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Yoshiki (문단 편집) == 여담 == * X JAPAN의 곡에서 가끔 등장하는 작사가 白鳥 瞳(시라토리 히토미), 白鳥 龍(시라토리 류), 橘 朋実(타치바나 토모미), 五十嵐 美由姫(이가라시 미유키)의 정체는 전부 요시키가 작사를 할 때 쓰는 가명이다. * [[할리우드]] 영화의 음악 감독으로도 자주 활동하는데 대표적으로 xXx, [[쏘우 4|SAW]], Spycies가 있다. * X 활동 초기에는 멤버들과는 달리 [[신비주의]] 컨셉의 일환으로 X의 상징이자 X 그 자체라는 식으로 프로필란의 생년월일이나 [[혈액형]] 등을 전부 X로 표기했었으며 본명 역시도 밝히지 않았었다. 그래서 재일 아니냐는 [[루머]]가 나오기도 했다.[* 토시가 방송에서 실수로 그의 본명을 말해버린 것이 그의 이름이 알려지게 된 계기였다고 한다. 하지만 인디즈 극 초기에는 싱글 I'll kill you 뒷면에서도 쓰여져 있듯이 본명으로 표기했다.] 국적이 북한이라는 루머가 퍼지기도 했으나 2009년에 [[자서전]]을 통해 자신의 출생 및 성장 과정부터 X에 대한 각종 사연과 비화들을 모두 공개하면서 항간에 떠돌던 루머가 사실이 아님을 밝혔다. * 인디즈 시기에는 음악성 외에 [[싸움꾼]]으로 유명했던 듯 하다. X를 메이저로 스카웃한 CBS SONY의 프로듀서 츠다 나오시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일본에서도 요시키와 같이 금발로 염색한 장발은 흔치 않았고, 워낙 튀는 외모 탓에 거리를 걷다가 불량배들에게 조롱을 당하거나 시비를 걸리기 일쑤였다고 한다. 요시키 역시 이에 물러서는 일 없이 부딪히는 족족 싸운 통에 싸움꾼으로 알려져 버렸다고. CBS SONY와 계약 당시 츠다가 당부한 약속 중 하나는 일반인과 시비가 붙어도 싸우지 않고 참기. [[https://youtu.be/wVn1sMEtduE|데뷔 초 싸움에 관한 소문에 대한 요시키와 히데의 토크]] 히데가 진상관객한테 기타를 뺏길뻔한적이 있었는데. 이걸 요시키가 한대 후려치려는 모션을 취하면서 제지되기도 했다. * [[쿠도 시즈카]]와 연인 관계였다. 1994년 3월 10일, [[쿠도 시즈카]]는 공백기를 틈타 미국 헐리우드에 있는 요시키의 저택에 놀러갔고, 두 사람은 레스토랑에서 상당한 양의 알코올을 섭취하고 새벽 1시가 넘은 시간에 만취 상태로 요시키가 운전하는 페라리에 동승했다. 로스 앤젤레스의 선셋대로를 주행 중에 요시키는 음주운전 과 속도위반으로 현행범 체포되었고, 이 사건이 일본에 알려지면서 두 사람의 교제도 덩달아 알려졌다. 나중에 요시키가 자서전에서 쿠도 시즈카의 첫 인상을 두고 티비나 사진에서보다 늙어 보였다(...)고 한 통에 안 좋게 헤어진 걸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냥 서로서로 좋게 쿨하게 헤어졌으며 쿠도 시즈카가 결혼 한 후에도 2002년까지 요시키의 레이블인 엑스터시 레코드에 소속돼 있는 등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 2002년 서울 소년원에서 재능 기부 차 위문 공연을 가진 사진이 [[http://pds25.cafe.hanmail.net/download.php?location=/24/data/440/a7/440a7448e56e2&type=®dt=&dncnt=N|요시키의 굴욕]]이라는 짤방으로 돌아다닌 적이 있었다(…)[* 초라해 보이는 사진 속의 모습과는 달리 전 날 그가 입국하던 당시의 공항에서는 그를 보러 온 팬들로 인해 온통 난리가 났었으며 이 당시의 상황은 공식 발매된 LAST LIVE DVD에도 수록되었다.] 필름기그의 개최로 방한하게 된 김에 친분이 있던 박삼중 스님의 제의로 일종의 재능기부 형식으로 국내 가수와 합동 공연을 펼친 것이라고 한다. * 2009년 내한 공연 전에 치러진 홍콩 공연을 마치고 섹션TV와의 현지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좋아하는 가수는 누구냐는 질문에 [[서태지]]라고 답하며 훌륭한 뮤지션이고 기회가 된다면 같이 작업해보고 싶다고 말했다.[[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09/01/23/2009012300041.html|#]] * 2011년 엑스재팬으로 내한했을 당시 팬서비스로 여자 [[한복]]을 입으며 팬들에게 충공깽을 안겨주기도 했다.[[http://mblogthumb1.phinf.naver.net/20151017_272/dutd34_1445090592424sabVs_JPEG/5e74c21d3043293c6b886a6c26684a16.jpg?type=w2|#]] * 한국에서 90년대~00년대 초반까지 지나치게 과대평가 됐던 것에 대한 반발 심리 때문인지 '''00년대 중후반~10년대 초반까지 한국 인터넷 커뮤니티 일각에서 엄청나게 폄훼되고 각종 비방과 음해에 시달린 인물'''이기도 하다. 요시키의 음악적 역량에 있어선 여러 논란이 많지만 적어도 한국에 매우 우호적인 친한파인 건 분명하고, 전성기 때 뛰어난 음악 제작 실력으로 한국 음악가들에게 엄청난 음악적 영감[* 분명 엑스재팬의 음악적 전성기는 요시키와 타이지의 역관계가 균형을 이룰 때였지만 한국 팬들과 뮤지션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뭐라해도 요시키표 록 발라드이다. 일본 본토에선 이런저런 논란을 빚었던 메이저 3집 앨범 가 과거 한국에선 가장 인기 있던 앨범이었다. 사실 일본에서도 대중적으로는 요시키표 록 발라드가 압도적으로 더 인지도가 높다. 예를 하나 들자면, X japan의 열성팬으로 유명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같은 경우를 보더라도 요시키표 록발라드만 선호하지 정작 록 팬덤 사이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X japan의 메탈 곡들은 아예 들어본 적조차 없다고 한 바 있다. 이렇듯 일본에서 메탈이라는 장르는 어디까지나 부분 문화에 가깝고 대중적으로 인기몰이를 했던 메탈 밴드는 X japan이 유일무이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을 불어넣어 한국 대중 음악의 수준을 상향 시키는데 일조[* 이런 평가가 불편할 사람도 있겠지만 90년대까지, 아니 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국 가요계는 일본 음악을 별다른 죄의식도 없이 마구잡이로 표절하는 관행이 성행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한국 음악가들에게 가장 많은 표절을 당한 게 요시키와 X JAPAN이라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표절 수준까진 아니더라도 암암리에 X JAPAN의 반주나 모습, 양식을 참고, 모방하는 제작자와 음악가가 많았다는 건 한국 대중음악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치부다.]하는 등 지금까지 한국에 꾸준히 득을 줬으면 줬지 절대 해를 끼친 적 없는 요시키 입장에선 억울하고 어이없는 노릇일 듯... * 가령 <요시키의 만행>이라는 짤이 한동안 인터넷에서 떠돌아 다닌 적이 있는데,[[https://www.fmkorea.com/254148652|#]] 이 짤에 담겨 있는 콘텐츠는 일부 사실[* 구체적으로 지적하자면 그 짤에 담긴 17가지 정보 가운데 14번 타이지 해고 사건, 15번 글레이 부당 계약,(이것도 사실 어느정도 왜곡이 있는데 글레이가 요시키의 레이블에서 데뷔한 것은 맞지만 나중에 다른 소속사로 떠난 후 부당계약 문제가 생긴 것이고 이때는 이미 레이블이 요시키의 손에서는 떠나 있는 상태였다. 게다가 현재도 글레이와 요시키는 매우 친한 것을 알 수 있다.) 17번 호테이 토모야스와의 트러블 정도가 어느 정도 사실에 가까운 내용이고 나머지는 전부 다 잘못된 정보이거나 확인되지 않은, 그리고 확인할 수도 없는 루머와 괴담에 불과하다. 그리고 사실에 가까운 정보마저도 과장과 악의적인 왜곡이 많은데 타이지 해고 같은 경우는 요시키 잘못이 더 크긴 하지만 타이지 역시 분명 문제가 있었고 요시키는 지금도 글레이와 좋은 관계를 유지 중이다.]이 있긴 하지만 주로 일본의 타블로이드 연에계 잡지나 니찬넬 같은 일본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등지에서 요시키와 엑스재팬을 싫어하는 일본 전통파 록 팬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날조와 왜곡과 과장이 극대화된 에피소드들과 가십들로 점철돼 있다. 이후 2022년, 요시키의 일본에 돌아왔다는 트윗에 호테이가 [[https://twitter.com/YoshikiOfficial/status/1556518793999892480|Welcome Home]]이라는 리플라이를 달았고 요시키도 거기에 '호테이상, 감사합니다!'라고 답장하는 등 현재는 시간이 많이 흐르며 갈등의 응어리가 풀린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이를 본 팬들도 답글에서 기뻐하고 있다. * 소위 <요시키의 만행>의 출처는 지금은 사멸화된 '다음 카페 <일본록디비보기>'[[http://cafe.daum.net/jrockdivi/|#]]인데 이 카페 운영자는 다년 간의 인디 뮤지션 경력이 있는 재일교포 3세로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엑스재팬의 인기가 너무 높아서 놀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일본 굴지의 록 뮤지션들(자신이 선호하거나 존경하는)은 인지도도 거의 없고 과소평가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일본 현지의 엑스재팬 관련 정보를 한국인들에게 알린 것으로 유명했다. 예를 들자면 한동안 한국에서 일본 최고의 밴드로 알려졌던 엑스재팬이 사실은 대중적인 인기도나 상업적인 성공이라는 측면에서 비즈나 미스치루 등 일본의 진짜 국민 밴드들에 비하면 한참 뒤떨어진다든지, 자발적인 탈퇴로 알려졌던 타이지가 사실은 요시키에게 해고된 사실이라든지, 엑스재팬이 해체된 결정적 계기가 보컬 토시의 사이비 종교 때문이라든지 하는, 지금이야 다 알려졌지만 2000년대 초중반경에는 한국에 그리 알려지지 않았던 정보를 토대로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엑스재팬의 위상을 한국 네티즌들에게 알려줬다. 또한 라우드니스나 Anthem, VOW WOW 등 일본의 레전드 메탈 밴드들을 비롯해 비즈나 미스터 칠드런 같은 주류 밴드들은 물론이고 인디에서 활동하는 비주류 밴드들까지 망라해 일본의 록 문화에 대한 많은 정보를 전파하여 비주얼계를 제외하면 일본 록 팬들이 별로 없던 한국에서 일본 록 팬덤이 형성되는 데 분명 엄청난 기여를 했다. 당장 이 곳 [[나무위키]]에 등재된 일본 록 가수들에 대한 콘텐츠만 보더라도 <일본 록 디비보기> 운영자가 풀었던 썰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에 반발한 한국의 엑스재팬, 비주얼 록 팬들과 계속 대립각을 세운 것에 대한 반발 심리 때문인지 일본에서 오랫동안 인디 뮤지션으로 활동했던 경력을 악용해 가면 갈수록 확인할 수 없는 낭설이나 괴담, 날조된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유포하는 경향을 보였다. 위에서 언급된 <요시키의 만행>이라는 짤만 보더라도 요시키가 [[본 조비]]한테 폭행당했다는 내용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 만약 해당 내용이 록 세계 내부 비화가 아닌 대중에게 공개된 내용이라면 세계적으로 난리가 날만한 해외토픽급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해당 내용은 어디에서도 보도가 된 적이 없다. 한국으로 치자면 어느 날 갑자기 아무런 근거도 없이 온라인상에 퍼진 '[[마르코(배우)|마르코]]와 [[배정남]]이 난투극을 벌였다' 수준의 공신력 제로의 헛소문을 마치 사실인 것마냥 국내 네티즌들에게 소개한 격이다. 또한 요시키가 호테이와 트러블이 있었다는 건 사실이지만 요시키가 호테이에게 맞았다는 썰 역시 아무런 근거가 없다. 한국으로 치자면 디시발 썰에 불과한 내용을 일부 사실과 뒤섞어서 한국의 엑스재팬과 비주얼 록 팬들을 조롱하는데 악용한 측면이 있었다.[* Anthem의 보컬 [[사카모토 에이조]]가 [[애니메탈]]을 결성하게 되는 계기에 관해서는, 소니뮤직의 중역이 택시 기사를 하던 사카모토 에이조의 택시에 우연히 탑승했는데 연말이 쓸쓸하여 함께 가라오케에 가자는 제의를 하게 되었고 택시 기사인 그 역시 쓸쓸한 연말을 보내는 자신의 모습을 한탄하며 가라오케를 갔는데 애니메이션 노래를 엄청난 샤우팅으로 부르는 그의 모습에 경악해서 그를 애니메탈 프로젝트의 보컬로 낙점했다고 한다. 이것은 한때 국내 일본 록 팬들 사이에서 마치 정설인 것마냥 알려진 내용인데 바로 이 소문의 출처가 바로 <일본록디비보기>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일본 웹에서 출처는 커녕 그럴듯한 이야기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아무런 근거가 없는 낭설이다. 지금과 같이 해외 정보를 해당 언어로 찾아보기 힘들었던 시대에 아무런 출처가 없는 [[카더라 통신]]이 일본 인디 뮤지션 출신의 재일교포가 소개하는 현지 정보라는 필터를 거쳐 마치 사실인 것처럼 전파되었고 엑스재팬 및 요시키에 관해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을 가능성은 어렵지 않게 짐작해볼 수 있다.] * 다만 저런 루머와 괴담들이 2000년대 중반 정도에 일본 현지 록 팬들 사이에서 횡행했을 만큼 '''한때 요시키와 엑스재팬에 대한 이미지가 최악이었던 것은 분명 사실'''[* 아베 슈지의 만화 [[엘리트 건달]] 28권 <사부로, 노래합니다! 헬로우 로리타!> 편에서 신랄하게 조롱당한다. 작중 요시키는 '토시키'라는 이름으로 나오는데 어원은 토시와 요시키를 합친 것으로 보인다. B급 개그 만화 수준인터라 스토리가 어딘지 조잡하고 엉성한 게 특징이라면 특징인데 이 에피소드 만큼은 요시키와 [[비주얼계]]를 풍자하며 상당한 수준의 스토리 구성 능력과 날카로운 비판의식을 보여준다. [[비주얼계]]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00년대 중반 비주얼계 암흑기 시절 비주얼계가 직면한 문제점(과도한 비주얼 지향에 따른 실력 저하, 음악성을 도외시한 과도한 선정성, 기성 밴드들과 비교해 현저히 잦은 멤버들 간의 불화와 이에 따른 이합집산, 대중적 지지도의 몰락과 컬트화 등등)을 적확히 파악하고 비판하고 있다. 다만 진지하게 지적하자면 작가는 요시키(토시키)를 무슨 탐미주의의 화신처럼 묘사하고 있는데, 요시키와 엑스재팬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다 알겠지만 요시키의 음악적 성향과 콘셉트는 작가가 생각하는 탐미주의와 별 관계 없다. 그런 기믹은 [[Malice Mizer]] 계열 비주얼 밴드들이 잘 활용했지 요시키와 엑스재팬이 내세웠던 음악과 퍼포먼스와는 거리가 멀다. 요시키가 비주얼 록의 대부라는 이유만으로 비주얼계에 대한 상투적인 이미지를 뒤집어씌운 셈. 이 부분만 빼놓곤 다 타당한 지적이다. 작중에서 [[BOØWY]] 노래가 종종 언급되는 것도 그렇고 아무래도 작가가 록 음악 팬인 듯싶다. 00년대 중반 비주얼계의 암흑기 시절 일본 현지에서 요시키와 [[비주얼계]]에 갖던 극히 부정적인 인식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 에피소드다.[[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kalvein&logNo=70120070130&proxyReferer=&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kr%2F|#]][[http://ftrexgfku.blogspot.com/2016/08/28_25.html|#]]]이었다. 그리고 이는 어디까지나 요시키 본인의 불성실한 활동력과 경솔한 언행에 따른 것으로 전적으로 본인이 자초한 것이기에 요시키 본인이 상당 부분 감수해야 될 오명이다. 한국의 연예계에 비유하자면 원래 안티가 별로 없던 [[원빈]] 같은 경우만 보더라도 작품 활동이 전무한 채로 계속 공백기가 길어지다보니 근래 들어선 안티가 꽤 형성되고 일부 헛소문까지 퍼지게 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하물며 맨날 복귀한다는 둥 공연할거라는 둥 신곡&신작 음반 발매할 거라는 둥 '''계속 뻥카만 날리면서 팬들을 기만하고 아무런 활동도 안 하고 극히 무책임한 자세로 일관한 요시키'''인데, 일본 내에서 여론이 악화되지 않는다면 외려 그게 더 이상할 일일 것이다. 계속해서 퇴보하는 음악성 문제도 있겠지만 사실 일반 대중의 취향이 록 매니아들 수준으로 까다로운 건 아니다. 실제로 음반 시장에서 상업적인 성공을 좌우하는 건 음악적 퀄리티도 퀄리티지만 매스 미디어 출연 같은 해당 뮤지션의 적극적인 대외 활동 같은 게 더 핵심적으로 작용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 메탈 밴드로서의 면모를 상실한 [[X JAPAN]] 말기 같은 경우만 보더라도 록 평론가나 메탈 팬덤 사이에서 평가는 안 좋았을지 몰라도 대중적 지지도에 있어선 결코 하락세라고 보기 힘들었다. 당시 싱글 앨범으로 발매된 곡들만 보더라도 외려 음악적 퀄리티에 있어선 절정에 달했던 시기보다 더 많이 팔리면 팔렸지 결코 적게 팔리지 않았다. 메이저 3집 가 전작에 비해 상업적으로 실패한 건 사실상 컴필레이션 앨범이었기 때문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탈 밴드의 음반으로선 많으면 많았지 절대 적다고 볼 수 없는 60여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그때 당시 요시키의 건강 악화와 멤버들의 솔로 활동 등으로 엑스 재팬의 대외 활동이 뜸한 와중에도 그런 대중적인 인기도를 구가했는데, 아마 그 때 당시 음악적 퀄리티를 떠나서 엑스 재팬의 모습으로 음악 활동을 더 성실히 했다면 더 많인 대중적 지지도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엑스 재팬이 다시 활동을 재개하고 요시키를 비롯한 멤버들이 대외적으로 비교적 꾸준히 얼굴을 비추는 것만으로도 복귀 후 별다른 음악적 성취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내에서 요시키와 엑스 재팬에 대한 비판 여론은 상당 부분 불식됐다. * 한국에서는 90년대 말에 요시키가 한국계라는 소문이 퍼진 적이 있다. 하지만 이는 요시키의 성이 하야시(林)인 것을 한국 성인 임씨로 오독한 것을 골자로 한 [[유언비어|헛소문]]으로 요시키는 이에 대해서 '저를 한국인으로 착각할 만큼 좋아하고 관심을 가져주는 것은 큰 영광이지만 저는 일본인입니다.'라고 웃으며 코멘트했다. * [[아이돌 마스터 샤이니 컬러즈]] 1주년 [[CM]]에 출연했다. 섹시한 목소리로 게임명을 읇는게 일품. * 엑스재팬 활동 당시부터 요시키는 거의 모든 곡의 작사와 작곡을 맡았으며 독단적인 리더십을 보였다. 이 독단적인 성격으로 말미암아 다른 멤버들과의 불화도 자주 일었던 바, 그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이 전임 베이시스트였던 [[TAIJI]]와의 트러블이나[* 타이지 생전의 자서전 '전설의 밴드 X의 생과 사'에 수록된 인세와 관련 문제에서 비롯된 스튜디오 뮤지션(세션)으로서의 별도 계약, 그리고 해고나 다름없었던 일방적인 탈퇴 요구 등.] 보컬리스트 토시와의 트러블.[* 요시키 본인도 스스로 인정한 바 있는 토시를 노래 부르는 기계나 다름없이 취급했던 점 등. 그 때문에 나이 들면서 토시의 목소리가 망가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특히 [[ART OF LIFE]] 때문에...] * 근래에 요시키와 가장 가깝게 지낸 인물은 [[GACKT|각트]]로 각트는 요시키를 의외로 재미있는 인물이라 평가했는데, 보통 사람들로서는 전혀 화를 낼 만한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느닷없이 폭발하거나 하는 식의 희한한 사례들을 예로 들어가며 요시키를 두고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장난감 상자 같은 인물이라 평가했다.[* LA에서 자신의 스텝진들과 식사를 하던 각트를 찾아 온 요시키에게 각트의 스텝진들이 식사를 권하자 3번을 거절하더니 4번째에 이르러서는 갑자기 버럭 화를 내면서 "먹으라면 먹을게!"라고 대답하고 먹기 시작했다. 근데 너무 잘 먹어서 한 번 더 먹기를 권하자 갑자기 또 버럭 화를 내면서 "알았어! 그렇게 먹으라고 하니깐 먹을 거야!"라고 [[이뭐병|대답]]... 각트로서는 이런 요시키가 재미는 있을지언정 이해는 할 수 없었다고.] 상황을 예를 들어보자면 리허설 때 먹었던 카레가 매워서 테이블 뒤집어엎고 그대로 집에 가버렸다거나[* 나중에 [[hide]]에게서 무슨 일인지 연락이 왔는데 요시키가 '카레가 너무 맵잖아'라고 하니 히데는 '할 수 없지'라고 바로 수긍했다고 한다.] 사진 촬영하러 간 사진사인 시노야마 키신의 스튜디오 샤워기 물이 뜨거워서 그대로 집에 가버렸다.[[https://blog.naver.com/florprecioso/221184536214|해당 블로그 영상 참고]] 각트와 함께 결성한 밴드인 [[S.K.I.N.]]의 미국 공연 때 서로가 크게 다툰 일이 있었던 이후 이를 계기로서 상호 간의 친분이 끊긴 것이 아닌가 하는 일부의 추측도 있었지만 이에 관해서는 2014년 1월 각트를 향한 “요시키는 잘 지내냐”는 한 팬의 질문에 각트가 “여전히 다투기는 하지만 잘 지내고 있다”고 답변, 요시키 역시 각트의 새 노래인 “P.s I LOVE you”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임과 동시에 S.K.I.N의 재결성에 대해 언급을 하기도 함으로서 둘 사이의 친분에는 문제가 없음이 확인되었다.[* 다만 각트가 주변 인물들과 불화가 있더라도 이를 잘 해결하는 편이고, 직접적으로 누군가와 다툰다는 식의 언급 등은 잘 하지 않는 타입이기 때문에 이를 두고서 일부에서는 여전히 “둘이 꽤나 심하게 싸우는 거 아닌가?“하는 추측을 하고 있다. 진실은 당사자들만.] * 한국에서는 2000년대 이후 [[TAIJI]]가 X-JAPAN에서 해고된 계기가 요시키가 혼자서 타 멤버에 비해 [[인세]]를 2배 독식했던 것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는 게 밝혀지면서 [[수전노]] 취급을 받기도 했다.[* 요시키 집안이 무슨 대단한 부자라서 밴드 활동 자금을 여유 있게 댔던 것도 아닌데, 다른 멤버들이 바보라서 요시키 혼자 인세를 2배 독식했던 것을 그냥 넘어갔던 게 아니었다. 물론 타이지가 문제 제기 한 시점이 메이저 진출 후 엑스가 큰 히트를 치면서 큰 수익을 올리던 시점이었으니 인세 지분 비율을 어느 정도 재조정해야 했던 것도 타당했다.] * 1999년 [[아키히토]] 천황의 즉위 10주년 기념일 날 피아노를 연주한 것으로 서한을 받은 적이 있다. [[일본 황실]] 행사에 대중 뮤지션이 참여하는 건 그 당시로선 상상을 초월한 파격적인 일이었기에 진보니 보수니 하는 이념을 초월한 정치적 논란으로 비화됐다. 당시 도쿄대의 진보 성향의 교수들[* 이 중에선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에 여성 혐오, 과거사 부정이 담겼다고 해석한 <무라카미 하루키론: 해변의 카프카를 정독하다>라는 명저로 국내에도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고모리 요이치 교수[[https://ja.wikipedia.org/wiki/%E5%B0%8F%E6%A3%AE%E9%99%BD%E4%B8%80_(%E5%9B%BD%E6%96%87%E5%AD%A6%E8%80%85)|#]]도 포함돼 있었다.]이 '대중 뮤지션은 정치에 이용돼선 안 된다'는 요지로 요시키에게 공개 서한[[https://ja.wikipedia.org/wiki/%E5%A4%A9%E7%9A%87%E9%99%9B%E4%B8%8B%E5%BE%A1%E5%8D%B3%E4%BD%8D%E5%8D%81%E5%B9%B4%E3%82%92%E3%81%8A%E7%A5%9D%E3%81%84%E3%81%99%E3%82%8B%E5%9B%BD%E6%B0%91%E7%A5%AD%E5%85%B8|#]]을 보낼 정도였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32&aid=0002838976|#]] 요시키는 수취를 거부했다고 한다.[* 다만, 요시키에 대한 고모리 요이치 교수의 주장은 당시에도 과하다는 비판이 있었다.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1712182029005|링크]] 참고로 고모리 요이치 교수는 2차 대전 당시 히로히토가 전쟁에 책임이 있었다고 주장한 좌익 성향 인물이다. 즉, 천황제 자체를 반대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천황 관련 행사를 영국 왕실 행사 같은 국가적 문화 행사 정도로 인식하는 일반적인 일본 국민들과는 인식이 매우 다르다는 점을 고려해서 보아야 한다.] * 항상 반복되는 작품의 발매 연기와 "긴급"을 붙인 공연 중단 등으로 관련 업계에서의 악평이 자자한 바[* 흔히 지적되곤 하는 온갖 베스트의 남발을 비롯한 과도한 상업화 러쉬보다 실제적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은 바로 이것이다.] 솔로 활동을 시작한다는 순간에마저 그 화려한 전적이 거듭되어[* 신작 연기, 마스터 테이프 분실 사건, 레코드 사와의 불화 등.] 현재 일본 내 그 어떤 레코드 사와도 제대로 된 계약을 맺지 못하고 있는 상태로 보이며, 이와 같은 사정들로 인해 재결성 이후의 신곡 "I.V"와 "JADE"조차도 CD 화하지 못하고 웹 다운로드로만 판매했다. 도쿄돔 라이브 DVD와 블루 레이들은 전부 인디즈 레이블을 통해 발매되었지만 2013년에 발표한 솔로 앨범인 "YOSHIKI CLASSICAL"의 경우 워너 뮤직 레이블을 통해 일본 내에서도 발매가 되었는 바 이것은 해외 발매 본과 함께 계약이 되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2014년의 베스트 앨범도 워너에서 발매했다. * [[2019년 고성-속초 산불]]로 피해를 입은 아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1억 원을 기부했다. 자신이 운영하는 미국 비영리 공익 법인을 통해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기부금을 전달했다고 한다. 그는 배우 [[이병헌]]과 친분이 있는데 이병헌, [[이민정(배우)|이민정]] 부부가 산불 피해 지역에 1억 원을 기부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부를 결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 2019년 8월 [[쿄토 애니메이션 방화 사건]]를 겪은 쿄애니에 1000만 엔을 기부했다. 기부를 잘 하지 않는 일본 연예계에서 보기 드문 기부 천사로 칭송받는 중. * 2019년도 [[홍백가합전]] 꿈을 노래하자(夢を歌おう)에서 [[KISS(밴드)]]와 함께 "Rock and Roll All Nite"를 협연하였다. 처음에는 그의 특기인 특별히 만든 피아노를 치고, 나중에 에릭 싱어랑 드럼으로 협연했다. *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가 받는 '''Asian icon award'''를 수상한 경력이 있다. 또한 '''세계가 존경하는 일본인 100인'''의 '''뮤지션''' 부분에서 요시키가 뽑혔다. * 멀쩡히 살아있는데도 한국에서 [[귀신]]으로 오해받은 적이 있다. 지금은 폐지된 MBC [[TV특종 놀라운 세상]]에서 2005년도에 방영된 내용으로, 한 주부가 저주받은 티셔츠를 샀다고 제보했다. 대량으로 사온 구제 옷 중에 처녀 귀신 형상이 그려진 티셔츠가 있던 것. 제보자는 그 티셔츠를 보자마자 놀라서 기절할 뻔 했다고 한다. 그 뒤로도 악몽과 공포감에 시달리다가 너무 두려운 나머지 티셔츠를 동네 뒷산에 묻었는데, 불 태울까 고민도 했지만 티셔츠의 저주가 두려워서 그대로 묻었다고. 하지만 티셔츠를 버린 뒤에도 증상이 가시질 않아서 제작진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제작진이 뒷산에 가서 문제의 티셔츠를 확인해보니, 그 형상은 여자도 귀신도 아닌 '''요시키'''였다.(...) 티셔츠의 전말을 알게 된 주부는 그 뒤로 말끔히 나았다고 한다. [[https://dvdprime.com/g2/bbs/board.php?bo_table=comm&wr_id=10759687|당시 팬들의 반응]] * 현재는 미국 [[베버리힐스]]에서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차량 컬렉션이 어마어마한데 [[롤스로이스 컬리넌]], [[부가티 시론]], [[파가니 와이라]], [[라페라리]]를 소유하고 있다. * [[https://namu.news/article/1636173#gsc.tab=0|2022년 5월 13일 모친상을 당했다.]] * [[X(SNS)|트위터]]를 통해 2022년 10월 29일 발생한 [[이태원 압사 사고]]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를 표했다.[[https://twitter.com/YoshikiOfficial/status/1586578615054913536?cxt=HHwWgMCi6YS21IQsAAAA|#]] * 2022년 12월 27일 스케줄이 겹친 [[카라]]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https://theqoo.net/2677304172|#]] * 2023년 1월, [[BLACKPINK]]의 [[로제(BLACKPINK)]]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https://www.news1.kr/articles/?4925016|#]] * 일본 스모 역대 최다 우승 횟수를 자랑하는 [[요코즈나]] 하쿠호 쇼의 단발식에 각트와 함께 초대받아 머리를 잘라주었다. 오랜 친구 사이이며 하쿠호 쇼의 애창곡이 FOREVER LOVE라서 같이 가라오케도 다닌다고. * 2023년 9월 14일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위치한 차이니스 극장에 손도장을 새겼다. 차이니스 극장 거리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마릴린 먼로]], [[프랭크 시나트라]], [[스티븐 스필버그]], [[조지 루카스]], [[톰 행크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등 유명 스타들과 [[성룡]], [[이병헌]], [[안성기]] 등의 아시아권 스타들이 손도장을 새긴 곳으로, 일본 아티스트 최초로 요시키가 손도장을 새기게 되었다. 평소 친분이 있던 이병헌이 요시키가 손도장을 새기는 행사에 참석하기도 했다. [[분류:일본의 드러머]][[분류:일본의 피아니스트]][[분류:타테야마시 출신 인물]][[분류:1965년 출생]][[분류:1982년 데뷔]][[분류:X JAPAN]]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