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감녕 (문단 편집) == 나이 == 그 맹렬한 무용에 거칠고 사치스러운 해적의 이미지를 더해 호쾌한 건달 청년쯤의 이미지로 묘사되지만 익주에서 관리를 지내다 사임하고 20년 동안 수적질을 했다는 기록을 보면 이미 [[유표]]에게 임관하는 194년의 시점에서 40대 즈음의 나이였을 것이다. 단, 수적 두목 생활이 '20년'간 계속되었다는 표현에서 20년이라는 것은 정확히 20년이 아니라 대충 이십 년 가까운 시간을 의미하는 것일 가능성도 높으니까 몇 년 정도 더 적게 잡을 수는 있다. 또한 겨우 10대의 어린 나이에 군에서 천거되어 관리가 되었고 커리어를 엄청나게 빨리 시작했다는 가정도 할 수 있는데,[* 약관 20세에 천거되는 것도 대단한 속성 코스다.] 사실 10대 소년이 장리로 천거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며, 현승도 아니라 군승, 그것도 꿰찬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만 어쨌든 가능성이 0은 아닌 이상, "[[나의 아스카는 그러지 않아|나의 감녕은 이렇지 않아!]]"를 외치며 최대한 어리게 보려고 우긴다면 가능할 수도 있다. 참고로 공손찬, 장료, 만총, 장기 등도 10대부터 관직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저 20년이라는 표현을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 되는 게 [[삼국지집해]]에서는 선후관계를 유장에게 반기를 들었다 도망친 후에 수적생활을 한 것으로 해석하여 2가 덧붙여진 거라 해설한다. 즉, '''유장에게 반란→수적생활→유표에게 귀의''' 순으로 해설하고 있다. 이는 위에 언급된 영웅기의 기록에 따른 것이다. 이것에 따르면 20년 수적생활 자체가 모순인 셈이다. 유언이 죽고 유장이 집권한 시기가 194년이니 이 기록을 신뢰한다면 수적생활을 한 것은 최대한 길어봐야 10년(194~203)이 안 된다. 호쾌한 청년 이미지가 익숙하긴 하지만 감녕의 나이를 어떻게든 최대한 어리게 잡으려고 해도 [[손교]]와 싸움난 일화를 보았을 때 적어도 손교보다는 1세대 위, 손교의 아버지뻘의 나이였을 것이다.[* 둘의 싸움 뒤에 대략 212년 경에 보냈을 것으로 추정되는 손권이 손교를 질책하는 편지에서 곧 서른인데 철 좀 들어라는 식으로 훈계하는 것과 그 전에 감녕이 손교에게 불쾌감을 토로할 때, 항렬 차이를 운운하는 걸 보아 183년 이후 출생일 것으로 추측되는 손교보다는 한 세대 위의 나이로 보인다. 때문에 감녕의 출생년은 아무리 늦게 잡아도 160년대 중반이 한계치다. 사망 당시 최소 50세는 되었다는 소리다.] 하나 더하자면 훗날 동진에서 형주목에 진남대장군을 지낸 [[감탁]]이 그의 증손자인데 주로 어울렸던 인물인 주기나 고영은 주방과 고옹의 손자이다. 뭐 세대가 하나 빠르다고 해서 이런저런 변수가 있으니 그걸로 나이를 따지기는 무리일 수 있겠지만 감탁의 조부 감술이 감녕의 장자도 아니고 감탁도 형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 걸 보면 168년에 태어난 [[고옹]]이나 주방보다는 한 세대 위라고 봐도 크게 무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창작물에서는 나이가 별로 많지 않게 묘사되어 버린다. 절충안을 따지면 150년대 후반 ~ 160년대 초반에 출생했다고 보는게 좋을 듯. 연의에서는 222년 [[이릉대전]]에서 죽은 것으로 되어있지만 [[건강실록]]에 따르면 215년에 죽었다고 한다. 하지만 반장전에 따르면 감녕의 병력을 받는 시기가 관우토벌 이후라서 확실히 215년에 죽었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건강실록에서는 장굉의 사망이 229년으로 나오는 등 틀린 기록도 있기 때문이다. 반장전을 따르면 대략 219년 즈음 사망했다고 볼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