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갈라파고스화/일본 (문단 편집) ==== [[바둑]] ==== 바둑의 경우, 갈라파고스화를 넘어 아예 '''붕괴 일보 직전인 상황'''이다. 실제로 [[일본]]은 현대 [[바둑 기전]] 시스템을 확립하고 [[정석]]과 [[포석]], [[덤]]을 연구하며 현대 바둑의 기초를 정립하여 [[1980년대]]에 세계 바둑을 주도하였다. 최초의 국제 바둑 대회인 [[후지쯔배]]를 창설하는 등 [[1980년대]]까지는 일본이 세계 바둑계에서 독주했다. 그러나 1984년부터 시작된 [[중일 슈퍼 대항전]]에서 중국에서 '철의 수문장' [[녜웨이핑]]이 일본의 정상급 기사들을 상대로 11연승을 거두고[* 이 공적으로 녜웨이핑은 중국 정부로부터 기성(棋聖) 칭호를 받기도 했다. 다만 녜웨이핑은 80년대 후반부터 열리기 시작한 메이저 세계대회에서는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다.], 일본에서 바둑을 배워 온 [[조훈현]]이 제1회 [[응씨배 세계 프로 바둑 선수권 대회|응씨배]]에서 우승하는 등, 일본 바둑 천하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1990년대에는 [[한국]]에서 [[이창호]]가 튀어나오며 현대바둑의 흐름을 뒤바꾸어버렸고, [[2000년대]] 중반 이후로는 [[중국]]에서 수많은 바둑 인재들이 쏟아져나오며 다시 현대바둑의 흐름을 바꾸었다.[* 특히 중국의 90후세대는 중국 역사사상 최고의 황금세대고, 그 중에서 에이스인 커제는 세계바둑 1인자로 자리잡았다.] [[1990년대]]에는 두터움을 기반으로 한 한국식 계산바둑이 세계를 주도했고, [[2000년대]] 중반 이후로는 수읽기와 전투를 기반으로 한 중국 바둑이 세계를 주도하는 중이다. [[2016년]] 알파고의 등장으로 일본 바둑계는 또 한 번 얻어맞았다. 한국 바둑은 과거 이창호나 이세돌 같이 세대를 이끌어가는 절대 강자가 없어서 중국 바둑에 밀리긴 하지만 여전히 중국 바둑에 대항할 수준은 된다. 하지만 일본 바둑기사들은 바뀐 현대바둑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고, 국제대회가 일상화된 현대바둑의 세계에서 경쟁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2021년 현재에도 여전히 세계대회에선 매우 약세다. 그나마 2018년 [[이야마 유타]]가 LG배에서 준우승 한것이 나름 성과인 정도. [[일본]]은 바뀐 현대바둑의 흐름을 따라잡기보다는 자국 내의 바둑에만 집중했고, 이 와중에 [[일본기원]]이 [[바둑 기전]]의 제한시간이나 관련 규정을 국제 바둑대회 기준에 맞지 않게 유지하며 [[그들만의 리그(속어)|그들만의 리그]], [[갈라파고스화]]를 조장했다. 메이저 국제대회는 라운드 속행이나 휴식시간 문제 때문에 '제한시간 2~3시간'을 두고 [[초읽기]]도 '1분 초읽기 5회' 또는 '40초 초읽기 5회'를 표준적인 규정으로 삼았다. 그러나 [[일본]]의 3대 기전(큰 기성/명인/혼인보)은 '''제한시간 8시간, 초읽기 1분 10회 이틀 바둑'''이고 이 3대 기전의 본선 리그 제한시간은 '''5시간'''이다. 나머지 4대 기전(왕좌/천원/작은 기성/십단) 중 왕좌, 천원, 십단전의 경우 국제 경쟁력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제한시간 3시간, 초읽기 1분 5회'''로 줄이긴 했지만 작은 기성전의 경우 여전히 제한시간이 '''4시간'''이다. 결국 일본 바둑 기사들은 국제대회 기준에 맞춘 바둑을 많이 두지 못해 국제대회 적응력이 저하되었고, 국제대회 예선이나 본선 1회전에서 [[광탈]]하는 것이 일상화되고 말았다. 일본의 [[속기]] 국내대회인 [[NHK배 TV 바둑 토너먼트|NHK배]]와 용성전의 제한시간 규정이 속기 국제대회인 [[TV 바둑 아시아 선수권대회|TV 아시아]]와 같아서 NHK배 우승자와 준우승자가 출전하는 TV 아시아에서 일본 바둑 기사들이 이따끔 성적을 내는 것을 본다면,[* 2003년 TV 아시아 대회에서는 미무라 도모야쓰가 준우승, 2010년 대회에서는 유키 사토시가 준우승, 2013년 대회에서는 이야마 유타가 우승했다.] 확실히 일본 바둑의 초장고대국은 일본 바둑기사들의 국제대회 경쟁력 저하로 이어지는 요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 이런 장고대국은 팬 유입자체를 저하시킨다. 일본바둑 팬 대부분은 노인층이다. 그래서 [[2000년대]] 초반에 일본기원을 개혁해 보고자 [[가토 마사오]] 九단이 일본기원 이사장이 되면서 여러 개혁정책을 시도했으나, [[2004년]] [[뇌경색]]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하여 일본기원 개혁안은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일본기원과 일본 바둑계는 개혁의 기회조차 잃어버린 채 더욱 갈라파고스화로 치달았다. 이런 여러 요인들이 겹치고 겹쳐서 일본 바둑이 갈라파고스화로 치달았고, 그 결과 아래와 같은 현상이 발생했다. 첫 번째, 일본 바둑기사들이 국제경쟁력을 상실했다. 순수 [[일본인]] 기사가 메이저 세계대회에서 우승한 것은 [[요다 노리모토]]가 [[1996년]] [[삼성화재배]]에서, [[고바야시 고이치]]가 [[1997년]] [[후지쯔배]]에서 우승한 것이 마지막이다. [[2003년]] [[삼성화재배]]에서 우승한 [[조치훈]]과 [[2005년]] [[LG배]]에서 우승한 [[장쉬]]는 소속은 일본기원이지만 국적은 [[한국]]과 [[대만]]이다. [[2018년]] 기준으로 일본인 기사의 메이저 세계대회 우승은 '''20년도 넘은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거기에 일본 기사들은 중국갑조리그에서도 보기 쉽지 않다. 그나마 이야마 유타나 시바노 도라마루가 뛰고 있지만 게임 출전빈도가 매우 낮다. 우리나라 기사들은 갑조리그에 꼬박꼬박 출전해서 중국기사와 대결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국제 경쟁력에 있어서 매우 큰 효과를 보고 있다.[* 세계대회 통합예선을 하면 일본기사가 패스하는 경우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시드를 받아도 거의 광탈수준. 우리나라 여자기사인 최정도 세계대회 예선을 뚫는 것을 보면 이러한 수준차이는 심하다.] 두 번째, 일본기원이 주관하는 메이저 세계대회의 폐지이다. 2002년부터 개최되었던 메이저 세계대회 도요타덴소배는 [[세계금융위기]]의 여파로 2009년에 폐지되었고, 세계 최초의 메이저 세계대회 [[후지쯔배]]도 2011년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을 계기로 폐지되었으며, 일본기원은 이들 세계대회의 폐지 이후 한동안 국제대회를 열지 않았다. 2014년부터는 [[글로비스배 세계 바둑 U-20|글로비스배]], 2017년부터는 [[월드바둑챔피언십]] 초청전을 개최하고 있지만 이 기전들은 제한기전으로, 아직까지 메이저 세계대회는 개최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중국과 한국으로부터 눈총을 받는 위치가 됐지만 [[일본기원]]의 공식 입장은 '아직 메이저 개최 움직임은 없다. 계속 노력하겠다.'는 것이지만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9/18/2018091800108.html|관련 기사]] 다만 일본에서 개최되고 있는 [[월드바둑챔피언십]]의 경우 상금 규모 면에서 이미 메이저 세계대회와 별 차이가 없고 2018년에는 6강 토너먼트, 2019년에는 8강 토너먼트로 점차 확대되고 있어 이 대회가 향후 메이저 세계대회로 확대될 가능성은 있다. 세 번째, 일본 바둑은 [[디지털]]화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일본 바둑은 2021년 현재까지도 원칙적으로 종이재질의 기보에 볼펜으로 착수와 시간을 기록하는 시스템을 유지한다. 그나마 국제대회에서는 전자기록을 하고 [[2017년]]부터는 제한적으로 幽玄の間(유현의 방/유겐노마)[* 일본기원에서 운영하는 바둑 프로그램. 幽玄の間은 원래 [[일본기원]] 특별대국실의 이름이다. 한국에서는 공식적으로 유현의 '''방'''으로 번역되었다. [[히카루의 바둑]]에서 여기를 다룬 에피소드가 나올 때 [[한국기원]]에서 정한 정식 번역명칭이다.]을 통해 수순기록을 하지만, 이것도 자필기록에 전자기록원을 추가해서 병행하는 비효율적인 방식이다. [[한국]]이 [[사이버오로]]를 통해 기록원과 계시원을 한 명으로 통합했고, [[2018년]]에 아예 [[http://www.cyberoro.com/news/news_view.oro?div_no=A1&num=524126&pageNo=1&cmt_n=0|자동기록시스템]]을 개발한 것과 대조적이다. 네 번째, 일본의 세대교체가 매우 늦어졌다. 일본은 장고 대국이 대세고, 여전히 그 고집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오히려 속기가 너무 많아서 장고 대국을 늘렸는데 그것도 대부분 2시간 내외다. 이런 장고대국 때문에 노장 기사들이 여전히 활약하고 있다. 1978년생 야마시타 게이고, 1980년생 장쉬, 1981년생 고노 린이 기전 결승에 꾸준히 이름을 올릴 정도이다. 결승에 이름을 올리는 선수도 1989년생 이야마 유타는 고정적으로 되어있고 그나마 1997년생 이치리키 료와 1999년생 시바노 도라마루가 패권을 다투고 있다. 세계대회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을 보면 대부분 1990년대생이다. 1990년대생 중에서도 특히 후반생들. 대표적으로 커제, 구쯔하오, 양딩신이 세계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다. 대한민국에는 2000년대생 신진서와 1999년생 신민준이 있다. 1993년생 박정환도 신진서가 잘나가면서 다소 꺾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잘하고 있다. 중국 국내는 사실상 1980년대생이 천야오예를 제외하면 대회에서 사라졌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고, 1990년대생 초반도 1990년대생 후반에게 많이 밀리고 있는 추세이다. 물론 바둑은 나이를 잘 안 타는 종목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조훈현이 40대에 세계대회 우승할 때의 이야기다. 이창호, 이세돌도 30대가 넘어가면서 전성기가 꺾이기 시작했고 중국의 구리도 그러하다.[* 이창호는 30대에 세계대회 준우승이 많아서 그렇지 여전히 실력 자체는 유효했다. 하지만 우승을 밥 먹듯이 하는 등 '바둑의 신'으로 군림한 전성기에 비하면 꺾인 것도 사실이다.] 중국이 빠른 세대교체를 하면서 사실상 10대와 20대가 주류가 되는 종목으로 되었다. 이야마가 여전히 일본의 1인자로 있지만 30대라는 나이는 세계대회에서는 마이너스 요소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