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TERF (문단 편집) == 국가별 현황 == 대부분의 국가에서 페미니즘은 트랜스젠더를 인정해주는 상호교차성 페미니즘이 주류이기에 TERF는 거의 영향력이 없는 것으로 평가되는 이론이지만, 영국과 한국에서는 트위터의 페미니즘 붐을 타고 특정 웹사이트를 중심으로 자주 인용되고 있다. 또한 상당수의 [[여초 커뮤니티]]가 이 성향을 갖고 있기도 하다. 게다가 일부 학자와 교수들이 이들을 대중동원식으로 끌여들여 인용하고 있으며 TERF 성향의 책을 발간해 주고, 토론회까지 열어주고 있다. 한국 페미니즘 운동이 처음부터 TERF적이었다고 하는 주장이 있다. [[https://twitter.com/rubyfruitjam/status/929932935309926400|#]] [[하리수]] 등장 이후에도, 페미니즘 진영은 일관적으로 '여성' 이외의 성소수자들에게 이해는 커녕 적대적인 시각을 유지한 채 이어져오고 있었다는 주장이다. 이는 한국 페미니즘 운동이 중산층 이상의 고학력자 여성들의 운동이었다는 점에서[* 이런 여성주의자중 정치권에 참여한 사람들을 살펴보면 의외로 기독교계 페미니스트가 많다는 점을 알수 있다. 이화여대, YWCA과 김활란, 이희호같이 한국 여성운동 역사는 개신교가 매우 큰 입지를 지니고 있다.] 소수자와 만날 기회가 없던다는 근본적인 한계를 보이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사실 기록에 따르면 한국 최초의 성전환 여성은 1950년대부터 있었고, 종로3가와 이태원은 8~90년대에도 성소수자들의 해방구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또한 70년대 한국 레즈비언들도 명동에 모이곤 했다. 그러나 이들을 접한 인텔리 여성들은 어디까지나 소수였고(당시 20대 전체에서 대학생 비율이 10%가 안되던 시대였다), 성소수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사변적으로 이해하던 인텔리겐치아 페미니즘 운동가들이 정작 실제 사회의 성소수자들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국의 페미니즘 진영에서 성소수자를 제대로 이해하고 연대하기 시작한 것은 적어도 2000년대 중반 이후로 보인다. 그나마 그 중에서도 퀴어 페미니스트들이 주도했다. [[http://cluster1.cafe.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Itew&fldid=21Dt&datanum=3484&openArticle=true&docid=Itew21Dt348420070413083324|#]]] 한국 뿐만 아니라 영국 페미니즘에서도 TERF 성향이 심하며, 아일랜드 타임즈에서는 [[https://www.irishtimes.com/opinion/irish-feminists-must-avoid-british-trap-of-transphobia-1.4507862?mode=amp|아일랜드의 페미니스트들은 영국처럼 트랜스포비아의 덫에 걸려선 안된다]]며 TERF를 비판하는 논평이 실리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