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가톨릭/대한민국 (문단 편집) ==== 군사정권 시대의 야합 주장 ====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건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부터 전두환, 신군부 시절까지 당시 야당의 거두였던 [[김대중]]이 가톨릭 신자였으며, [[장면]]부터 시작해서 가톨릭교회는 대체적으로 정치인에게 매우 관대했다.[* 교세의 확장에 매우 유리한게 사실이다.] 게다가 김대중만 그런게 아니라 [[이효상]]같이 정부 인사들도 가톨릭 신자들이 있었다. 게다가 그 [[김기춘]]도 천주교 신자였다. 이는 위에 언급된 노기남 대주교를 필두로 하는 주교들은 될 수 있으면 일제강점기에 그랬던 것처럼 정부랑 충돌을 피하려고 했고, 오히려 같은 이권을 얻으려고 친정권적인 자세를 취했다. 당시 총리였던 이효상은 대구 가톨릭계의 거물이었고, 막강한 권력을 바탕으로 가톨릭교회의 뒤를 봐줬으며, 실제로 그는 교황청 대십자기사훈장을 받고, 그의 차남인 [[이문희]]는 신부로 서품된 지 7년 만에 주교로 서품됐으며, 나중에 [[천주교 대구대교구]] 교구장으로 착좌한다. 일부에서는 이는 일반적인 과정이라고 주장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대표적인 예로 [[염수정]] 추기경 같은 경우 보좌주교가 되는데 근 30년이 걸렸고, 한국 가톨릭교회에서 유래없이 초고속으로 주교서품을 받았다는 [[강우일]] 주교는 사제서품 이후 주교가 되는 데 11년이 걸렸다. 게다가 이문희 주교가 주교품을 받을 시절인 1972년에는 한국에서 주교 숫자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으니, 더 엄청난 일이었다. 이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혹은 교황청의 지지 혹은 묵인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괜히 박정희가 육영수와 대구대교구 주교좌성당인 계산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딸인 박근혜가 세례성사를 받고 가톨릭계인 성심여자중학교, 성심여자고등학교, 서강대학교에 다닌 게 아니다. "가톨릭 재단 소속이였던 [[경향신문]]은?" 이럴 수도 있으나 경향신문은 가톨릭 신자인 장면 사도 요한을 밀어주다가 이승만에게 찍혀서 정간 먹고 이후에는 1962년 이준구 사장이 서울대교구로부터 신문사를 사실상 인수함으로써 군사정권 때는 천주교랑 별 상관 없는 언론이였다. 천주교 대구대교구는 제5공화국 출범 시기 국보위에 참여한 이력도 존재한다. 다만 이거와 별개로 뒤로는 전두환 시절에도 밀월관계를 유지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1980년 언론 통폐합을 할 때 1도 1신문사 원칙을 내세워 당시 교구 소속으로 가톨릭계 신문사인 매일신문에 당시 영남 구독율 1위인 영남일보를 합병시켜줘서 현재 매일신문이 경북지역의 제1신문사가 되게 하는데 큰 도움을 준 것. 실제로 [[매일신문]]은 해당 항목을 확인해보면 알겠지만, 논조가 굉장히 보수적이다. 지금은 물론 매일신문은 사기업에 매각된 상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