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강병현(1985) (문단 편집) === [[전주 KCC 이지스]] 시절 === [[파일:KCC-전자랜드 2대3 트레이드.jpg]] [[서장훈]]과 [[하승진]]의 출전 시간 문제로 불화가 빚어진 [[전주 KCC 이지스]]에서 서장훈을 트레이드 카드로 내놓았고, 마침 전자랜드의 감독은 서장훈의 은사인 [[최희암]]이었다. 그래서 서장훈이 전자랜드로 가면서 2:3 트레이드가 성립했는데, 이 카드의 중심이 된 것이 바로 강병현이었다. 강병현은 이 때, [[조우현]], [[정선규]]와 함께 KCC로 이적하게 되었다. KCC 입장에서는 현금을 주고, 어음을 받았다는 트레이드였는데, 이 트레이드의 어음이 바로 현금화가 되었다. [[파일:2008-09시즌의 강뱅.jpg|width=340]] [[파일:하킬-TP3-강뱅.jpg|width=410]] [[파일:강뱅의 포효.jpg]] [[파일:KCC 2010-2011시즌에 챔피언이 된 후, 강뱅의 샴페인 타임.jpg]] KCC에서 맹활약하면서 KCC의 고민 거리였던 가드 문제의 활로를 열어준 것. [[추승균]]이 고군분투하던 외곽의 활로도 강병현이 열어주면서 KCC는 갑자기 전력이 급상승, 하위권에 쳐져있던 KCC는 급기야 2008-09 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까지 차지하는데 성공한다. 강병현은 그 뒤로도 꾸준히 KCC의 2번 자리에서 활약하면서, [[전태풍]]과 함께 백코트진을 구성해 KCC의 3년 연속 챔프전 진출의 주역이 되었다. 특히 2010-11 시즌 챔프전에서는 5차전 결승골, 6차전 결승골을 잇따라 터트리며 팀 우승의 일익을 담당했다. KCC의 우승을 두번 일궈 낸 강병현은 2010-11 시즌이 끝난 뒤, 상무에 입대했다. [[파일:상무시절의 강병현과 동기생 윤호영.jpg]] 2013년 2월 상무에서 제대했다. 마침 팀이 밑바닥을 달리던 터라, 강병현의 복귀는 팀에 가뭄의 단비가 되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09&aid=0002480566|혼자서 23득점]] [[파일:강뱅_전주KCC이지스.jpg|width=400]] 2013-2014시즌에는 고감도의 3점슛을 쏟아내며, 팀의 선전에 공헌하였다. 경기당 3개 이상의 3점포를 쏟아내며 맹 활약을 하였지만...2014년 들어 허리부상의 여파인지 성공률이 엄청나게 떨어지면서 팀 부진을 막지 못하였다. SK와의 원정경기 에서는 [[김선형]]에게 인유어 페이스 덩크를 맞기도 했다, 급기야 설 연휴 마지막 날에 치룬 오리온스전 3쿼터에서는 같은 팀 외국인선수 타일러 윌커슨과 말다툼을 벌였으나, 다행히 윌커슨과의 앙금은 금방 풀었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ketball&ctg=news&mod=read&office_id=065&article_id=0000080567|100% 내 잘못이다]] 그러나 허재 감독은 그를 벤치에 앉혔고, 팀은 플레이오프 순위에 들어가지 못하면서 결국 아쉬운 시즌을 마감을 하고 말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