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e스포츠 (문단 편집) === 서구권 === 현대 e스포츠의 시작은 미국이었다. 최초의 프로게이머가 활약한 무대는 [[이드 소프트웨어]]의 FPS 게임 [[퀘이크(게임)|퀘이크]]. 1998년 당시 우승상금 $8500 규모의 Professional Gamers ' League Season Championships 정규 토너먼트가 진행되었고 그 외의 부수적인 토너먼트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최초의 [[프로게이머]]이자 스타 플레이어가 등장했는데 그가 바로 ''''트래시 퐁''''[* WASD 컨트롤의 창시자이다. 본명은 데니스 퐁(方鏞欽)]이다. 1997년 퀘이크 Red Annihilation에서 우승 ([[존 카멕]]의 페라리가 우승상품이었던 그 대회다.)하면서 최초의 프로게이머로 분류되었고 1998년 당시에 여러 해외 언론에서 대표적인 프로게이머로 소개되었고 1998년 대회 및 각종 활동에서 벌어들인 수익이 100,000$에 달하여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을 알렸다. (당시 한국의 게임잡지에서도 소개된 바가 있으며 이후 [[기네스북]]에 최초의 프로게이머로 등재되었다.) 그리고 이 흐름은 타 게임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지면서 프로게이머라는 흐름을 계속 이어나갔다. 스타크래프트에서도 최초의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임리그는 미국에서 열렸다. 한국 최초의 프로게이머인 신주영조차 미국의 PGL에서 활동하면서 국내 최초의 프로게이머로 인정받았다. 여태까지의 프로게임리그의 경우 특유의 짧고 여러 번 자주 열리는 투어 개념이 주류였고 이 같은 초기 e스포츠의 상황은 한국의 e스포츠가 시작된 스타 크래프트 대회도 같은 방식으로 열렸다. 그러나 1999년 후반부에 한국은 일대 변혁을 맞는다. 방송이라는 매체에 접목하면서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독자적인 성장을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초창기 한국의 e스포츠 방송이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은 만큼 서양도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결정적으로 방송의 경우 한 대회를 진행하는 기간에 길다는 점에서 바로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되기는 어려웠다. 이 때문에 서양의 게이머들은 투어 개념을 계속 계승하는 방식을 취해왔다. 이후 시간이 좀 더 흘러서야 매체 발달로 대회가 접근성이 높아지자 카운터 스트라이크, 리그 오브 레전드, 도타 2 등의 게임들이 발전하거나 지속적으로 등장하면서 야구 메이저리그와 같은 프로리그 형태가 형성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