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SU-76M (문단 편집) ==== [[6.25 전쟁]] ==== || [[파일:p1_main.jpg|width=100%]] || || '''6.25 전쟁 당시의 조선인민군 육군 소속 SU-76M "918번차"'''[* 사진에 흐릿하게 나와서 잘 보이지 않지만, 뒤에 있는 차량을 잘 보면 전투실 상부에 전차번호가 새겨져 있다.] || 소련이 1947~1949년에 공여해준 150문의 SU-76M을 북한은 각 보병사단 예하 포병연대에 배속시켰다. SU-76M은 남침에 투입되어 전쟁 초반 군수장비가 부족한 국군에 크나큰 출혈을 강요했다. 그러나 기갑장비에 대한 이해가 충분치 않았던 인민군은 자주포를 전차마냥 운용하기도 했다. 이렇다 보니 상술한 약점들 때문에 국군의 육박공격에 뜻밖의 손실을 입기도 했다. 그 당시 국군 역시 기갑장비 자체를 본 일이 극히 적다보니 SU-76M 격파를 전차 격파로 보고한 일도 많았다. 이후 국군에 장비가 인도되고 UN군이 증원되면서 상부 개방식[* 북한군 사용 차량 상당수는 위에 언급한 얇은 지붕을 추가한 개량이 시행된 상태였다. 또한 조종수 해치를 열고 조종해야 했기에 매복공격에 취약했다.] 경장갑 전투실 구조 때문에 다수의 SU-76M이 UN군과 한국군의 [[바주카]], 대전차포, 육박공격에 의해 파괴되었다. 국군의 기록 중에는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국군이 노획한 적도 있다고 한다. 사연은 이렇다. 인민군 전차(SU-76M) 한 대가 온다는 정찰병의 보고를 듣고 허둥지둥 매복을 준비중이었는데, [[지뢰]]매설이 덜 끝난 상태였다. 소대장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SU-76M이 당도하였고, 이때 병사 하나가 용감하게 나서 앞을 가로막으며 큰 소리로 이렇게 호통쳤다. >[[공갈|'''"너희들은 포위됐다! 항복하면 목숨은 살려주겠다!"''']] 인민군들은 우물쭈물하다가 곧 손을 들고 밖으로 나왔고, 부대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포로를 잡고 SU-76M까지 노획했다. 인민군들이 항복한 이유는 병사가 워낙에 배짱이 좋기도 했지만, 주변에 수풀이 우거져서 매복한 국군의 규모나 화력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거기다 오픈탑이라 방어력도 약하니 버틸 수 없다고 판단했던 것. 이후 [[중국 인민지원군]] 참전 후에도 지속적으로 전투에 나타났으며, 동란 후기에 들어서면서 훨씬 강력한 [[IS-2]]가 투입되었지만, 보병 지원용 자주포가 부족한 상황에서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