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T-10 (문단 편집) === 배경 === 소련군은 2차대전이 진행중이던 1944년부터 신형 차세대 중전차를 개발할 계획이 있었는데, 방어력을 더 많이 확보하면서 동시에 뛰어난 기동성과 안정성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본 중전차 개발 계획은 1945년 2월에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오비옉트 257]]과 그 계열들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이후 개발된 오비옉트 260보다 먼저 IS-7이라는 명칭이 쓰이기도 했다.] 2차 대전 종전 직후인 1945년 9월 기준으로 소련군이 채택한 중전차는 [[IS-2]]와 [[IS-3]]가 있었고, 1년후인 1946년에는 [[IS-4]]도 채택되었다. 그러나 IS-2는 이미 구식이었고, IS-3는 새로운 설계가 적용되어 IS-2보다 강한 방어력을 얻었지만 생산 과정에서 품질 불량 문제가 생겼고 전투 지속력이 부족했다. IS-4는 독일군의 8,8cm KwK 43을 거의 모든 부위가 완벽하게 막아내는 방어력을 갖췄으나 두꺼운 장갑때문에 지나치게 무거워지면서 실패한 전차로 판명되었고, 1950년대에 2선급 전선인 극동에 배치되어 IS-2보다도 빠르게 퇴역하게 된다. 한편 [[오비옉트 257]]의 설계는 55톤이라는 중량의 한계와 그로 인한 무리한 경사장갑 설계로 인해 승무원 거주성과 토션바 서스펜션을 포기했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러나 55톤 내에서 방어력을 확보하기 위해 무리를 했음에도 오비옉트 257은 대전 말기에 나온 [[야크트티거]]의 12.8cm 주포를 완벽히 막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오면서 결국 개발이 취소되었다. 소련 군부는 다가올 냉전기에 걸맞는 신형 중전차의 필요성을 더욱 느끼면서 신형 중전차 프로젝트의 중량 제한을 60톤으로 완화하며 더 강화된 중전차 요구사항을 작성하였고, 곧이어 1945년 9월부터 오비옉트 257을 바탕으로 더 개선된 오비옉트 260의 개발이 시작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