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STS-107 (문단 편집) == 사고 조사 == 3시간 만에 [[NASA]] 부국장은 [[미합중국 해군]] 퇴역 [[대장(계급)|대장]] 해롤드 게먼 [[제독]]에게 조사 지휘를 부탁했고, [[백악관]]의 승인을 받아내 12명의 조사관을 뽑았다. 챌린저 조사위원회에서 활동한 [[샐리 라이드]]가 다시 초빙되었고, 전 공군장관이었던 실라 위드놀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 교수, [[1996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더글러스 오셔로프[* 1986년의 [[STS-51-L]] 조사관으로 뽑혀 진상 규명을 해낸 [[리처드 파인만]]의 제자이다.]도 초빙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미군 쪽 인사들이었다. 또한 컬럼비아의 잔해수습과 조사를 위한 기체 재구성을 위해 [[연방 교통안전 위원회]]로부터 50여 명의 조사관을 지원받았다. 게먼 제독의 조사팀은 바퀴칸에서 온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진 것을 확인했는데, 이는 표면에 틈이 생겼다는 뜻이었다. 이게 진짜인지 알기 위해서는 [[블랙박스]]를 회수해야 했는데 문제는 컬럼비아 호의 블랙박스는 추락과 화재에 견디도록 만들어지지 않았고, 60km 상공에서 떨어져서 위치를 파악하지 못해 찾기가 힘들었고, 찾는다 하더라도 멀쩡할 가능성이 적었다. 결국 잔해 회수 작전을 시작해 미국 전역에서 25,000명을 뽑은 뒤 [[텍사스]]와 [[루이지애나]]를 수색했으나 6주가 지나도록 성과는 없었다. 6주간 발견한 잔해들의 무게와 크기 등을 계산해 예상 낙하지점[* 굉음이 들렸던 헴프힐 부근]을 알아낸 뒤 그곳에 수색대를 파견했고, [[아메리카 원주민]] 출신 소방관 천시[* Chauncey] 버드테일이 기록장치를 찾아냈다. 다행히 멀쩡한 상태였다. 기록장치 분석 결과 온도가 상승하기 시작한 곳은 바퀴칸이 아니라 왼쪽 날개의 앞쪽이었다. 구멍은 재진입 전부터 있었고, 비행 초기단계에서 온도 상승의 초기 징후가 보인 것으로 드러났다. 다시 말해, '''대기권 진입 전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발사 후 82초에 타일이 떨어져나가 날개에 부딪힌 것을 떠올린 조사관들은 2개월에 걸쳐서 영상을 좀 더 선명하고 자세하게 복원한 뒤 분석했다. 떨어진 타일의 무게는 약 770g으로 크기는 작은 서류 가방 정도였으나 시속 800km로 충돌해 충격량이 엄청났다. 이후 [[버드 스트라이크]] 실험 장비를 개조해 서류가방 크기의 절연체를 RCC복합체에 발사하는 실험을 계획했으나 절연판 하나의 가격이 6억 이상이나 되다보니, [[NASA]]에서 실험용으로 주기를 꺼렸다. 다시 더 깊이 조사한 끝에 고장난 온도기의 순서를 파악해 어디부터 고장난지 알아내고 고장난 절연판들만 골라서 얻어낸 뒤 실험을 시작했다. 절연체를 발사하는 순간, 8번 절연판에 '''구멍'''이 생겼다. 이로써 사고의 원인이 밝혀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