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가톨릭 (문단 편집) === 기타 오해들 === [include(틀:토론 합의, 토론주소1=OvertMuddyFluffyTable, 합의사항1=사측의 판단에 따라 편견 및 고정관념/종교 문서의 기여내용을 관련문서로 이동시키고 삭제하기)] * 천주교 신자가 아니거나, 일부 개신교 신자들, 그리고 교리지식이 다소 부족한 상당수 천주교 신자들이 가지고 있는 오해 중 하나로, 천주교는 1939년 이후로 조상[[제사]]를 '''전면 허용'''했다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전면 허용이 아니라 일부 미신적 요소[* 대표적으로 '신위'가 적힌 신주, 축문, 합문 등]를 제외했다는 전제 아래 조건부로 조상제사 참여를 허용한 것이다. 이러한 원칙들을 지키지 않는 일반적 유교 조상제사는 천주교에서 여전히 [[우상숭배]]의 죄이다. 자세한 관련 원칙과 허용/금지사항에 대한 것은 [[제사/종교별 입장 #s-2|이 문서]] 참조 * 특히 [[가톨릭/대한민국|한국 천주교]]에서 [[묵주]]는 목에 걸면 안된다는 인식이 있지만 원칙적으로 금지된 일은 아니다. 다만, [[묵주]]는 [[목걸이]] 용도가 아니라 기도를 도와주는 도구이기 때문에 액세서리 목적으로 걸고다니는 것은 지양해야한다. 그래서 [[묵주]]를 목에 걸 때는 옷 안으로 걸도록 권유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평신도들이 좀 큰 묵주를 목에 걸고다니는 경우도 꽤 있다. '''묵주를 어떻게 하고 다니든 본인의 자유이며 [[케바케]]이다.''' 성물 자체를 우습게 여기거나 종교적 이유가 아닌 다른 목적으로 착용하고 다니는 것이 큰 잘못인 것이다. * [[천주교 마산교구]]에서 [[임진왜란]] 당시 천주교 신자였던 [[고니시 유키나가]]가 짓고 주둔하던 웅천왜성에서 자신들의 신앙활동을 위해 [[예수회]] 소속 [[그레고리오 데 세스페데스]] 신부를 불러 [[미사]]를 드렸던 것을 근거로 "세스페데스 신부가 하느님의 손길을 전했다"라며 [[http://www.catholicpress.kr/news/view.php?idx=1574|성역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기사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웅천왜성 축조에서의 가혹함을 지적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유성룡]]이 기록한 [[징비록]]에는 '[[경상도]] 지역 [[왜구]]들의 [[강간]]이 극심해, [[조선]]의 순수한 혈통이 끊겼다'고 남기고 있으며, [[웅천왜성]]을 축조하기 위해 동원된 조선인들은 굶주림 때문에 [[인육]]을 먹었다는 내용도 전하고 있다" 그러나 웅천왜성에 가톨릭 신자들이 [[그레고리오 데 세스페데스]]를 기억하는 의미를 부여한다고 한들, 그것 자체는 웅천왜성 축조의 가혹함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다. 간단한 비유를 하자면, [[http://maria.catholic.or.kr/sa_ho/list/view.asp?menugubun=holyplace&ctxtOrgCode=71&ctxtGyoguCode=&Orggubun=71&ctxtHigh=&ctxtLow=&curpage=2&ctxtOrder=%20name1%20&ctxtOrderType=&ctxtOrgNum=2318&PSIZE=20|남한산성 성지]]가 '신라 [[문무왕]]이나 조선 [[인조]]의 국토 방어 의지'나 '축조에서의 노동 환경' 때문이 아니라, '[[순교]]가 일어난 곳'이기 때문에 성지인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당연한 사실이지만, [[임진왜란]]은 종교전쟁이라 보기 어려우며 오히려 [[예수회]] 선교사들은 일반적으로 히데요시가 명분 없는 전쟁을 일으켰다고 생각했다.[* [[예수회]] 선교사제들의 일반적 인식은 다음을 근거로 한다. <왜란 시기 예수회 선교사들의 일본과 조선 인식 - 순찰사 알렉산드로 발리냐노의 일본 방문을 중심으로 ->,교회사 연구 제49, 2016년 12월(한국교회사연구소 발행), 김혜경([[대구가톨릭대학교]] 인성교육원 강의전담교수)] 이러한 인식은 Alessandro Valignano가 1592년에 총장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벌써 조선국을 정복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 전쟁은 아무런 명분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로지 그(히데요시)의 정복욕에 의한 것입니다. >---- >Alessandro Valignano, Adiciones(1592) del Sumario de Japon, Adicion 4, IV, 487. 또한 당사자 [[그레고리오 데 세스페데스]] 신부조차도 [[왜군]]의 침략에 비판적이였다. >아무도 원하지 않은 전쟁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무모함에 의해 저질러졌다 >---- >세스페데스 신부의 보고서 中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62192|#]] 더군다나 박철 교수(전 [[한국외대]] 총장)는 '''"세스페데스 신부를 왜군 종군신부로 모는 건 역사 왜곡"'''이라며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 박 전 총장은 “세스페데스 신부가 조선에 온 것은 극비리에 이뤄졌으며, 그 배경에는 1566년부터 가스파르 비렐라 신부가 ‘꼬라이’ 땅에 복음을 전파하고자 한 숙제를 실천에 옮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 박 전 총장의 설명에 따르면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가 1587년 천주교 추방령을 발표한 터라 세스페데스 신부의 조선 방문은 극비리에 이뤄졌고, 도착한 후에도 1년 동안 웅천 왜성의 은밀한 곳에 칩거하면서 복음 전파 시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1년 만에 체류 사실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귀에 들어가자 세스페데스 신부의 조선 방문을 도왔던 일본의 지방 제후들이 신부를 황급히 일본 땅으로 돌려보냈다. >박 전 총장은 “체류 당시 영내에 머물면서 왜군에 잡혀온 조선인 포로들만 접촉했으며, 일본군 천주교 병사들을 대상으로 [[미사]]와 [[세례성사]]를 집전한 것을 두고 종군신부라고 규정하는 건 역사적 비약”이라고 말했다. >또 “일본으로 돌아가는 도중 [[대마도]]에서 귀족의 자손으로 보이는 어린아이 포로를 데려가 비센테(Vicent)라고 세례를 주고 보살핀 것으로 기록에 나온다”며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의 참화에 대해 보고서를 만들어 일본에 있던 [[예수회]] 부관구장 신부에게 알림으로써 유럽에 전쟁의 진상과 조선 왕국의 존재를 최초로 알린 것은 매우 중요한 역사이며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박 전 총장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종군신부’ 논란의 발단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그는 1930년 일본 역사학자 야마구치(山口正之)의 ‘세스페데스의 서간문 연구’ 논문에서 왜군의 ‘종군신부’라고 단정지은 것이 시초라고 설명했다. >그는 “1930년대 일본의 조선 식민지배 당시 야마구치에 의해 왜곡된 주장이 아직도 국내 일부 교회사 연구에서 받아들여지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 >[[프레시안]]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62192|기사]] 즉 애초에 히데요시와 정치적 이해 관계가 일치하지 않고[* 1587년에 이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선교사 추방령을 내렸다.] 명분을 비판한게 [[예수회]] 선교사들이며, 세스페데스가 '히데요시 몰래' 조선에서 미사와 세례를 집전하고 조선인 포로들과 접촉한 것을 가지고 임진왜란과 엮어서 비판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임진왜란]] 당시의 예수회가 조선 정부에게 물자라도 지원했냐고 하면 그건 아니지만, 조선인에게 해를 끼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심지어 1598년 9월 4일에 [[나가사키]]에서는, 일본 교구장 세르게이라 주교가 신부 12명을 소집하여 '조선인 노예 매매에 관한 대책회의'를 열고는 그 잔혹성을 고발한 기록도 고스란히 문서화되어있는 등 예수회 선교사들과 조선인들이 원수졌다고 볼 근거는 없다. 훗날 [[마산교구]]장이 된 [[배기현]] 콘스탄틴 주교는[* 최상단의 비판 기사에 나온 [[미사]]를 봉헌하였으며, 당시는 아직 주교가 아니었고 신부였다.] 교구의 대화 노력이 부족했다면서, 이 문제에 비판적인 신자들과 더 소통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하기는 했지만[[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368|#]], [[가톨릭/대한민국|한국 가톨릭]]이 세스페데스를 통해 임진왜란을 정당화한다거나 미화했다고 보기엔 어렵다. * [[엑소시즘]]을 하려면 교황청의 허가가 있어야 한다. * 해당 문서 참고. 해당 지역을 관할하는 [[주교]]의 권한이다. * 가톨릭 [[신부(종교)|신부]]들은 [[아동성애자]]들이다. * 국내 가톨릭에서는 딱히 상관없는 문제이나 서구권에서는 [[가톨릭 아동 성범죄 논란|몇몇 막장 신부들의 아동 성범죄 행태]][* 그것도 피해자 대부분이 여자아이가 아닌 남자아이. 즉 동성애와 소아성애가 결합된 형태.]가 드러나면서 크게 이슈가 되었다. 특히 [[교황청]]이 해당 사실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더 가중되었다. 캐나다에서는 엄청 심하게 일어난적도 있다. '''그러나 [[https://www.psychologytoday.com/us/blog/do-the-right-thing/202004/keeping-children-safe-in-the-catholic-church|통계]]상 가톨릭 성직자가 다른 직업이나 다른 교단 성직자보다 특별히 더 심한 것은 아니다.''' 20세기 후반 동안 가톨릭 성직자 중 아동 성학대 의혹을 받은 수치는 약 4%정도로, 이는 다른 교단 성직자의 수치와 일치하며, 공립학교 교사{{{-2 (6%)}}}보다 낮은 수치이다. 물론 사람들이 성직자에게 원하는 건 '우리와 똑같은 세속적인 사람'이 아니라 '뭔가 다른 사람'인 만큼 이런 수치도 뼈아픔은 분명하고 그래서 언론들과 전세계 교구들에서 난리가 난 것이지만, 가톨릭 성직자가 특별히 다른 집단보다 아동성범죄를 자주 일으켰다 보긴 어렵다. * [[니케아 공의회]]에서 성경의 [[카논(성경)|정경화]]가 이루어졌다. * 니케아 공의회는 주로 [[삼위일체론]]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공의회였고, 정경 목록을 정하기 위한 공의회는 아니였다. 서방교회의 정경 목록은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정해졌다. 카르타고 공의회는 지역 공의회였지만 서방교회 전체는 여기에서의 정경 목록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후 카르타고 공의회 정경 목록은 트렌토 공의회때 보편 공의회(세계 공의회)의 레벨로 재확인 되었다. * 가톨릭교회는 정치적으로 진보 성향이다. * 한국과 라틴 아메리카의 성직자들의 진보 성향이 전체적으로 강한 건 사실이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성직자들 개개인의 정치 성향이 진보로 기울어진 것이지 가톨릭 교회 그 자체는 특정 정치성향을 공식적으로 지지하지 않는다. 진보적인 성향으로 평가받는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도 어디까지나 개인 자격으로 신자유주의에 비판적일 뿐, 교황의 수위권 혹은 교도권을 통하여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게 아니다. 가톨릭 교회는 부자와 가난한 자들이 모두 믿을 수 있는 보편적인 교회를 추구할 뿐, 피지배자만의 교회, 착취받는 자만의 교회 같은 것은 지향하지 않는다. 당장 신자 십수억 규모의 초거대 종파가, 공식적으로 특정 정치 성향을 교리적으로 지지한다면 가루가 되도록 까일 것이다(...) 그나마 가톨릭이 지지하는 정치 성향이 있다면 반전주의 정도.[* 이건 당연한 거다. 사랑과 관용을 내거는 만큼 이것만은 까일 거리가 없다. 게다가 전쟁 좋아하는 민중도 별로 없고.] 가톨릭의 성향은 진보나 보수로 요약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하다. 가령 정치적 진보 이미지가 있는 한국 가톨릭은 과거나 현재나 확고한 반공 스탠스이며,[* 공산주의의 박해를 받은 한국 가톨릭은 당연히 확고한 반공 스탠스이다. 오늘날에는 북한에 더 온정적으로 바뀌기는 했지만, 정치적 의미에서의 공산주의에는 결코 동의한 적이 없다. 게다가 반공보다는 반독재와 반주체사상에 가까운 청년층과는 달리, 해방 직후에 [[소련|원산지]] 직송 정품 [[레닌주의]]의 박해를 받은 한국 가톨릭은 공산주의 그 자체에 부정적이다. 게다가 5공 시절만 해도, "공산주의자들이 교구를 와해시키고 주교님을 잡아가고 신학교를 폐쇄했어요" 하는 기억을 가진 실향민 사제들이 교계에 넘쳐났었다. 당장 대형 수도원인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만 해도, 공산주의자들의 박해로 교구{{{-2 (면속구)}}}가 와해되고 주교아빠스가 순교한 수도자들이 남쪽에 피난 와서 세운 것이다. 그런 상황에 교계의 친북은 그야말로 말도 안되는 소리다.] 정치적 보수 이미지가 있는 유럽 가톨릭은 노동 운동과 깊게 연루되어 있다. 또한 바이마르 헌법[* 제153조 3항]과 독일연방 기본법[* 제14조 2]에 명시된, 그리고 오늘날 대한민국 헌법과 민법의 재산권 개념을 관통하는 명제인 Eigentum verpflichtet{{{-2 (소유권은 의무를 수반한다)}}}를 독일 주교 빌헬름 엠마누엘 폰 케텔러[* Wilhelm Emmanuel von Ketteler, 1811-1877]가 주장하였다. 즉 가톨릭 교회 전체는 물론이고, 지역 교회도 정치적 보수나 진보로 요약하기는 힘들다. * [[면벌부]]는 죄를 없애주는 문서이다. * 죄를 없애는 게 아니라 보속을 면제해 주는 것이다. [[면벌부]], [[고해성사]] 문서를 참조하자. * 그리스도교, 특히 중세 가톨릭 교회 때문에 중세시대에 [[고대 로마]] 시대에서 기껏 발전시켜왔던 유럽의 문명을 지체시키고 퇴보시켰다. * [[중세]] 문서 참조. 현재 역사학계에서는 이미 식은 떡밥이다. * 중세 가톨릭은 교리적으로 [[천동설]]을 공인했다. * 신학자들의 관심대상은 [[삼위일체론]]이 어떻고 실체변화가 어떻고였지, 저어기 우주에 박힌 별들이 아니었다. 교리적으로 천동설을 공인한 적은 없고, 단지 당시의 주류 자연철학 이론이던 천동설에 대해 '신학적으론 이러이러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다'고 이런저런 썰들을 붙였을 뿐이다. 즉 현대 가톨릭이 진화론을 보고 '신학적으로는 이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는 것과 다를바가 없다. 갈릴레오의 종교재판의 경우 지동설 그 자체의 참-거짓 논증 때문이 아니라, 갈릴레오가 지동설을 주장하면서 야기된 일련의 정치적 사태에 대한 재판이었다. 더 자세히 언급하자면, 그의 저서 [[두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에 나오는 캐릭터 중 하나가 교황을 풍자한다는 루머 때문에 재판을 받았다. * 가톨릭은 [[예수]] 없이도 구원이 가능하다/가톨릭은 선행만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 종교다/가톨릭은 가톨릭을 고의적으로 믿지 않아도 구원이 가능하다고 보는 개방적인 종교다. * 전형적인 보수 / 근본주의 개신교 진영의 마타도어이기도 하고, 근본주의 개신교 진영이 아니라도 생각보다 엄청나게 많은 비종교인들 역시 잘못 생각하고 있는 가톨릭에 대한 대표적인 편견 및 고정관념 중 하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셋 다 틀렸다.''' 가톨릭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는 교리를 버린 적이 없으며 이는 애초에 전통적인 그리스도교 종파인 이상 앞으로도 영구히 포기할 수 없는 원칙이다. 또한 가톨릭은 선행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행위구원론을 이단으로 배격한다. 구원의 여정에 있어 선행의 중요성을 부정하지 않으나, 그리스도와 가톨릭교회에 대한 믿음은 없이 선행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은 명백한 오류이다. 마지막으로 가톨릭은, 가톨릭을 믿지 '못한' 비신자들의 구원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톨릭에서 인정하는 구원의 가능성은 불가항력적인 무지나 불가능을 전제로 한다. 즉 시대적인 한계나 또는 물리적인 제약의 한계 등으로 복음을 듣지 못하거나 가톨릭을 믿지 '''못한''' 사람 중 자기 문화권의 양심을 최대한 지키고 선한 삶을 산 사람의 구원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일 뿐이고, 이 구원의 가능성이라는것도 타종교에 무슨 신적 권능이나 구원요소가 있어서가 아니라, 복음을 접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하느님의 자비와 능력 때문에 구원받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또한 결정적으로, '''가톨릭을 믿을 수 있는 상황(이미 선교를 접한 상황이라거나)에서 가톨릭 믿기를 고의적으로 거부한 비종교인/타종교/타종파인은 아무리 나름대로 선하게 살았다 주장하더라도 구원받을 수 없다.''' 또 오해의 여지가 다분한 내용 중 하나는, "가톨릭은 어느 누구도 지옥에 갔다고 단언한 적이 없다"는 말인데, 말 자체는 사실이나, 이건 '가톨릭 교리 = 만인 구원설'이나 '하느님은 자비로우시니까 죄인들도 회개없이 다 구원받는다'는 식의 주장이 아니다. 가톨릭교회의 입장에서는 어떤 '''특정 사람'''이 죽어 지옥에 갔는지, 천국이나 연옥에 갔는지는 그 사람의 회개하는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같은 인간의 능력으로선 파악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저 확답을 내리지 않고 그 사람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가톨릭에는 어떤 사람이 정확히 천국에 가고 어떤 사람이 정확히 지옥에 가는지의 확정된 기준이 없다"는 식의 글도 오류 중 하나인데, 특정 사람이 사후 지옥인지 천국행인지에 대한 확답을 지양할 뿐이지 '''사람들의 구원 범위와 여부에 대한 기준[* 가톨릭 신앙을 알게 되었으면서도 가톨릭 신앙을 가지기를 거부하거나, 믿어야 할 교리를 알게 되었지만 하나라도 의도적으로 거부하거나, 고의적으로 [[냉담자]]가 되거나 타종교 혹은 타종파(개신교나 정교회 등)로 이탈하거나, 배교하거나, [[대죄]]=중죄를 알고, 이를 지었으면서 상등통회([[고해성사]] 문서 참조)를 거부하거나, 지속적으로 죄에 머물기를 고집하거나, 고해성사를 거부하거나 등으로 참다운 [[회개]]를 하지 않았을 경우는 구원받을 수 없다.] 은 확실하고 분명하게 존재한다.''' [[Extra Ecclesiam nulla salus]] 참조. * 가톨릭 신자들은 교황청에서 인정한 [[성모 발현]] 기적들을 믿어야 된다. * 이건 의무적으로 믿을 필요는 없다. 자신이 믿기 어렵다면 믿지 않는다고 해도 신앙적으로 잘못이 아니다. 이렇게 '반드시 믿어야 할 의무는 없음'은 꼭 성모발현이 아니더라도 다른 천사나 성인의 발현, 환시 등의 사항에도 마찬가지다. 즉, [[교황청]]에서 인정한다는 표현은 곧 "믿어도 괜찮다" 라는 거지 "믿어야 한다" 가 아니다.[* 성모 관련해서 "교황령으로" 반드시 믿어야 한다고 정한 교리는 [[성모승천]]과 [[성모무염시태]] 둘 뿐이다. [[삼위일체론|삼위일체]] 하느님의 개념과, 예수가 그리스도 즉 선택받은 구세주이며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삼일 뒤 [[부활]]하였으며 다시 재림할 것을 믿는 것은 그리스도교로서 너무나 기본적인 교리이기 때문에 교파 막론하고 (가톨릭이든 [[정교회]]이든 [[개신교]]이든 간에) 당연히 반드시 믿어야 하는 교리이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른바 ‘사적’ 계시들이 있었고, 그중의 어떤 것들은 교회의 권위로 인정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것들은 신앙의 유산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것들은 그리스도의 결정적 계시를 ‘개선’하거나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한 시대에서 계시에 따른 삶을 더욱 충만하게 살 수 있도록 돕는 데에 지나지 않는다.''' 교도권의 인도에 따라, 신자들은 신앙 감각으로 이러한 계시들 가운데에서 그리스도나 성인들께서 교회에 하신 진정한 호소를 식별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 >가톨릭 교회 교리서 67항 [br] >그러므로 사적 계시는 교회의 승인을 필요로 합니다. 자주 정신적 착란 현상과 혼동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거짓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적 계시가 교회의 승인을 받았다고 공적 계시가 되는 것도 아니요, 모든 신자들이 반드시 믿어야 할 신앙의 내용일 수도 없습니다.''' > >우리 시대의 큰 신학자였던 스킬레벡스는 사적 계시의 교회 승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습니다. “'''어떤 발현이나 사적 계시에 대한 교회의 승인은 … 그 역사적 진실이나 권위의 절대적인 오류가 없다는 입증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다만 충분한 증거가 조사를 통해서 나왔고 그래서 우리가 이성적 바탕 위에서 발현의 신적 권위를 받아들이는 데 조심스럽게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비준하는 것에 불과하다. … '''사실상 교회는 발현이 일어난 그 장소에서 마리아가 특별한 방법으로 공경을 받을 수 있다는 공식적 허락이상의 무엇을 주고 있지 않다.''' … 교회가 선언하는 것은 교회의 판단으로 그것이 신앙과 윤리적 가르침에 반대되는 것이 없고, 그리고 거기에는 인간적 신앙에 의해 이루어지는 조심스러운 승인과 그들의 신심을 위해 충분한 징후들이 있다는 것이 전부이다.”[* (문헌 내 주석) E. Schillebeeckx, Mary, Mother of The Redemption, London 1964, 197쪽 이하(H. Graef, Mary, a History of Doctrin and Devotion, London 1994(4판), vol. 2, 84쪽. 재인용)] >---- >[[조규만 바실리오]] 주교, [[http://qabbs.catholic.or.kr/pds/bbs_view.asp?num=1023&id=24703&menu=4823|「사적 계시에 대한 올바른 이해」]] * 가톨릭은 여자를 혐오하는 [[미소지니]] 기반의 종교이다? * 주로 [[페미니즘]]을 공부한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 보통은 가톨릭에 국한되지 않고 [[그리스도교]]의 모든 종파들을 여혐종교라고 지칭한다. 그 이유를 천천히 들어보자면 이러한데, 첫 번째로 역사적으로 그리스도교는 여성을 차별하는 사상을 가지고 있어 그에 영향에 따라 오늘날에게 크게 영향을 끼쳤다라는 이유. 2번째는 여성 [[사제]]를 인정하지 않는 부분을 이유를 들어 여자를 혐오하는 종교라고 언급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여자를 혐오하는 사상을 전파하는 종교가 아니며, 문명권의 역사를 하나하나 짚어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오히려 여성들의 권위를 올려준 역할을 수행했고, 여성 사제를 허용하지 않는 것도 차별을 위한 것이 아니다. * 역사적 부분으로 보았을 때 로마 문명권에는 그리스도교가 국교로 선포되면서 이전에 상대적으로 미약했던 복지적인 부분을 상당히 많이 발전시켰는데, 보통 빈민 구제에 대한 부분이 중점이 되었고, 당대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소유물과 음식을 복지로써 하층민에게 도움을 주었고, 남성과 여성 모두 교사와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 또한 그 중 부유한 여성들은 교회 성장에 크나큰 기여를 하였다. 병원과 [[수도원]]이 설립되면서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가난을 극복하지 못한 자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또한 그리스도교의 영향력 덕분에 모성애에 대한 부분이 크게 주목되었다. * 중세 초기~근세까지 집어보면 여성들이 군사적 지위를 가진 사례가 있다. 앞 항목에 언급된 것과 같이 그리스도교 신앙은 주님 앞에서는 성별, 지위의 구분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기반으로 전제하기 때문인데, 대표적인 예로는 [[교황청]]으로부터 직접 승인받은 영광의 마리아 기사단(Ordo Militiæ Mariæ Gloriosæ)이 있다. 군주의 역량에 따라 평민 여성들에게도 입단의 길을 열어줄 수 있도록 기사단을 창설하기도 했고, 이 외 유명한 [[튜튼기사단]], [[구호기사단]]과 같이 다양한 방향으로 입단할 수 있었다. [[십자군 전쟁]] 당시에도 사라센 병력들의 기록에는 여성 성전기사단을 포로로 잡았다는 내용도 있다. 군사적 지위를 가지는 것은 국가의 재산과 안정을 수호하는 면에서 중요한 것으로, 성별을 떠나 여성들에게 신분에 상관없이 기회를 제공하도록 발판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사]] 문서를 참고하길 바란다. * 그리스도교 신앙이 지배했던 유럽은 아랍, 동양을 비교해봐도 여성 지도자의 숫자가 매우 많은 편이다. 가톨릭이 여성을 혐오하는 종교였다면 애초에 권력층에 올라설 수 있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을 것이다. 특이하게도 [[살리카법]]을 언급하는 페미니스트들이 있는데, [[살리카법]]은 가톨릭 교리가 아니라 위에서 언급된 [[게르만]] 국가였던 [[프랑크 왕국]]의 법이다. 이 [[살리카법]]이 시행된 배경에 대해서 이해하려면 이 시기의 시대적인 흐름에 대해서 많은 이해가 필요하다.[* 게다가 역사를 거시적으로 보면, [[살리카법]]은 긴 시간 동안 유지되지 못했다.] * 가톨릭 예비신자 교리서에 성모 마리아를 가장 존경하는 성인으로 묘사하고 있다. >-'''우리와 교회의 모범이신 마리아'''- (예비교리서 제 14과 109쪽으로부터) >[[성모 마리아]]께서 낳으신 [[예수 그리스도]]는 진정 하느님이시니, 마리아께서는 [[하느님의 어머니]]이시기도 합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순명의 정신으로 [[성령]]에 의한 동정 잉태를 받아들여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심으로써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였습니다... (중략) 그러므로 가톨릭교회에서는 성령의 가르침을 받아 우리와 교회의 모범이신 성모 마리아를 가장 사랑하올 어머니로 받들며, 그분께 자녀다운 효성을 바치는 것입니다. (교회헌장, 53항 참조) [include(틀:문서 가져옴, this=문단, title=편견 및 고정관념/종교, version=563)]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