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iOS/버전 (문단 편집) === 상세 === [[2007년]] Macworld 컨퍼런스에서 1세대 [[iPhone]]과 함께 처음 공개되었다. 발표 당시에는 iPhone의 OS를 별도로 소개하지는 않았고 iPhone OS라는 이름도 없었다. 'iPhone은 [[OS X Tiger]]에 기반해 있다.'라고 말한 게 전부다. OS X에 기반해 있는 이유는 처음 iPhone 프로젝트가 시작될 때 [[Apple]] 내부에서는 두 팀이 대립하고 있었는데 한 팀은 기존의 [[iPod]]을 기반으로 iPhone을 만들어야 한다는 쪽이었고[* [[iPod]]의 아버지라 불리는 토니 파델이 이끄는 팀이었다. 그는 내부 경쟁에서 패배한 탓인지 [[2008년]] 회사를 떠났다.] 다른 한 팀은 [[Mac OS X]]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는 쪽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그 중 후자의 손을 들어주었는데 그 후자를 가장 강력하게 주장한 사람이 스캇 포스탈이다.[* 2012년 10월 29일 iOS 부문 수석 부사장에서 퇴직. 사유는 Apple 지도의 실패와 다른 부사장들(특히 [[조너선 아이브]])과의 불화가 겹쳤다.] 지금이야 iOS는 독립적인 프로젝트이지만 Dock이라든가 상태 막대 같은 인터페이스는 Mac OS X에서 따온 것이다.[* 포스탈이 나가고 나서 Mac OS X 팀과 iOS 팀은 [[크레이그 페더리기]]가 이끄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부서로 통합되었고 같이 관리되고 있다.] 이 시기에는 [[SDK]]가 공개되지 않아 서드 파티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거나 실행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과연 스마트폰 OS로 보아야 하는지 다소 모호했던 시기. 필요한 기능이 있는데 순정 애플리케이션으로는 부족하고 서드 파티 애플리케이션은 쓸 수가 없으니 대신 탈옥을 통해 필요한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 쓰기 시작했던 것. [[PlayStation Portable]]의 [[홈브루]]와 사정이 비슷했다. 스티브 잡스의 전기문에는 이 시기 [[App Store]]를 자신이 빼라고 해서 뺐다고 쓰여있다.[* 그는 서드파티 개발자들을 허용하는 것이 iPhone의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어지럽힐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이를 매우 경계하였다. [[존 카맥]]이 그에게 서드파티를 허용할 것을 제안했을 때도 대놓고 폭언으로 맞받아쳤을 정도. [[https://www.google.com/amp/s/kotaku.com/dooms-john-carmack-opens-up-about-working-with-steve-jo-1826026853/amp|#1]], [[https://www.theguardian.com/technology/appsblog/2011/oct/24/steve-jobs-apps-iphone|#2]]] 하지만 나중에 최초의 iPhone이 출시된 이후 [[App Store]]를 넣어도 된다고 했다고 한다. 후속작과 비교하면 멀티태스킹이나 Spotlight 등의 고급 기능은 하나도 없고 [[전화기]]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들만 지원하였으나 메모, 계산기, 전화, 문자, [[iTunes]] 등 기본 탑재 애플리케이션들은 대부분 이 때 처음 제작되어 iOS 6까지 큰 틀의 변화는 없이 쭉 이어져왔다. 그렇게 이후의 iOS의 기반이 되었다. 2007년 가을 경 Apple은 개발자용 iPhone OS [[SDK]]를 이듬해 공개할 것이라 밝혔고 2008년 3월 iPhone OS의 SDK 베타 버전이 공개되었다. iPhone OS라는 명칭이 처음으로 공식화된 것도 이 때의 일이다. SDK의 공개로 서드 파티 개발자들의 공식적인 참여 채널이 열림으로 인해 Apple 생태계가 본격적으로 구성되기 시작하였다. 2010년에 지원이 종료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