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Yoshiki (문단 편집) === 초등학교 시절 === [[1972년]] [[4월]], 요시키는 다테야먀 사립 소학교에 입학한다. 여름 방학에는 친구들과 함께 바다에서 낚시를 하거나 인근 덤불에 있는 딱정벌레와 사슴벌레를 잡으러 다녔다. 하지만 여전히 건강은 좋지 못해서 갑자기 발작이 일어나면 다시 조용히 누워있어야 했다. 심한 경우에는 학교를 쉬고 4개월 정도를 병원에서 지낸 적도 있다. 뿐만 아니라 교통사고도 두 번이나 당했다. 첫 번째는 정면에서 자동차에 치이고, 두 번째는 오토바이에 걸려 넘어진 것이다. 두 번 모두 몸과 머리를 다쳐 그 충격으로 천식을 일으켜 병원에 입원했다. 그런 요시키를 괴롭히던 것은 천식과 교통사고 뿐만이 아니었다. 심각한 음식 [[알레르기]]도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할머니가 [[하와이]] 여행 선물로 사온 마카다미아 넛트 초콜릿 5 박스를 한꺼번에 먹어 버려 급성 알레르기를 일으켜 의식 불명에 빠지게 되었고, 쓰러져 있던 아들을 어머니가 발견해 구급차로 병원에 이송해 간신히 목숨을 구한 것이다. 이후 요시키는 초콜릿에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요시키는 의사와 간호사가 걱정할 만큼 자주 입원하며 다테야마 종합병원에서 지내는 시간이 매우 많아졌다. 부모님은 교대로 요시키를 돌보러 병원에 와줬고 발작할 때마다 간호해줬다. 숨쉬기가 힘들 때는 누워있는 것조차 할 수 없었고, 인후통과 가슴의 답답함에 정신이 몽롱해지면 등을 구부리고 가만히 고통이 지나가기 만을 기다려야 했다. 그렇게 침대에 갇힌 채 좋아하는 피아노 연습도 할 수 없게 되자, 피아노 연주하는 모습을 상상하고 떠올리면서 덮쳐 오는 발작의 고통을 잊으려 했다. >"난 저 아이가 이토록 오래 살 거라곤 생각하지도 못했어요. 그만큼 약한 아이였어요." > >- 「[[위 아 엑스|WE ARE X]]」 中 요시키 어머니의 내레이션 - > 점점 기력을 잃어가는 아들에게 희망을 준 것은 아버지가 병실에 올 때 가져오는 선물이었다. 아버지는 몇 권의 책을 가지고 요시키의 병실로 찾아왔다. 책들의 종류는 다양했고, 아이들이 읽기 쉽게 쓰인 위인전도 있었다. 그 중에서도 요시키는 [[베토벤]]의 책을 좋아했다. 병으로 청력을 잃으면서도 불굴의 투지로 작곡을 해나간 [[베토벤]]은 요시키에게 영웅이었다. 요시키는 난청과 싸우는 독일의 위대한 작곡가를 매일 학교에 다닐수도 없고 친구도 없는 자신과 겹쳐서 생각하게 되었다. 다행히 요시키는 최소한의 출석 일수로 겨우 3학년으로 진급할 수 있었다. 성적이 매우 좋아 공부의 지장이 없어 가능한 일이였다. 아버지가 통신 판매로 구입한 클래식 EP판 세트가 집에 있어서 유명한 [[교향곡]]은 거의 듣고 있었다. 그러다가 8살 때 요시키는 난생 처음 자신의 용돈으로 LP판을 직접 사게 된다. 매장을 둘러보며 클래식 코너에 다가가서 요시키는 빽빽하게 진열된 LP판의 재킷을 한 장씩 손가락으로 꺼내 제목과 커버 사진을 확인했다. 마침내 골라낸 한 장에는, A면에는 [[베토벤]]의 교향곡 5번 C단조 "[[교향곡 제5번(베토벤)|운명]]", B면에는 [[슈베르트]]의 교향곡 8번 B마이너 단조 "[[교향곡 제8번(슈베르트)|미완성]]"이 수록되어 있었다. 요시키는 손에 넣은 그 레코드를 가슴에 안고 집에 돌아와서 아버지의 스테레오의 [[턴테이블]]에 올려 몇 번이나 듣고 또 들었다. 이후 요시키가 매 달 구입하는 레코드는 요시키의 보물이 되었다. 4학년으로 진급하면서 1학년 때부터 쉬는 것이 당연했던 체육 시간에도 참가했다. 의사의 만류에도 전교 [[마라톤]] 대회에도 출전하게 되었다. 뛰면서 호흡이 가빠지고 배도 아팠지만 뛰는 속도는 나날이 더 빨라지고 있었다. 요시키의 달리는 모습을 거의 본적이 없는 동급생들은 그의 질주에 놀라워했다. 고작 몇 킬로였지만, 첫 마라톤 대회에서 학년 상위 입상을 하면서 요시키는 큰 자신감을 얻는다. 요시키는 몸이 조금씩 나아지면서 활동적이게 되었다, 키는 여전히 반에서 가장 작은 편이였지만 어렸을 적부터 여자로 많이 오해받는 외모는 시원스러워지고 행동도 기민해졌다. 공부에도 재미를 느끼던 요시키는 보통의 학원처럼 산수를 가르치는 학원을 병행하며 습자, 영어 회화 교실까지 다녔다. 바쁘게 공부하고 또 여기저기 학원에서 친구들을 만나면서 요시키는 밝아졌다. 요시키의 피아노 레슨은 빠른 속도로 늘어갔고 레슨을 하는 선생님도 요시키의 연주 수준이 오를 때마다 바뀌었다. 요시키는 피아노뿐 아니라 새로운 악기에도 빠졌다. 5학년이 된 요시키는 기악 클럽에 소속되며 [[트럼펫]]을 불게 되었다. 기악 클럽 방학을 이용하여 관악기 연주곡의 연습이 한창이었고, 트럼펫을 담당한 요시키도 클럽 활동에 매일 참석했다. >충격의 날은 갑자기 찾아왔다. 1976년 8월 여름 아침, 항상 똑같이 기악 클럽 연습을 위해 향한 나는 오후에 집으로 돌아오니 이상한 분위기를 느꼈다. 뭔가 무서운 것이 기다리고 있음을 감지하고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집에는 많은 친척들이 모여 있었다. 거실에는 이불이 깔려 있었고, 그 위에는 아버지가 누워 있었다. 엄마와 남동생 코우키, 그리고 친척들의 얼굴이 일제히 귀가한 나를 향했다. 엄마 옆에서 조용히 앉아 있는 여섯 살의 코우키를 제외하고 모두 울고 있었다.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친척 한 분이 "아버지는 병이야." 라고 말을 건넸다. > >"지쳐서 주무시는 거야. 지금은 일어나지 못하실 거야." > >그 말을 들은 나는 잠시 잠자코 있다가 갑자기 가슴 속에서 불 같은 감정이 솟구쳐 목구멍으로 쏟아져 나오는 듯한 것을 느꼈다. 그리고 크게 눈을 뜬 나의 전신에 불규칙한 떨림이 전해졌다. 고함 소리가 울음으로 바뀌면서 나는 그 자리에 쓰러졌다. > >"왜 그런 거짓말을 하는 거예요? 아빠는 병에 걸린 게 아니잖아요! 죽었잖아! 그러니까 저렇게 누워있는 거잖아!" > >나는 통곡했다. 아이처럼 울부짖고 날뛰는 나를 아무도 달래지 못하고 마침내 억지로 몸을 잡아 눌러야 했다. > >- 요시키의 자서전 제2장 「갑작스러운 죽음」 中 - > 요시키가 10살일 때, 아버지가 사업난에 절망해 34세의 젊은 나이로 차에 배기가스를 틀어 놓고 [[자살]]하는 일이 발생했다. 다만 어렸던 요시키는 처음에는 자살이 아니라 심장마비로 알고 있었다. 요시키는 중학생이 되어서야 친척집에 놀러 갔다가 우연히 자살이라는 사실을 들어 버렸고, 충격을 크게 받는다. ||[[파일:yoshiki_and_his_father.png]]|| || 요시키와 아버지가 같이 찍었던 사진 || 그래도 요시키는 평소대로 학교에 다니며 기악 클럽에서 트럼펫을 불면서 학원이나 교습소를 다녔다. 집에 돌아와서 좋아하는 음악을 듣기도 하고, 친구와 함께 놀러 가기도 했다.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온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마음 속에 울리는 슬픔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았다. 요시키는 보통의 초등학생 얼굴 뒤에 조숙한 어른의 마음을 숨기고 있었다. 천식의 발작보다 훨씬 심한 통증을 가슴 속으로 느끼면서 요시키 자신도 모르게 산뜻한 소년의 얼굴 위로 가끔씩 날카로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아버지를 잃은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가족은 애써 아버지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으려 했다. 아버지의 것을 말하면 슬픔이 흘러 가슴에 메울 수 없는 큰 구멍이 뚫리는 것 같음을 어머니도 형제들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경험은 요시키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큰 상처를 주고 요시키의 음악에 영원한 동기가 된다. 남편의 자살로 어려워진 사업을 떠맡게 된 요시키의 어머니는 어린 요시키를 키우며 기울어진 가세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많은 고생을 한다. 요시키는 친한 친구들 앞에서도 쓸쓸한 표정을 보이지 않았다. 친구들과 인근 해안에서 낚시를 하거나 바다에서 수영도 하고 피아노나 트럼펫 연습 하는 것도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도 진심으로 즐겼다. 집에 있는 동안은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보내고 위대한 작곡가의 초상화를 바라보며 악보를 암기하고 있었다. 동급생이 가져오는 유행하는 일본의 팝과 해외 팝 음악도 거의 듣지 않았다. 진지한 클래식의 선율만이 요시키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그런 요시키가 11세 생일이 다가올 무렵 관심의 대상을 바꾸게 된다. 단골 레코드점에서 화려한 EP판의 재킷을 발견한 것이다. "다들 왜 이런 모양을 하고 있는 거지?"라고 생각하며 요시키가 바라보고 있던 레코드의 밴드 이름은 "[[KISS(밴드)|KISS]]"였다. 4명의 남자들이 얼굴에 흑백의 화장을 하고 검고 기묘한 의상을 입고 있었고, 그 화려한 차림의 록 밴드에 호기심과 자극을 받은 요시키는 레코드를 구입하고 급히 집으로 돌아가 턴 테이블에 올렸다. 그러자 강렬한 기타와 드럼 소리가 진동되어 요시키의 방에 울렸다. 마치 콸콸콸 물결치는 맥이 그대로 음악이 되어 빠져나가는 듯했다. 요시키는 스테레오의 볼륨을 더욱 높였다. 숨을 삼키면서 크게 울리는 소리와 박력 있는 영어 노래에 귀를 기울인 요시키는 폭음 속에서 온몸이 뜨거운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클래식 이외에도 마음을 빼앗길 수 있는 음악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요시키는 이튿날부터 한눈도 팔지 않고 KISS의 레코드만 반복해 들었다. 지금까지 접한 적이 없는 [[록]]이란 장르는 초등학교 5학년의 소년을 아주 단번에 사로잡고 말았던 것이다. [[록]] 음악에 심취한 요시키는 어머니에게 생일 때 [[드럼]] 세트를 사달라고 한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흔쾌히 드럼을 사주었다. 요시키가 손에 넣은 드럼 세트는 스네어 드럼과 베이스 드럼이 하나, 탐탐이 둘, 플로어탐이 하나, 심벌 2장의 단순한 셋트였다. 2층 자기 방에 드럼을 세팅한 요시키는 즉시 연습을 시작했다. 독학으로 드럼을 두드리는 요시키는 근처 악기점에서 구매한 드럼 교본으로 연주하는 방법의 기본을 배우고 레코드에서 들려오는 드럼 소리를 기억해 비트를 만들어 나갔다. 악보를 읽고 리듬까지 가늠할 수 있던 요시키는 기본적인 테크닉은 금방 익힐 수 있었다. 스틱의 컨트롤이나 베이스 드럼, 4비트, 8비트, 16비트처럼 기초부터 셔플, 슬로우 록, 6/8박자나 3/4박자 등 고급 기술까지 차례로 마스터 해나갔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드럼을 두드리던 요시키는 계속해서 KISS의 LP 레코드를 구매해서 앨범에 실린 모든 곡의 드럼을 연습하여 순식간에 실력을 쌓아갔다. 1층 포목점에 손님이 와도 신경 쓰지 않고 연주했다. [[1977년]] [[3월]], 6학년으로 진급하기 전인 봄 방학을 보내던 요시키는 무심코 보던 신문에서 "KISS 일본" 이라는 콘서트의 광고가 실린 것을 보고 흥분을 누를 수 없었다. 요시키는 환호를 지르며 어머니에게 꼭 가고 싶다고 하였다. 어머니는 열성적인 아들의 감정을 알고 [[일본 무도관]]에서 열리는 콘서트를 같이 가기로 약속했다. 표 예약을 위해 접수하는 곳에 바로 전화했지만 이미 매진되어 콘서트 당일 티켓을 구해야만 했다. [[1977년]] [[4월]] KISS의 콘서트의 날 당일권을 손에 넣어야 했던 요시키, 엄마, 그리고 남동생 코우키는 다테야마의 집을 나와 구단 시타에 있는 무도관으로 향했다. 기모노 옷 차림의 어머니는 콘서트 도중 배가 고프면 안 된다고 하여 도시락에 초밥 3개를 챙겼다. 무도관에 도착하자 당일권 판매 창구에는 끝없는 행렬이 이어졌다. 3명은 그 줄을 서면서 조용히 티켓이 판매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KISS의 팬들이 줄지어진 그 속에서 기모노의 여성과 11세와 6세의 남자아이까지 총 3명의 모자 일행을 무척이나 신기한 눈으로 쳐다봤다. 그렇게 요시키는 자신이 선망하던 KISS의 공연을 보게 되었다. ||[[파일:kiss-alive-at-budokan-1977.jpg|width=450]]|| || 요시키가 그날 보았던 공연 || 요시키는 KISS를 알게 된 이후부터 초등학교 시절 내내 [[KISS(밴드)|KISS]]에 심취해 있었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요시키를 공감하는 친구가 아무도 없었다. 요시키가 신나게 KISS와 록 음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도 그 누구도 요시키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마침 소꿉친구였던 [[Toshl|토시]] 또한 KISS에 매혹되어 이들과 같이 말할 상대를 찾고 있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 같은 초등학교 안에서 로큰롤과 KISS에 빠진 아이는 요시키와 토시밖에 없었다. 반이 가까웠던 두 사람은 자주 만나며 KISS와 그들의 곡에 대해서 열심히 수다를 떨었다. 요시키는 드럼을 두드리고 있음을, 토시는 기타를 치고 있음을 서로 진지하게 얘기하며, "언젠가 함께 밴드를 하자"고 두 사람은 말했다. 혼자서 드럼을 두드리는 것에 질렸던 요시키는 친한 동료 3명과 함께 밴드를 만들기로 계획했다. 요시키가 제일 먼저 지명한 멤버는 [[Toshl|토시]]였다. 토시는 당연히 요시키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또한 이미 토시는 기타 연주도 가능했다. 다른 1명은 요시키가 급하게 구해서 황급히 기타와 베이스를 구입하고 각각 처음부터 연습을 시작했다. 록을 들으며 받은 충격의 크기를 나타내는 이름을 밴드에 붙이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던 요시키는 자신이 리더가 된 그 밴드에 "DYNAMITE"로 이름을 붙였다. 멤버는 드럼과 보컬을 요시키가 담당하고 토시가 기타를, 또 다른 사람이 베이스를 담당했다. Kiss와는 전혀 닮지 않았지만 밴드를 성립시키려면 부끄러워할 틈이 없었다. 다테야마에서 탄생한 이 초등학생 록 밴드는 근처의 악기점 안에 있는 1시간에 300엔의 대여스튜디오 건물에서 연습을 늘려갔다. ||[[파일:밴드_다이너마이트.jpg]]|| || 초등시절 결성한 밴드 다이너마이트의 모습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