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가가쿠 (문단 편집) == 역사 == 5세기 후반부터 [[한반도]]와 [[중국]]에서 음악과 춤이 유입되기 시작했으며, [[다자이후]]에 표류한 [[참파]]의 승려가 전해준 음악도 있다. 701년에 발표된 다이호 율령에 따라 음악을 관장하는 부서인 우타료(雅楽寮)가 설치된 것을 가가쿠의 시초로 본다. [[나라 시대]]에는 [[도다이지]]와 같은 큰 절에서 불교 의식이 있을 때 우타료의 악사들이 동원되어 대규모 연주를 했다는 기록들이 등장한다. [[헤이안 시대]]에는 우타료의 규모가 축소되었고, 다른 관리들이나 사원 및 신사에서 가가쿠를 담당하게 되었다. 의식과 상관 없는 자리에서 귀족들이 연주회를 여는 경우도 생겼으며, 이 때문에 가가쿠는 의식음악에서 궁정음악으로 성격이 변하게 됐다. 그러면서 사이바라(催馬楽, 최마악), 로에이(朗詠, 낭영), 이마요(今様, 금양)와 같은 오락적 성격의 우타이모노(謡物)가 성립되었다. 악곡들을 분류하고 토오가쿠과 코마가쿠의 작풍을 기반으로 한 신곡들을 작곡하였으며 악기 구성을 재편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일본의 아악인 가가쿠는 고유한 색깔을 가지게 되었다. 헤이안 시대 말에는 악곡을 담당하던 관리들 대신 하급 귀족들인 지게닌(地下人) 출신의 악사들이 대두하였다. [[무로마치 시대]] 말기 [[오닌의 난]] 때 [[교토시|교토]]가 전쟁터가 되면서 많은 악보들이 사라졌으며, 궁정음악을 담당하던 귀족들도 몰락하여 가가쿠는 맥이 끊어지다시피 했다. 전란이 끝난 후에 가가쿠를 복구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있었으며, 교토에서 떨어진 곳에 위치한 [[시텐노지]] 같은 사원은 전란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에 사원에 전해지던 음악이 복원된 가가쿠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나라가 안정된 [[에도 시대]]가 시작되면서 막부가 킨리사마 가쿠닌슈(禁裏様楽人衆)를 [[나라시|나라]], [[오사카시|오사카]], [[교토시|교토]]에 설치하여 가가쿠를 부흥시켰고, 이 세 곳의 음악 부서를 산포가쿠소(三方楽所, 삼방악소)라 불렀다. 이후 17세기에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츠]]는 [[에도]]를 중심으로 한 모미지야마 가쿠닌(紅葉山楽人)을 설치하였다. 가가쿠를 즐기는 [[다이묘]]들도 늘어서 가가쿠는 번성하였다. [[메이지 유신]] 이후 산포가쿠소와 모미지야마 가쿠닌의 악사들을 모아 아악국(雅楽局)을 설치, 현재는 궁내청식부직악부(宮内庁式部職楽部)에서 100여 곡 이상을 계승해오고 있다. 그러면서 이전의 소실된 주법을 부활시켰고, 때문에 곡의 리듬이 느려지고 길이가 길어지는 등의 변화를 보였다. 일부 연구자들은 이러한 변화가 혼란을 초래한다고도 하지만[* 이 문제에 관해서는 서양 [[클래식(음악)|클래식]] 문서인 [[시대연주]]를 참고], 음악이라는 것은 시대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라 정해진 답은 없다. 한편 음계 또한 미세하게 높아졌기 때문에 일부 악기 연주자들은 예상치 못한 피해를 보기도 했다. [[비와]] 항목 참고. 현재는 전통 음악가의 연주회 말고도, 신사에서 열리는 전통 결혼식에서도 에텐라쿠(越天楽)와 같은 곡을 들을 수 있다. 요즘은 악기를 구하기 힘들거나, 전공자 및 뒤를 이을 지도자를 구하기 힘든 것이 문제라고 한다. 원래는 대대로 가가쿠를 연주해 오던 가문의 자손들만이 연주가 가능했지만, 현재는 그렇게 했다가는 후계자가 너무 부족하기 때문에 외부에서도 후계자를 양성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가장 격이 높은 음악예술이라는 이유로 굉장히 경직된 방식으로 후진을 양성한다. 여자는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떤 이유에서건 연주가 불가능했고[* 가가쿠 연주자 가문들의 딸들조차 불가능했다. 따라서 남자 형제가 악기를 연주하는 것을 보고 어깨 너머로 배워 현대곡을 가가쿠 악기로 연주하는 가가쿠 가문 출신 여류 음악가들도 나오곤 했었다. 현재는 규제가 많이 완화되어 여성 가가쿠 연주자들도 나온다.], 일단 서양 음악을 전문가 수준으로 연주할 수 있게 된 다음에야 가가쿠를 가르친다. 그런데 보통은 서양 음악의 전문가가 되면 그냥 서양 음악을 연주한다는 것이 문제. 이 모든 난관을 다 겪고 가가쿠를 본격적으로 배우게 되어도, 처음 몇 년간은 특유의 멜로디와 박자에 익숙해지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 기간 동안 악기에는 손도 댈 수 없다. 이처럼 경직되고 전근대적인 방식으로 후진을 양성하니 후계자가 적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다만 위의 내용은 어디까지나 정식으로 국가 행사의 연주회에서 연주할 가가쿠를 배울 때에 한한 내용이고, 다도나 서예처럼 개인 교습을 받는다면 위와 같은 제한은 거의 없다. 또한 [[천리교]] 종단 산하 텐리대학 음대에서도 다른 전통 음악과 함께 가가쿠를 가르치는데, 이곳도 제한이 없기는 마찬가지. 다만 신흥종교 천리교의 종교행사를 위한 음악 교육이라 야매로 취급받는다.[* 가가쿠와는 다소 별개의 내용이지만, 천리교 종단에서 후원하는 행사 중 '천인 츠즈미 모임(千人鼓の会)'라는 것이 있는데, 말 그대로 아마추어 코츠즈미 연주자를 1000명 가르쳐서 [[2020 도쿄 올림픽]]의 개막식에서 연주회를 가진다는 기획이었다. 그러나 처음 천리교 쪽에서 접근했던 [[노가쿠]] 쪽에서는 아예 거절당했고, 현재는 나가우타의 코츠즈미 연주자 중 몇이 기획에 참여하고 있는데, 다른 연주자들에게 평판이 매우 나쁘다. 서민 예술인 [[가부키]]에서 출발한 서민 음악인 나가우타 쪽이 이럴진대 황족 음악인 가가쿠 쪽에서 천리교를 보는 시선은 이보다 더 나빴으면 나빴지 결코 곱지는 않을 것이다.] 덧붙여 현재 가가쿠를 정식 연주회에서 연주하는 연주자들은 대부분 [[궁내청]] 식부직 악부(宮内庁式部職楽部) 소속 국가공무원들이다. 물론 신사나 절에서 연주하는 연주자들, 천리교 행사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신자, 개인 교습으로 배우는 사람 등은 해당되지 않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