다. 즉, 더 이상 많은 자원만으로는 최선의 가치를 얻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는 많은 자원을 개발하여 다양한 상품으로 교역을 하는 것이 주류가 될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러한데 굳이 옛날 방식인 강약약강에 머물러야 할 합리적인 사유가 존재하는가? 인간은 짐승과 다르다. 그리고 강약약강이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이유는 이것이 힘의 논리이기 때문이다. 힘의 논리는 국가나 사회를 안정시킬 수 없다. 강한 자가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다는 논리는 사회적 혼란만 가중할 뿐이다. 서양에서는 서로마가 그러했고, 동양에서는 전국시대가 그러했다. 그래서 사회안정을 위해 서양은 기독교를, 동양을 유교라는 명분을 중심으로 사회를 안정화시켰다. 그리고 이러한 명분은 지금 우리 현대에도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기독교적 가치관은 우리의 헌법, 인권의 기초적 개념으로 살아있다. 이러한 명분은 강약약강이라는 힘의 논리에서 사람들의 목숨을 유지시켜주었다. 현대의 개념에 비해서는 한참이나 부족했지만 이러한 개념이 있었기에 귀족들의 무자비한 폭력에서 민중을 보호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러한 힘의 논리는 결국 강자 자신에게도 장기적으로 위협이 된다. 기본적으로 사람은 늙고 쇠하기 마련이라 수십 년이 흐르면 새로운 강자가 탄생하고 기존의 강자들은 약자의 입장이 될 수 밖에 없는데, 이 시점이 되면 자신이 내세운 논리가 자신의 숨통을 물어뜯는 역설적인 상황에 처하기 십상이다. 사족으로 옹호측에서는 비둘기파와 매파가 있어서 적절한 인구수와 잉여자원이 확보된다고 말하지만, 이 논리는 [[맬서스 트랩]]적 시각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맬서스 트랩의 가장 큰 한계는 바로 기술혁신을 배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사유를 할 수 있고, 그 사유를 기반으로 '''과학'''을 만들었다. 이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인류는 이 지구상에서 그 어떤 동물도 하지 못하는 공기 중에서 질소를 추출하는 능력이 있다. 옹호에서는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을 통해 사회가 발전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러한 [[내시균형]]적 시각은 사실 인류의 진화와 발전 과정을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인류의 발전 속도를 보면 되는데, 20세기 중반까지 인류의 발전 속도보다 지금 2020년의 발전 속도가 더 빠르다. 10년 전의 과학 기술이 1년만에 바뀌는 시대이다. 이러한 시대가 올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비둘기파와 매파에 의한 균형이 아니라 인구수의 증가로 인해 과학 기술 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인원이 늘어나, 연구에 투자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쉽게 알고 있는 지식들은 정말로 수많은 사람들의 시행착오를 통해 얻어진 것들이다. 예를 들어 질소고정법의 경우 프린츠 하버가 개발하기는 했지만 초창기의 기법은 매우 비효율적이었다. 이때 카를 보슈가 100여 개의 실험재료를 투입하여 실험하여 최대효율을 낼 수 있는 질소고정법을 만들었고, 이후 본격적으로 대중화가 시작되었다.] 1948년 이후 선진국에서는 비둘기파가 득세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과거보다 더 많은 잉여자원과 발전을 보여주고 있기에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이론]]과 현실은 다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