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가이텐 (문단 편집) === 초창기 === 최초 개발품은 인간 자폭 병기가 아니었다. 적당한 위치에 도달하여 조준을 고정한 후 승조원이 탈출하는 방안도 있었다. 해군 수뇌부가 500kg짜리 어뢰용 탄두로는 위력이 모자라므로 더 큰 탄두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여 더 큰 것을 달았는데,[* 가이텐의 모태인 산소어뢰에는 780kg짜리 탄두를 단 것도 있다.] 그 때문에 어뢰가 불안정해져서 적함에 들이받을 때까지 계속 조종해야 했다. 기술자를 좀 더 이용해서 탑승원이 탈출할 방법을 마련해줄 수도 있었지만, 바다에는 파도가 일기에 중간에 사람이 빠져나가면 명중률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그러지도 못했다. 뭐 사실 탈출장치를 만들어봤자 대양 한가운데+적함 근처라는 인간이 생존하기 최악의 환경에서 탈출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 수 있냐는 반론도 가능하다. 적함 근처에서 탈출해봤자 탈출만 하고 이탈을 하지 못해서 폭발에 휘말리면 당연히 죽는 거고, 또 적함의 근처라면 당연히 적 함대 쪽에 자리하고 있을 텐데 이런 곳에선 탈출해봤자 다른 적군의 대함사격 혹은 적함의 충각 공격이나 스크류 등에 휘말리면 사망할 수밖에 없다. 설령 적 함대가 후퇴를 택하더라도 망망대해에 홀로 남겨진 이상 근처에 섬이 없다면 반드시 죽는다. 그러나 어쩌다 인심이 좋은 적군에게 구조받아 생존할 가능성 정도는 있으니 아예 처음부터 살릴 방도를 없애는 것과 비교할 수는 없다. 쓸데없이 큰 탄두를 달았음이 가이텐이 실패한 가장 큰 이유일 수도 있다. 기존 500kg 탄두도 조종하기에는 벅차고 일본군 물자부족 문제도 있었으므로, 차라리 400kg급이나 그 이하로 줄이면 조종성도 나아져서 승조원이 탈출할 방법을 넣어주거나 명중률을 높이거나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가이텐이 쓰일 만한 바다에서라면 승조원이 탈출해도 근처 선박이나 수상기 등이 구해주러 오지 않는 이상 생존을 기대할 수 없었다. 대전 말기 일본 해군이 과연 가이텐에서 탈출한 승조원을 일일이 구하러 올 역량, 혹은 의지가 있었느냐? 절대로 아니다. 따라서 가이텐에 타면 탈출하든 못하든 죽기는 매한가지였다.] 설령 300kg대로 줄인다고 해도 이론상 중순양함 격침까지는 충분히 가능했다.[* 현대의 중어뢰 탄두가 대개 300kg대 중량인데, 이것만으로도 1만 톤을 넘는 군함을 일격에 격침할 수 있다. 물론 현대에는 폭약 성능이 더 향상되었음도 감안해야 한다.] 가이텐 한 발로는 대본영이 원하던 미 해군 [[엔터프라이즈(항공모함)#s-3|항]][[새러토가#s-2|공]][[에식스급 항공모함|모함]] 격침은 무리겠지만, 어차피 역사대로 만들어진 가이텐이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생각하면 차라리 이 편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1944년 7월 25일 오오이리시마(大入島) 발사장에서 시험제작기를 시험하였다. 탈출장치는 미완성이었기 때문에 장비하지 않았고, 병기로서의 특성에도 문제가 있음이 지적되었다. 주된 결함사유는 어뢰를 개조한 물건이라 후진이 불가능하단 점과, 선회반경이 너무 크고 잠항 심도가 최대 80m밖에 안 되어 함인 대형잠수함의 심도를 약화시킨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운반용으로 쓰일 대형 잠수함이 대부분 격침된 상황이라 이 문제는 끝까지 해결되지 못한 채였다. 그리고 탈출장치는 끝까지 완성되지 않았다. 결국 이런 상태로 1944년 8월 1일 해군 대신 [[요나이 미쓰마사]]가 결재하여 정식병기로 채용되었다. 명칭은 구로키 대위가 제안한 대로 가이텐(回天)이라 명명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