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가톨릭 (문단 편집) == 개요 == '''가톨릭'''(Catholic) 또는 '''천주교'''([[天]][[主]][[敎]])[* 사단법인 한국천주교주교회의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62.09.08. (법인설립허가일), 문교부. [[http://www.mcst.go.kr/kor/s_data/corpNaru/corpView.jsp?pSeq=1302| ]] [[https://archive.ph/IVW6L| ]]][* 동양에 전래될 당시 [[마테오 리치]]의 영향으로 '천주'라는 표현은 가톨릭을 동양에서 칭하는 또다른 이름으로 자리잡게 되었다.]는 로마의 주교[* ''Episcopus Romanus'']이자 [[바티칸 시국]]의 [[국가원수]][* ''Princeps sui iuris Civitatis Vaticanae'']인 [[교황]](敎皇)을 수장으로 하는 [[그리스도교]] 교단이며, 성좌와 일치하는 [[교회론/가톨릭|교회]]를 통틀어 가리킨다. [[정교회]]와 함께 그리스도교 역사상 가장 오래된 교단이다.[* [[동서 대분열]] 전에는 정교회와 완전히 일치되어 있었고, '가톨릭'과 '정교'는 동의어로 쓰였다. 동서 대분열 이전 교회의 합법적 법통이 로마에 있는지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있는지는 양측의 시선이 다르지만, 아무튼 이 일치된 교회는 AD 1세기에 세워진 가장 오래된 교단이다.] '가톨릭 교회'라고 불리지만, 교황좌가 있는 로마를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로마 가톨릭 교회'라 불리기도 한다 (이 문서의 [[#명칭과 표기|명칭과 표기]] 문단 참조). '교회(church)'는 본래 그리스도교 신앙 공동체를 뜻하는 것이나 대한민국에서는 [[개신교]]의 예배 장소와 구별하기 위해 건물 이름에 '[[성당]]'이라는 단어를 넣거나 '천주교(가톨릭) ○○교회', '○○ 천주교회' 같은 명칭을 쓴다.[* 영어로는 'church'로 같다. 대성당은 'cathedral', 경당은 'chapel'이라 부른다.] 가톨릭 내부적으로는 '교회'는 오직 가톨릭만을 의미하기에 가톨릭 교회를 그냥 '교회'라고 자칭한다. 가톨릭의 기원은 기원후 1세기에 [[예수]]가 세운 그 반석 위의 교회이다.[* 물론 개신교에서는 현대의 가톨릭 교리가 예수가 바란 교리라곤 생각하지 않겠지만, {{{-2 (21세기 가톨릭의 교리가 예수가 바란 교리이든, 혹은 변질된 교리이든)}}} 초대 교회의 조직 자체의 역사가 오늘날의 가톨릭과 정교까지 이어진다는 건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단지 초대 교회의 합법적 법통이 지금의 로마랑 콘스탄티노폴리스 중 어디에 있는지만 양측 시선이 다를 뿐이다.] [[로마 제국]]의 박해를 받다가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로마 조정으로부터 신앙의 자유를 인정받으며 박해의 시대가 끝났고, 391년 [[테오도시우스 칙령]]으로 로마의 국교(國敎)가 된 후 유럽 각지에 널리 전파되었다. 초기 [[교부]]들을 통한 그리스도교 교리의 보급은 근대 이전 서양의 정신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Religions in Global Society". p. 146, Peter Beyer, 2006] 그러나 제국 분열 후 로마와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한 교구 간의 오랜 갈등은 1054년 '''[[동서 대분열|동서 교회의 분리]]'''를 가져왔으며, 교회는 가톨릭과 [[정교회]]로 나뉘어 서로를 파문하는 등 대립하였다.[* Cross, Frank Leslie; Livingstone, Elizabeth A. (2005). "Great Schism". The Oxford Dictionary of the Christian Church, p. 706. Oxford: University Press. ISBN 978-0-19-280290-3.] 근대에는 지속적인 '''[[교회 일치 운동]]'''을 통해 양 교회 간의 화해 노력이 이루어졌다. 이는 분열의 종결과 재통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나, 교회의 화해 자체는 정치·사회·종교사에서 큰 의의를 가지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Metropolitan Philaret. "A Protest to Patriarch Athenagoras: On the Lifting of the Anathemas of 1054". Orthodox Christian Information Center, December 1965.] [[가톨릭/대한민국|대한민국의 가톨릭]]은 조선 후기 청나라로부터 '[[서학]](西學)'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소개되었고 [[정약용]] 등 [[남인]] 계열의 [[실학|실학자]]들 사이에 전래되었으나, 조선 조정으로부터 [[조선의 천주교 박해|강력한 박해]]를 받고 교세가 약화되었다. 가톨릭은 1886년 조선이 가톨릭 국가인 프랑스와 수교하면서 비로소 합법화되었으며, 이후 20세기 격동의 근현대사에서 종교적 구심점의 하나로 기능하였다.[* 《한국과 제3세계의 민주변혁》, 제2부 한국의 민주화, "현상과 전망: 한국 가톨릭 교회의 민주화운동 -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중심으로",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1989.] 1969년 [[김수환]]이 한국인 최초의 추기경으로 서임되었고, 1984년에는 [[김대건 안드레아, 정하상 바오로와 101위 동료 순교자|103위의 순교자가 시성]]되었다. ([[가톨릭/대한민국]] 문서 참고.) [[대한민국]]은 교황청과 1963년 수교하였고, 국내 가톨릭 인구가 약 10% 수준으로 안정적인 교회 운영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북한]]은 교황청과 외교관계가 수립되어 있지도 않고 북한 정부로부터 국내 가톨릭 활동도 보장받지 못하여 [[침묵의 교회]]로 불린다. ##서술 시 출처를 인용해주시기 바랍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