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가나(문자) (문단 편집) === 한국 유래설 === [[구결]]이 형태적으로 가나와 비슷하므로 구결이 가나의 원형이라는 견해도 있으며, 대체로 구결과 가나의 발음법 등을 분석하여 제시된 가설이다. 다만 이러한 가설은 상당량의 문서자료를 토대로 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넘어간 문서에 처음으로 구결이 쓰인 것으로 확인 된 것이 740년의 [[신라 대방광불화엄경]]인데, 원시적 형태의 가타카나는 이미 7세기 중반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6~7세기 중국에서도 한자의 일부를 따와 변형해 음을 옮겨적는 시도가 있었음이 확인되고 있다. 때문에 가타카나와 구결에 대해 비슷한 시기 표의문자인 한자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동아시아 각지의 사람들이 노력했고, 그 결과 한자의 일부를 따와 변형하는 방식을 활용하게 됐다는 문화적 공유지와 [[수렴 진화]]로 볼 여지도 있다.[* 다만 한국 유래설을 주장하는 경우 이러한 문화적 경향 자체가 중국에서 시작되어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건너갔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이게 아닐 경우 중국에서 일본으로 직접 건너간 것으로 보아야 하는데 당대 문화 전파 양상상 그게 어렵다는 입장인 것이다.] 보수적으로 보아 구결이 가나의 발전과정에서 영향을 준 것이라는 식의 추정도 가능하나, 이 역시 뒷받침할 고고학적 증거는 아직 없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NAmSeCq-v-E)]}}}|| || {{{#000,#fff 한국 유래설 영상}}} || 7세기와 8세기 초 [[아스카 시대]]의 초기 가나가 담기 문서들이 출토되기 이전 한 때 [[히로시마대학]] [[고바야시 요시노리]](小林芳規)[* [[https://ja.wikipedia.org/wiki/%E5%B0%8F%E6%9E%97%E8%8A%B3%E8%A6%8F|고바야시 요시노리(小林芳規) 명예교수]] ] 명예교수가 가타카나의 조성 원리와 기호가 통일 신라의 각필[[구결]]([[요미가나]])에서 먼저 사용되어 일본으로 전해졌을 수도 있다는 설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그는 1990년대부터 이런 주장을 제기하였으나 실증적 증거의 부족으로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이에 고바야시 교수는 추가 연구를 통해 [[헤이안 시대]]보다 앞선 740년경 일본에 전달된 [[불경]]([[신라 대방광불화엄경|대방광불화엄경]], 大方廣佛華嚴經)에서 발견된 360여개의 각필구결 문자가 가타카나의 조성 원리와 같은 것을 발견했다는 것을 해당 주장의 근거로 삼았었다. [[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130903/57405148/1|#1]]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15&aid=0002940893|#2]] 이외에도 가나의 기원을 [[만요슈]]에 사용된 '[[만요가나]]'로 보고 이 만요가나가 [[백제]]에서 유래하였다는 서구 학자의 견해가 있다.([[https://www.cambridge.org/core/journals/bulletin-of-the-school-of-oriental-and-african-studies/article/origin-of-manyogana/764E65CDB8FDE61DD2A263615A2962CC|#]]) 영문판 [[위키백과]]의 Japanese language 항목에도 만요가나의 백제 유래설에 대해 간략히 적혀 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당시 신라에서 각필을 만들어 쓰는 것을 보고 일본에서도 자국 언어에 맞게 비슷한 것을 만들어 쓰다가 공식 문자로까지 정착한 사례로 보고 있다. 먼저 일본에 한자로 음소문자식 표기(phonetic writing system)를 하는 법이 백제에서 전해진 이후, 그 한자의 음을 이용해 자국 언어를 표기하는 방법인 만요가나가 만들어졌고, 이후 신라에서 쓰이던 각필을 참고하여 자국 언어에 맞게 활용한 결과로 가나가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측한 것이다. 다만 이러한 가설들은 동아시아의 일반적인 문화 전파 양상이나 문자 조성 원리 등에 기댄 가설이라는 점엔 유의할 필요가 있다. 상당량의 문헌 기록들을 비교해가며 제시된 가설은 아니다. 예를 들어 [[신라 대방광불화엄경]]보다 빠른 아스카 시대의 문헌들이 출토되고 여기서 가나의 사용이 발견되었고, 백제에서 만요가나가 기원했다는 주장도 고고학적, 문헌학적 증거가 전무하고, 만요가나와 백제의 한자 표기 사이에도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확언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애초에 고대 한국과 일본의 문자 발전사 전파사를 구체적인 문자기록 유물을 충분히 확보해 재구성하는 것은 당대 기록물의 빈약함때문에 사실상 거의 불가능한 기획이기도 하다. 따라서 한국 유래설도 그러한 가능성이 있다는 영역의 가설이며, 이에 대한 반대 주장도 사실 근거가 충분하지는 않다.[* 완벽히 반박이 되려면 일본 문자의 발전사를 역추적해서 실증적으로 재구성해야하는데 가나에 대한 훈민정음 같은 책을 기대하기는 어려우므로 어려운 일이다.] 현재로선 그럴 가능성은 있지만 확실하진 않은 영역에 있는 셈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