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갓바위(팔공산) (문단 편집) == 불상 == 갓바위 불상이 현대에 [[약사여래]]라고 널리 알려졌지만, 실제로 정확히 어떤 부처인지는 불확실하다. 그러나 학계의 논의야 어떻든, 또한 과거의 진실이 무엇이든, 현대 한국의 불자들은 갓바위가 [[약사여래]]라 믿으며 소원을 빌러 찾아온다. 갓바위가 [[석가모니]]로 대접받는 날은 4월 초파일 [[부처님오신날]]뿐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미륵]]으로 알려졌으며, 나이든 인근 노인들은 갓바위를 '미륵님', 혹은 '갓바위 미륵님'이라고 불렀다. 그뿐 아니라 1821년에 작성된 선본사 사적기에서도 [[선덕여왕]] 7년(638)에 의현대사(義玄大師)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하여 조성한 미륵보살이라고 설명하였다. 학자들은 미륵, 아니면 [[아미타불]]이라고 추정한다. 갓바위 불상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취하였는데, 본디 항마촉지인은 [[석가모니]] 불상이 취하는 수인이다. 그러나 삼국시대나 고려시대 불상에서는 [[아미타불]]이나 [[약사여래]]가 항마촉지인을 한 사례가 곳곳에 있으므로, 단지 항마촉지인만으로는 불상의 정체를 밝히기 어렵다. 아미타불이라는 주장에 따르면 갓바위는 원래 9세기 초 [[통일신라]] 시대에 아미타불로 조성됐으나, 후대 어느 시점(아마도 [[고려]]시대)에 사람들이 미륵불로 믿어 미륵이 쓴다는 천관을 뜻하는 갓을 올려놓았고, 다시 현대에 들어 약사여래불로 와전됐다고 한다. 실제로 팔공산 갓바위에는 약사여래의 지물인 약합이 없다. 예전에는 불상의 왼손에 약합이 있는 줄 알았는데, 자세히 조사해보니 불상의 왼손 엄지손가락이었다. 갓바위가 약사여래로 알려진 때는 광복 이후 1960년대부터이고, 그 근거는 약합이라고 착각했던 엄지손가락밖에 없었다. 갓바위가 약사여래라 함은 민간전승도, 불상 고증도 아닌 제3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갓바위를 관할하는 선본사는 증언이나 옛 기록들을 무시하고 홈페이지에 갓바위가 극구 약사여래일 것이라고 써 놓았다. 심지어 선본사에서 발견된 선본사 사적기에서도 갓바위가 미륵보살이라고 설명하는데도, 마치 옛날부터 약사여래로 통했다는 듯이 설명하였다. 또한 과거에 약합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제로는 불상의 엄지손가락임이 확실해졌는데도, 선본사 홈페이지에서는 "약합이 뚜렷하다."라고 하며 사실을 왜곡하고, 이것이 약사여래임을 지지한다고 설명한다. 선본사 홈페이지만 보면 마치 옛날부터 지역 주민들이 갓바위를 약사여래라고 생각한 줄 알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불과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미륵으로 통했다. 조선 후기부터 미륵신앙이 유행하면서 돌부처=미륵불로 인식하는 문화가 많이 퍼지자, 원래는 미륵불이 아닌데도 돌부처라는 것만으로 미륵불이라 불리는 사례들도 있고,[* 대표적인 예가 [[은진미륵]]이란 이름으로 유명한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이다. 민간과 자칭 민족종교들은 미륵이라 부르지만 사실은 [[관세음보살]]이다.([[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4637810|관련기사]]) 더욱이 선본사 사적기도 미륵신앙이 유행하는 조선 후기 기록.] 한국의 토속 돌부처 신앙과 미륵신앙을 자신들의 교리에 꿰어맞추면서 추태를 부리는 몰지각한 [[대순진리회|자칭 민족]][[증산도|종교 집단]]들과의 마찰 문제도 있어 확실히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마침 갓바위 불상이 처음 만들어진 9세기는 약사여래불이 많이 조성될 때이다.[[http://www.seonbonsa.org/home/bbs/board.php?bo_table=01_5&page=2|(참조링크)]], 전국의 불교 신자들에게 갓바위가 약사여래라고 유명해진 판에 이제 와서 아니라고 말하기 어렵기도 하겠고. 그러나 사찰에서 (과거에는 미륵불로 통했다는) 명백한 사실을 왜곡한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다못해 현재 갓바위 불상이 약사여래로 통하지만 과거에는 다르게 생각했고, 원래 어떤 불상이었는지는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식으로만 설명했더라도 훨씬 나았을 것이다. [[2009년]]에 창사 46주년을 맞아 [[대구문화방송]]에서 제작, 방송한 다큐멘터리 <팔공산 갓바위>에서는 '관암사 백암(柏巖) 스님이 1962년 3월부터 신도들에게 갓바위를 알리고 참배시키면서 약사여래라고 가르쳐 알렸다.'는 주장을 소개하였다. 백암 스님의 제자이자 관암사 주지인 혜공(慧空) 스님이 방송에서 설명한 바에 따르면, 백암 스님은 힘든 이 시대(1960년대)에는 약사여래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약사여래 신앙을 일으키고자, 갓바위를 약사여래라고 부르도록 신도들을 가르쳤고, 제자들을 갓바위로 보내 처음으로 갓바위 불상을 '약사여래'라고 칭하며 불공을 드리게 했다고 한다. 혜공 스님이 직접 언급하지는 않지만, 백암 스님도 갓바위가 원래는 지역민들에게 미륵으로 불린다는 사실을 알았던 듯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