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U보트 (문단 편집) ===== 지중해 ===== 1941년 9월부터 1944년 5월까지 총 62척의 유보트가 지중해로 파견되었다. 그러나 연합군의 살벌한 경계를 뚫고 [[지브롤터 해협]]을 돌파한다는 것부터가 매우 위험한 시도였다. (영화 [[특전 유보트]]에서 이 시도를 하다가 죽음 문턱까지 갔다.) 막상 들어간 지중해는 북대서양보다 환경이 평온하다 보니 악천후를 이용해 몸을 숨기기도 어려웠다. 그리고 대부분의 해류가 대서양에서 지중해로 몰려들다 보니 마음대로 나갈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고, 결국 작전에 투입된 모든 유보트가 지브롤터의 벽을 넘지 못하거나 지중해 내에서 격침 혹은 자침되었다. 특이한 케이스로 루마니아 콘스탄차를 모항으로 두고 [[흑해]]에서 활동하던 30전단이 있었다. [[2형 유보트]]로 구성된 이 전단은 유보트 운송 경로가 매우 독특한데, 독일 본토에서 흑해까지는 해로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지브롤터 해협을 돌파해서 지중해를 항해하는 것 자체도 쉽지 않은데다, 중립국인 터키가 장악하고 있는 [[다르다넬스 해협]]-[[보스포루스 해협]]을 들키지 않고 통과한다는 건 무리였다. 때문에 [[다뉴브 강]]과 운하, 심지어 육로를 거친 대장정 끝에 유럽 대륙을 횡단해 흑해에 도착했다.[* 이 때문에 30전단 소속 유보트들은 위에서 서술한 대로 전부 2형 유보트였다. 독일 해군이 주력으로 사용한 7형이나 9형 유보트는 육상 수송이나 강으로의 이동이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했기 때문. 뭐 보내려면 보낼 수도 있었겠지만 사실 독일 해군 입장에서는 당장 대서양이 급한 마당에 보조 전선인 흑해까지 주력 유보트들을 보낼 여력이 없었다는 점도 한몫했을 것이다.] 이들은 1944년 9월 루마니아 국왕 미하이 1세가 친위쿠데타 이후 연합국으로 돌아서자 전부 자침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