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YTN (문단 편집) === 개국 전 === 사실 YTN 탄생의 씨앗은 1991년부터 있었는데 그 해에 새 연합통신 사장이 된 현소환이 본격적으로 전파 매체 진출을 추진한 게 시초였다. 그러나 이 문제는 당시 정간법상[* 정기간행물법 제3조 1항: 일간신문(일반일간신문·특수일간신문 또는 외국어일간신문을 말한다. 이하 같다)과 통신은 상호겸영할 수 없으며, 전파법에 의하여 무선국의 허가를 받은 방송국(이하 방송이라 한다)을 겸영할 수 없다.] 뉴스 통신사의 타 매체 진출이 금지되어 있는 데다 전파 매체 진출이 허용된다 해도 방송사 설립에 따른 자금을 어떻게 마련하느냐는 것이 큰 골칫거리였다. 다행히도 [[노태우]] 정부 말기에 논의돼 오던 종합유선방송([[케이블TV]]) 사업이 [[김영삼]] [[문민정부]]의 정책으로 채택됨에 따라 언론사의 케이블 TV 참여가 가능하게 됐다. 연합 측은 이미 '뉴스 통신과 방송의 결합'을 위해 1991년 7월 1일부터 '방송 뉴스 서비스'를 실시해 [[KBS]], [[PBC]], [[MBC]] 등지에 방송 문장체 기사를 송고했다. 다른 한편으로 연합은 '음성 뉴스 서비스'도 구상해 그 정지작업으로 1992년 6월 15일부터 [[이계진]] 아나운서를 전문 강사로 초빙해 30일까지 세 차례에 걸쳐 방송 기사 작성 요령과 방송 뉴스 전달법을 강의했고 본사 사옥 9층에 방송 스튜디오를 차려 한 달간 녹음 연습을 시키고 7월 7일 오후 5시 30분부터 음성 뉴스 서비스를 개시해 매일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 30분 두 차례에 걸쳐 각 방송사에 송출했다. 이 시간 외에도 긴급 뉴스 발생 시 그때마다 수신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다만 일요일과 공휴일엔 오후 뉴스만 보냈다. 연합 측은 음성 뉴스 서비스를 강화키 위해 11월 1일에 라디오뉴스부를 신설해 같은 달에 [[TBS|교통방송]], 1993년 2월에 [[서울방송]], 1994년 4월에 [[불교방송]], 6월 [[기독교방송]], 9월 [[극동방송]]과 신규 계약을 각각 체결해 서비스 영역을 점차 확장해 나갔다. 이후 연합은 음성 뉴스 서비스의 위상 향상에 고무되어 1993년 5월 17일부터 [[KBS]]와 제휴해 연합 측 편집국 내에 간이 스튜디오를 만들고 [[KBS 2TV]] <생방송 전국은 지금> 1/2부 3분 아침 뉴스 코너에 연합 정치/사회부 기자들을 직접 출연시켰다. 그렇지 않아도 24시간이 모자라는 뉴스 통신 기자 업무 외에 추가로 처음 접하는 방송 리포트까지 하는 강행군을 치르게 됐다. 당시 출연 기자들은 전날 밤에 그날의 주요 뉴스를 정리한 후, 새벽 5시에 출근해 새 소식과 조간 신문 시내판을 최종 확인한 후 방송 시간 전까지 오디오 연습에 열중하는 등 철저한 사전 준비 후 생방송에 들어갔다. 이런 과정으로 뉴스 통신 기자도 조금만 훈련하면 방송 리포트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됐는데 실제로 몇몇 연합 출신이 지상파 TV에 진출해 맹활약한 걸 보면 알 수 있다. 본론으로 되돌아가 얘기하자면 연합통신은 1992년 3월 1일부터 케이블 TV 뉴스 프로덕션 참여에 대한 타당성을 조사하고 연구 기획을 하기 위해 산하에 '방송연구위원회'를 설치해 위원장에 김기주 전 [[MBC]] 이사를, 상근위원직에 전희섭 방송뉴스부 차장, 강일중 지방1부 차장대우, 최영재 외신1부 기자 등 4명을, 비상근 위원으론 양재홍 편집부국장, 이영인 부국장 대우 겸 데이터통신 부장 등 2명을 각각 임명했다. 이에 앞서 2월 18일 오후 7시부터 4시간 동안 본사 지하 1층 구내 식당에서 사장 휘하 임직원 4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케이블 TV 뉴스 공급업 추진과 관련한 설명회가 열렸다. 이 설명회에서 전희섭 위원이 먼저 케이블 TV 사업 관련 설명을 함으로써 이에 대한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이러한 설명회를 통해 사측은 적극적으로 케이블 TV 사업을 추진키로 결정했다. 이 사업이야말로 연합통신의 위상을 제고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하고 전 임직원이 혼연일체가 되어 뉴스공급업체로 선정될 수 있도록 단결된 모습을 보여주기로 결단했다. 이어 연합 측은 6월 23일에 케이블 TV 종합뉴스프로덕션 사업 참여와 관련한 전 사원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케이블 TV 뉴스 채널 사업 참여 여부를 묻는 질문에 전체 사원 중 99.3%나 되는 597명이 찬성한다고 밝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찬성 사원 중 케이블 TV 뉴스 채널 사업으로 인한 임금 동결까지도 감수할 수 있다고 답한 사람이 558명으로 92.9%가 되어 새 케이블 TV 진출 사업에 큰 힘을 실어 줬다. 한편 사내 방송연구위는 케이블 TV 뉴스 채널 사업 진출을 위한 준비 작업을 계획대로 진행해 나갔는데 가장 중요한 건 외국 케이블 TV 방송사들의 운영 현황이라고 판단해 적극적으로 해외 출장팀을 파견했다. 먼저 같은 해 4월 22일부터 5월 8일까지 케이블 TV 종합뉴스프로덕션 설립과 관련한 연구 조사를 위해 김기주 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해외 출장팀 4명을 미국에 파견해 미국 내 케이블 TV 및 방송사의 시설과 운영 현황 등을 조사했는데 당시 이들이 방문한 곳은 [[CNN]], APTV, [[CNBC]], WTN, [[PBS]],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 등이었다. 이후 11월 9일부터 열흘간 이영인 등을 주축으로 한 해외출장팀 5명은 일본 아사히TV 등 케이블 TV 관련 9개사를 방문해 자료를 수집했다. 이들은 일본 방문 후에도 바쁘게 움직여 11월 22일부터 한 달여간 이영인 등 해외 출장팀 6명은 [[프랑스]] ARD 등 7개사, [[독일]] SEB 등 8개사, [[벨기에]] [[RTBF]] 등 3개사, [[영국]] [[BBC]] 등 10개 사를 방문했고, 돌아오는 중 [[홍콩]]에 들러 [[STAR TV]] 등 2개사에 들러 자료를 수집하였다. 또 1993년 4월 10일부터 19일간 김무기 기술자문위원 등 간부 3명이 전미방송협회(NBA) 주최 연례전시회 참관을 위해 다시 미국을 방문해 [[로스엔젤레스|LA]] 지역 케이블 TV 방송국도 방문했다. 한편 자금 문제 역시 전 연합 사원이 봉급을 동결하는 걸로 해결됐는데 밤을 새워 가며 여섯 차례 사원 토론을 거친 끝에 1993년 4월에 사원 봉급 2년 동결안이 75.1%의 절대적 지지로 채택됐고 5월 27일에 본사 1층 로비에선 '연합의 살길 모색'이란 이름으로 케이블 TV 참여에 관한 대토론회를 열어 전 사원들은 자정을 넘길 때까지 열띤 토론을 했다. 이를 시작으로 하여 당월 31일부터 사흘 간 전국 5개 지국을 돌며 순회 설명회를 열었다. 이 토론회와 설명회를 통해 케이블 TV 뉴스 채널 사업 진출에 대한 전 사원의 지지를 확보했다. 7월 15일에는 케이블 TV 사업에 관해 종합 뉴스 보도 부문에 대한 참가 신청서를 공보처에 접수시켰다. 그 결과 연합을 중심으로 한 12개 업체의 컨소시엄인 '연합TV뉴스'가 단독 신청을 한 것이다. 뉴스 보도 쪽은 YTN 외에 매일경제신문사 등 26개사 컨소시엄인 매경유선방송과 KBS문화사업단 등 2개사가 참가 신청서를 냈지만 이들은 각각 경제 뉴스 부문과 문자 방송 부문으로 범위가 국한되어 있어서 종합 뉴스 부문인 YTN하곤 상대가 안 되었다. 당시 연합을 주축으로 YTN 컨소시엄에 참여한 업체 및 개인은 [[쌍방울]], 제일산업, [[한국관광공사]], [[한국상업은행]], 민중병원, 성원토건, 장규찬 새한미디어 고문, 전남일보, 일동제약, 보성주택, 한림제약 등이었다. 당시 YTN의 자본금은 3백억 원으로 컨소시엄 참여 업체 및 개인 지분율은 연합 측이 30%로 최대 주주가 됐고 쌍방울, 제일산업, 관광공사, 상은 등 4개 업체가 각각 10%, 그리고 민중병원이 21억 원을 출자해 7%를 지녔다. 성원, 장규찬, 전남일보 등에 각각 5%, 일동-한림제약에 각각 3%, 보성주택에 2%가 배정됐다. 8월 31일에는 케이블 TV 종합 뉴스 분야 프로그램 공급업체로 선정 받아 9월 1일에는 현소환 사장 주재로 YTN 컨소시엄 12개 업체 제3차 운영위원회를 열어 먼저 뉴스프로그램 공급업 선정 과정에 대한 경과 보고를 알린 후 1995년 초에 방송을 개시한다는 목표를 내세워 인원 선발, 장비 도입, 방송 훈련 실시 등을 구체적으로 논의함으로써 케이블 TV 시대에 대한 본격적인 준비 작업에 돌입했다. 9월 24일에 YTN 이사회는 현소환 연합 사장을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한 후, 28일에는 공보처로부터 법인설립 허가장을 받아 공식 출범했다. 또 이사회는 YTN과 연합 측 TV 관련 조직을 5개 실/국으로 나누고 20개 부서로 확정했다. 이에 따라 연합에서 YTN에 파견되는 인력과, 경력 및 무경력 신입 사원을 합쳐 모두 34명으로 인력 구성을 갖추기로 했다. 이에 따라 서울 종로구 [[수송동(종로구)|수송동]] 연합 사옥의 일부를 YTN에 할애하고 전 사원이 YTN 설립 작업에 동원됐다. 연합 측은 당년 10월 6~7일 양일간 전 사원을 대상으로 TV 뉴스 방송과 관련된 조직 및 인력 확보 계획, 양사 간의 업무 체계 등에 관한 설명회를 열었다. YTN 이사회 측에서 결정한 조직 구도에 따르면 연합 측엔 기획조정실, 취재보도국, 광고영업국 등 3개 실/국을 신설해야 하며 YTN 산하 보도제작국 및 방송기술국과 유기적인 협조를 통해 케이블 TV용 뉴스물과 기획물을 제작해 YTN에 공급하게 되어 있다. 또한 TV 뉴스 관련 부서가 양사로 이원화되는 데서 오는 혼란을 방지키 위해 연합 취재본부장이 YTN 보도제작국장을 겸해 연합 취재제작국과 YTN 보도제작국을 총지휘하기로 했다. 드디어 10월 27일, 연합은 수송동 사옥과 [[세종문화회관]]에서 'YTN 현판식' 및 창립기념 리셉션'을 각각 열어 사내외에 YTN의 출범을 널리 알렸다. 특히 세종문화회관 리셉션에선 황인성 국무총리, 이만섭 국회의장 등 3부 요인과 각 당 대표, 정부 고위인사들을 비롯한 각계 인사 1천여 명이 참석하였다. 1994년 2월 14일에 연합-YTN 양측은 경력 사원 57명, 신입 사원 36명, 타사 채용 사원 6명 등 총 99명을 신규 채용해 연합 채용 인원 중 37명을 YTN에 파견했다. 이에 따라 실질적으로 신규 채용자 99명 중 연합통신 업무에 전념할 사원은 41명, YTN에 배치해 근무할 사원은 58명이었다. 특히 연합 측은 스카우트자를 뺀 경력 및 신입 사원에겐 각각 '연봉직'과 '레지던트' 사원제를 처음으로 도입했고 신규 채용자에겐 연합이건 YTN이건 어떤 곳에 근무하더라도 통신 및 TV취재/편집 능력을 모두 갖추게끔 연합통신에서 일정한 교육 과정을 거치도록 했다. 이에 따라 YTN에서 일하는 사원들 역시 연합에서 교육을 받게 됐는데 레지던트 교육 기간은 사회부 17주, 지국 순환 근무 1주, 방송 교육 4주 등 총 26주에 걸친 교육을 이수했다. 또 경력 사원의 경우 사회/경제부 각각 3주, 방송 교육 4주 등 총 17주의 교육을 이수받고 업무 현장에 배치됐다. 이후 연합 측은 YTN 사업 추진으로 축적된 관련 기술과 사업 능력을 최대한 활용토록 하기 위해 1994년 4월 27일에 무역업 및 무역대리점업으로 등록했다. 이는 YTN 기자재 수입에 따른 업무 대행으로 수입을 원활히 하기 위한 것이다. 연합 측은 7월 4일 임시 주총을 열어 정관을 개정해 '통신업'을 새로 추가시켜 한통이나 데이콤처럼 정보 제공 및 원거리통신사업에 나섰다. 이는 당시 미국에 이어 일본에까지 통신-케이블 TV 연계 등 복합 매체 추세와도 부합하며 이에 대한 제도적 장치의 토대를 마련케 한 것도 긍정적으로 평가 받았다. 또 연합 측은 본격적인 케이블 TV 시대에 대비해 '방송용역과 기타 용역업'에도 진출해 YTN 등 이와 관련된 종합유선방송사 등에 시청각 제작물을 제공하는 사업도 전개키로 했다. 연합은 YTN 출범과 함께 자본금 3백억 원의 30% 중 절반인 45억 원을 1993년 9월 8일 1차로 출자한 데 이어, 1994년 4월 28일 2차로 나머지 45억 원을 출자해 총 90억 원의 출자를 마쳤다.이렇게 연합은 YTN 주식 중 30%를 지닌 최대 주주로써 본격적으로 사업을 추진해나갈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연합 측은 1995년 3월 1일 YTN 첫 방송을 목표로 방송 장비를 들여오고 인력을 확충하고 광고국을 신설하는 등 다각적으로 업무를 추진해 나갔다. 먼저 1994년 8월 1일에 산하 광고사업국을 신설해 기획관리부-TV광고부(YTN 광고 전담)-출판광고부 3개 부서로 구성했고 9월 중순부터 일본제 소니 BVA400A 일체형 ENG카메라 등 방송 장비 2천여 점을 구입해 10월 말부터 설치/완료 후 본격적인 가동을 시작했다. 이때 YTN은 연합 수송동 사옥 9~12층 및 지하층 일부를 사용했는데 스튜디오는 12층에 뒀다. 이로써 '한국의 CNN'을 표방하는 YTN은 3년여 간의 준비 끝에 세계 어디서나 연결 가능한 위성 뉴스 취재 체계(SNG)과 뉴스룸 전산 자동화 체계, 첨단 편집 및 송출 장비를 모두 갖췃다. 또한 [[CNN]] 등 세계 유명 방송사와도 뉴스 공급 계약을 체결해 완벽하게 전 세계의 뉴스를 커버하는 방송 체계를 확립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